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바로 그 나라의 먹거리다. 일상에서 흔히 먹는 음식이 아닌, 그 나라에서 맛보는 현지의 맛. 먹거리를 즐기는 것으로 여행의 맛은 살아난다. 이번 여행의 주목적이 '먹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소개할만한 음식들은 모두 맛보고 왔다.
여행 첫 번째 음식으로 우리는 '훠궈'를 떠올렸다. 유학생 시절, 학교 바로 근처에 훠궈집이 하나 있었는 데, 우리는 그곳의 단골손님이었다. 육수, 고기, 마장소스, 빼놓을 게 없이 모든 게 다 맛있었는 데, 특히, 마무리로 푹 끓은 육수에 넣어먹은 수타면은 아직도 그 식감과 감칠맛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사계절 내내 먹어도 매번 똑같이 맛있었던, 그곳의 맛과 분위기를 나는 그 후로 문뜩문뜩 애틋하게 그리워했다.
세월이 흘러, 이번에 다시 그곳을 찾아갔을 때, 안타깝게도 식당은 그 자리에 없었다. 실망하기에는 너무 늦게 와버린 우리의 탓이 애석했다. 아마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장면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갑자기 갈 곳을 잃은 우리는 대안으로 백화점에 위치한 한 훠궈집에 갔다.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하이디라오'는 아니었고, 현지인들 대기가 많은 한 식당이었다.
火锅(불 위에 끓이는 냄비 요리) 훠궈는 원래 충칭-사천이 원조인 음식이다. 두 지역을 여행했을 때, 지역별로 훠궈를 먹어보았지만 개인적으로 자극적인 매운맛 麻辣에 끌리지는 않았다. 이번에 훠궈를 먹을 때도 나는 마라탕, 버섯탕 말고 清汤(칭탕) 맑은 육수에만 재료를 넣어 먹었다.
한국식 샤브샤브와 비교하면 먹는 방식은 똑같은 데, 뭔가 미묘한 차이가 있다. 훠궈가 가끔 당긴다는 표현을 할 때 분명 샤브샤브 느낌은 아니다. 훠궈가 뭐랄까 조금 더 묵직한(?) 느낌이라 해야 할까, 표현하기 참 어려운 것 같다. 어쨌든, 오랜만에 먹는 '여행의 맛'이라 그런 지 젓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직장인답게 소고기牛肉도 양껏 시켜 먹었다. 기대했던 장소에서의 맛은 아니었지만, 아쉬움이 아쉬움을 남겼지만, 한 끼의 식사를 최선으로 즐겼다.
( 바누훠궈는 현지에서 프리미엄 훠궈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하이디라오 훠궈집처럼 서비스 수준이 높았다. 가격은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여행 둘째 날은 숙소 근처에 위치한, 四季民富 '사계민복'이라는 음식점에서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북경 음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베이징 덕'을 먹기 위해 오픈런을 했다. 베이징 오리 烤鸭는 중국의 과거 황실과 귀족을 위한 잔치 요리였다. 북경에서 요리 기법이 정립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베이징 덕 요리의 묘미 중 하나는 직원의 칼질 퍼포먼스(?)를 구경하는 것이다. 직원은 '이 오리가 당신이 먹게 될 오리입니다'라는 손짓과 함께, 껍질과 살을 발라내는 작업을 시작한다. 북경 오리 요리의 핵심이 바로 식감을 살리는 손질이다.
우리는 오리 반 마리와 밀전병, 콩싹무침, 그리고 볶음밥을 먹었다. 밀전병에 고기와 채소들을 넣고 소스를 찍어 먹어보았다. 아는 맛이지만 오랜만에 먹어보는 그 맛, 맛보는 순간 북경에 온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느꼈다. 부드러우면서도 입안이 꽉 차는 맛이었다. 계속 먹다 보니 조금씩 느끼함을 느꼈지만, 그래도 이 식사 자리가 그저 좋아서 즐기면서 먹었다. 창 밖 너머의 풍경도 반찬삼아 보며, 이른 점심의 여유를 느긋하게 음미했다.
여행 마지막 날, 어느덧 여행이 끝나가는 늦은 저녁에 우리는 왕푸징에서 마지막 한 끼를 하기로 했다. 요즘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는 '헌 지우이치엔' 很久以前이라는 양꼬치 집에 갔다. 양고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꼬치와 맥주'가 주는 그 분위기를 놓칠 수는 없었다.
친구는 양꼬치를, 나는 삼겹살꼬치를 주문했다. 예전에 학교 근처 꼬치집에서 냉면을 항상 같이 시켜 먹었던 기억을 되살려 냉면도 시켰다. 불판에 꼬치가 익어가는 틈에 우리는 여행 마지막 날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여행은 끝이 있어서 늘 아쉬운 법이다. 맥주잔을 부딪히며 우리는 무르익는 여행의 밤 분위기를 들이켰다.
야식으로 딱 좋았다 싶은 음식이었다. 맛은 아는 맛 그대로 보다 조금 더 맛있었다. 그리고, 식당 안에 한국 유학생들이 유독 많이 보였는 데, 왠지 모르게 부러웠다. 우리도 한 때 그랬었지 싶으면서도, 그때로 돌아가면 취업 준비를 또 해야 한다 생각하니 지금이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여행의 맛은 '추억'이면서도 '현실'이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북경에서 우리는 아는 맛을 알면서도 먹어보았다. 훠궈도, 북경 오리도, 양꼬치도 한국에서 모두 맛볼 수 있지만, 우리는 현지의 그 분위기를 그리워했다. 음식의 맛보다 그때 그 시절의 시간을 그리워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찌 됐든 우리는 무사히 기억 속의 맛을 되찾았다. 여행의 맛은 이렇게도 애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