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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바티칸, 로마 투어

여행은 예술이다

by 미리



여행 마지막 날, 눈을 뜬 시간은 이른 새벽이었다. 바티칸 박물관 오픈런을 해야 했기에 다섯 시 반쯤 숙소를 나섰다. 피곤함 보다는 일찍 나서는 만큼 로마에서의 하루가 근사했으면 했다.


버스는 깜깜한 새벽을 달려 로마 시내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시국'들어섰다. 내리자마자 박물관 입구로 바로 달려갔다. 앞에는 여행사 세 팀 정도가 먼저 와서 줄 서있었다. 이른 아침, 참새 소리를 들으며 벽에 기대 낯선 풍경의 자리를 기다림으로 채워갔다.




입장 대기하면서 현지 가이드님이 해주시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분들 바티칸 박물관은 왜 갈까요? 그렇죠, 그 유명한 <천지창조> 보러 가시는 거죠. 르네상스 3대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중에서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 작품 오늘 보러 가실 겁니다."


"저기 박물관 입구 쪽에 보이시죠. 왼쪽이 미켈란젤로, 그리고 오른쪽이 라파엘로입니다."

왼쪽 미켈란젤로, 오른쪽 라파엘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두 사람은 정말 달라요. 미켈란젤로는 못생겼고, 자기밖에 몰랐어요. 라파엘로는 잘생겼어요. 성격도 좋고, 제자들도 많이 양성했어요. 미켈란젤로는 89세까지 아주 장수했고, 라파엘로는 37세에 단명했습니다. 미켈란젤로 무덤은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에, 라파엘로 무덤은 로마 판테온 신전에 있습니다."




의외로 지루하지 않았던, 2시간이 지나고 박물관에 입장했다. 오픈하자마자 거의 바로 입장한 편이어서 여유롭게 이동하며 관람했다. 초입에서 마주했던 '라오콘 군상' 조각상이 기억에 남는다.


라오콘 군상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이 뱀에게 공격받아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그리스 고대 조각상. 트로이 전쟁 때, 라오콘은 그리스 군이 설치한 거대 목마를 파괴할 것을 주장했다가 포세이돈이 보낸 뱀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뱀에 휘감긴 세 명의 사람, 긴박해 보이는 격동적인 움직임, 그리고 고통스러운 얼굴 표정. 유명한 작품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보였을 수도 있지만, 조각상의 세밀한 정교함에 감탄하며 감상했다.




여러 조각상과 미술 작품들을 눈으로 보며 지나가다 보니 어느새 '시스티나 예배당'에 다 달았다. 내부는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됐고, 말소리가 커질 경우 내쫓길 정도로 조용했다. 그 고요함은 오로지 '천지 창조'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 벽화에 집중할 수 있게 분위기를 조성했다.


위를 올려다보는 순간, 경이로움에 말을 잃었다. '와'라는 감탄사만이 들숨과 함께 나왔다. 놀라서 본능적으로 손을 입에 갖다 대고 그저 감탄했다.


천지창조
아담의 창조


압도적인 스케일과 생생하게 다가오는 색채, 사람이 그렸다고는 믿기지 않을 예술의 위대함이었다. 목을 젖혀가며 넋을 놓고 눈에 담았다. 침묵만이 가득해서 더 경건해졌다. 시선을 따라 그림을, 두 손이 맞닿아 있지 않은 장면을 오랫동안 눈에 담았다. 그 유명한 '아담의 창조'를 직접 보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감격스러웠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는 임무를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그림 회화를 배워본 적 없었지만 명령을 거절할 수 없었고, 대신 본인이 그리고 싶은 대로 천장을 채우기로 허락받았다. 미켈란젤로는 성경 창세기의 이야기를 9가지 이야기로 상상해서 그려냈고, 그중 하느님이 손가락으로 인간을 창조한 '아담의 창조'가 유명하다.

미켈란젤로는 90도로 젖혀서 그리느라 목은 상했고, 누워서 그리느라 허리도 상하고, 떨어지는 물감에 눈도 온전치 못했다. 교황과의 갈등도 있었고, 그런 온갖 열악한 환경 속에서 미켈란젤로는 혼을 담아 자신의 한계에 도전했다. 고통스러웠던 4년의 시간이 흘러 그렇게 세기의 명화가 탄생했다.



시스티나 예배당 입구 쪽 벽에 천지창조만큼 유명한 거대한 작품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최후의 심판'이다. 나체의 무수히 많은 인물들, 복잡해 보이는 서사, 혼란스러움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윗부분은 천국, 중간은 인간세계, 아랫부분은 지옥을 표현했음을 알 수 있었다. 성당 내부에서 가이드님이 설명을 하실 수 없었기 때문에 작품을 자세하게 파악하며 들여다보지는 못해 아쉬웠다.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가 몸이 상해가며 천장화를 완성한 20여 년 뒤, 새 교황은 그에게 다시 성화를 그려달라고 했다. 미켈란젤로도 가톨릭 신자였지만 당시 부패한 교황청에 분노했고, 그림도 억지로 그려야 해서 불만이 가득했다. 그래서 그런 그의 내면세계는 작품 곳곳에 숨겨져 있다. 그림 중간 부분에 축하고 늘어져 있는 힘없는 살가죽, 미켈란젤로 본인의 모습을 표현했다는 해석이 있다.

