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졸업하면, 직장으로 들어가겠지만
살아가면서 과거는 잘 돌아보지 않는 편이다. 지나온 세월에 후회가 없기도 하고, 지금과 앞으로의 삶에 더 관심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다.
그러다 이번에 잠시 과거를 되돌아볼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와 사뭇 달라진 내가 있었다.
이번 주 월요일에 직장 동료 몇 명과 함께 한 고등학교에 외부영업을 나갔다. 은행 계좌를 연결해서 학생증 체크카드 발급을 진행하기 위함이었다. 상품을 안내하고, 신청 서류들에 동의를 받기 위해 오전부터 오후까지 학교에 머물렀다. 평소 창구에서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다가 보통과 다른 환경에서 시간을 보냈다.
반마다 들어가서 학생들을 만나고 서류 작성을 도와주었다. 의자에 앉아있는 학생들과 서서 학생들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대비되었다. 그러다 문뜩 과거를 회상했다. 구체적으로 떠올렸다기보다는 '고등학생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이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채웠다.
물음에 답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굳이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답이 이젠 머릿속을 채웠다. 이유도 생각해 보았다. 학생들과 지금 나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조용히 깨달았다.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면, 여유롭게 소비 생활을 할 수 있는 지금이 더 낫다는 생각으로 종결됐다. 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세상의 자유를 누리다가 다시 학교 같은 직장을 다니는 우리들의 현실. 오늘 방문했던 학교는 상업고등학교여서 빨리 직장생활을 하게 될 학생들을 보며 숙연해졌다.
직장 생활을 학교 생활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일 뿐이지만, 오전 내내 느낀 감정은 이런 류의 생각들이었다.
여유롭게 점심 식사를 하고, 커피도 마셨다. 반복된 일상에서의 잠시의 일탈이었다. 오후에도 반마다 들어가서 학생들의 서류 작성을 도왔다. 그러다 반마다의 급훈이 눈에 들어왔다. '30분 더 공부하면 남편의 얼굴이 바뀐다.', '취업문은 좁지만 우리는 날씬하다', '귀하의 이름은 합격자 명단에 있습니다.' 보면서 괜스레 웃음이 지어졌다.
종일 학교에 있으면서 교내 곳곳 글귀들에 눈길이 계속 갔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도종환 시인의 시를 비롯해 익숙한 시들을 천천히 감상했다. 그리고 반마다 전시된 대표 학생의 창작시를 감상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시 한 편이 있다. 2학년 이가민 학생이 창작한 시, 제목은 <치킨>이다.
<치킨>
떡볶이와 치킨
피자와 치킨
라면과 치킨
치즈볼과 치킨
탄산음료와 치킨
많은 것들과 잘 어울리는 치킨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피식 웃음이 지어지면서도 통찰력이 느껴졌다. 반마다 이동하면서는 학생들의 시를 기웃기웃 보고, 교실에서는 구석에 진열된 책들에 눈길이 갔다. 어떤 책들이 있나 보면서 문뜩 새삼스러웠다. 학창 시절에는 책에 관심이 없었는 데 지금은 글귀에, 그리고 텍스트에 반응하며 흥미를 느낀다.
과거와 많이 달라진 모습에, 어쩌면 과거보다 더 낫다고 느끼는 모습에, 그리고 그런 발견을 한 그 순간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더 나아졌다고 느끼는 삶, 잘 나아가고 있는 삶. '과거'의 상징과도 같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현재'를 동시에 생각했다.
왜 공부하는지, 수능을 잘 칠 수 있을지, 어느 대학에 갈 수 있을지, 불투명했던 시간들을 이겨내고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있다. 서툴렀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시절 덕분에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 되었다. 물론 이 보다 더 나은 삶을 조용히 꿈꾸고 있지만, 지금의 모습에 감사함을 느껴보려고 한다. 가진 것에 집중해보려 한다.
과거에 후회 없고, 현재의 모습이 최선이어서 감사하다. 앞으로의 삶도 기대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할 이유다.
이 한 줄을 위해 지금껏 살아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이다.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는 삶이 여전히 버겁지만, 이번 계기로 이 문장을 기억해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