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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chel Jan 26. 2023

편지를 버렸다.

'편지'에 대하여

https://brunch.co.kr/@rachelprk/16



편지를 쓰는 것, 받는 것 모두 좋아하는 나는 책상 서랍 한편에 편지를 차곡차곡 모아둔다. 편지가 너무 많아 이미 한 칸을 다 차지하고 있는데 공간이 부족해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편지를 정리해야 되나?

정리하려면 편지를 버려야 할 텐데...


고민이 그새 하나 더 늘었다.






서랍 안에는 다양한 편지가 있다. 정갈한 봉투에 넣은 편지부터, 엽서, 소리 나는 카드, 포스트잇 같은 쪽지에 적힌 편지까지 온갖 편지가 섞여 들어있다. 편지 이면에는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선생님,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자연스럽게 멀어진 인연도.



여러 이유로 관계를 끊은 친구에게 받은 편지를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다 버린 줄 알았는데 서랍 속 어딘가에 있었다니, 의아했다. 오랜만에 한번 읽어볼까? 싶어 편지를 꺼내 읽었다. 읽다 보면 편지를 받았던 시절로 돌아가 추억을 회상하게 되는데 이 편지는 그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내 기분을 좋게 만드는, 그런 편지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편지를 읽는 내내 '그땐 재밌었는데' 보다 '그땐 그랬지'에 가까운 느낌이 계속 들었다. 결국 기억은 추억이 되지 못했다. 조금도 미화되지 않고 오히려 끝난 관계라는 사실만 상기시켰다.



편지를 버리지 않고 한 곳에 보관하는 일은 여러 사람과의 추억을 오래 간직하는 것이기도 하다. 편지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편지를 버리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알 것이다. 그렇게 어려웠던 것도 시간이 흐르면 쉬워지기도 한다. 시간이 해결해 주지 못할 땐 편지를 준 사람이 지금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면 더 수월할 지도 모르겠다. 난 이제 마음 편히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런 감정도, 생각도 들지 않아 다행이다.






*작심 에세이. 매주 키워드 또는 문장에 대한 짧은 글 한 편을 쓰고 서로의 글을 읽고 감상을 나누자. 혹여 중간에 멈추게 되더라도 언제가 되었든 또다시 글을 써보자. 너무 오랫동안 멈춰있지만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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