미켈란젤로는 그림으로 복수했다. 최후의 심판 세계관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나체로 표현했을 뿐 아니라, 하단 지옥의 맨 우측에는 당시 미켈란젤로를 사사건건 방해했던 체세나 추기경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교황이 서는 재단 위치에 맞춰 하단에 지옥을 그렸다. 교황이 미사를 끝내고 뒤 돌면 지옥의 문이 보이게 설정한 것이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살면서 마주한 장면 중 가장 큰 울림을 주었다. 살면서 이 공간은 누구든 기회가 되면 꼭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정이 북받쳤다. 위 사진들은 박물관 내부 기념품 샵에서 사 온 엽서를 찍은 것인데, 실제로 보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림이 화려하다.



여행은 예술이다

여행하며 또 한 명의 위대한 예술가를 만났다. 독일의 괴테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시스티나 성당의 이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은 한 인간이 얼마나 큰 일을 해낼 수 있는가를 상상할 수 없다." 예술의 위대함을 느꼈다. 여행은 '예술의 세계는 끝이 없다'고 말해준다. 여행은 예술이다.







바티칸 박물관을 나와서는 걸어서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향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마지막을 추모하는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로 북적였다. 성당 내부 관람을 할 수 없어서 못내 아쉬웠지만, 입장해서 외부 관람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



관광하고 나가면서 아주 잠시나마 묵념하며 교황님의 안녕을 바랐다. 그리고는 걸어서 이동해서 현지 식당에서 토마토 스파게티와 피자를 점심으로 여유롭게 먹고, 오후 관광을 시작했다. 선택 관광 '미니밴투어'로 랜드마크를 둘러보았다.


판테온 신전


가장 먼저 로마 최고의 건축물로 평가받는다는 '판테온 신전'을 관광했다. 그리스어로 판 pan은 '모두'를, 테온 theon은 '신전'을 뜻한다. 로마의 모든 신들을 기리는 신전이었던 판테온은 당대 로마 건축의 혁신일 정도로 건축성이 우수하다. 당시 화산 폭발이 일어났던 폼페이 지역의 화산재를 섞어만든 콘크리트로 건축을 했다고 한다. 또한, '브루넬레스키'도 판테온 신전을 보고 영감을 받아 피렌체 두오모를 설계했다고 한다.



근처에 로마 3대 커피숍이 있어서 그곳에서 에스프레소를 맛보며 잠시 쉬어갔다. 그리고 다시 밴을 타고 '트레비 분수'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트레비 분수는 한눈에 봐도 화려하고 예뻤다. 건축물과 조각상들, 그리고 햇살 받으며 흘러내리는 물, 그 조화가 참 아름다웠다.


트레비 분수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분수에 동전을 던져보고 싶어서 인파가 적은 곳을 찾아갔다. 설명을 들었던 것처럼 분수를 등지고 섰다. 그리고, 오른손에 동전을 쥐고 왼쪽 어깨너머로 힘껏 동전을 던졌다. 동전을 던졌으니 언젠간 로마에 다시 오게 되겠지 하는 마음을 고이 챙기고 자리를 이동했다.



벤 투어는 계속 이어졌다. 날씨가 더웠지만 짧게 투어해야 해서 아쉬워할 틈이 없었다. 이동해서 도착하는 곳마다 인파가 붐볐지만, 아직 여행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곳곳의 순간을 간직했다.


스페인 계단
포로 로마노
베네치아 광장



패키지여행이다 보니 자유롭게 관광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긴 했다. 내가 선택한 여행이라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순간순간 느낀 찰나의 아쉬움이 기억에 남는다. 이곳이 일상인 것처럼 보이는 여유로운 사람들의 오후. 여행이 끝나면 공항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쉬움이 더 짙어졌다.


밴을 타고 이동하면서 본, 여유있게 식사하는 사람들
고대 유적지가 보이는 잔디밭에 누워 쉬는 사람들




어느덧 투어의 마지막 종점에 도착했다. 로마 여행지의 상징과도 같은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을 마주했다. 이곳에서는 역사를 알아간다기보다는 눈에 오래 담으면서 로마 여행을 잘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자유시간 동안, 잠시 콜로세움 앞까지 가서 구경하고 돌아와서는 그늘진 구석에 앉아서 더위를 식히며 휴식을 취했다.


콜로세움


이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눈앞에는 콜로세움이 있었고, 불어오는 바람을 느껴보고, 이곳을 즐기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분주했던 로마 시내 투어의 끝에 다행히 머무름의 여유가 있었다. 이제 남은 여행은 공항으로 가는 길 뿐이지만, 부지런히 로마를 돌아다녔던 뿌듯함이 컸다.




버스로 향하는 길에 콜로세움을 마지막으로 가까이서 보고, 로마를 뒤로한 채 이동했다. 여운은 있지만 그래도 개운했던 투어였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인솔자님이 8일간의 여정을 첫날부터 오늘까지 요약해서 말씀해 주셨다. 여행을 함께 정리하면서 추억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하루하루는 관광이었지만, 모아 놓으니 '여행'이었다. 하루하루 돌아보니 또 완벽했다. 지나고 보니 다 소중했다.


여행 노트에 이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끄적였다. 이번 여행은 중간중간 변수가 있었고, 지난 동유럽 여행만큼 완벽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 데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그만큼 추억이 많았고, 무사히 잘 여행해서 그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했다.


두 번째 유럽 여행도 이렇게 무사히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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