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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푸징 거리에서

일상이 여행이던 시절을, 다시 걷다

by 미리


왕푸징은 북경을 대표하는 쇼핑 거리다. 옛 과거에는 이곳 왕족 저택 근처에 우물이 있어서 王府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이 바로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여행 내내 낮과 밤의 왕푸징을 즐길 수 있었다.


8년 전 교환학생 시절, 중국 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아서 초반에는 고생을 했었다. 향신료 향을 좋아하지 않아서 중국 특유의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평소에는 흰쌀밥을 포장해 와서 기숙사에서 친구와 음식을 해 먹었다. 고기도 구워 먹고, 한국 라면도 자주 먹었다. 그러다 조금 질릴 때면 보상심리로 우리는 '왕푸징'에 갔다.


백화점이 즐비한 그곳, 목적지는 주로 식당가였다. 평소 아낀 돈을 대부분 이곳에서 썼던 것 같다. 현지인들에게는 일상의 여유겠지만, 유학생들에게는 일말의 여유 같은 숨구멍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참 희한하게 이번 여행 때, 이곳만큼은 익숙하게 느껴졌다. 쇼핑하고, 식사를 하러 오는 현지 사람들 사이에 어색함 없이 섞였다.



중국에 다시 온다면, 먹고 싶었던 음식 중 하나는 '동북요리'였다. 东北菜 동베이차이라고 흔히 부르는 데, 예전에 자주 사 먹곤 했다. 그 맛이 그리워서 학교에 다시 갔었는 데, 식당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다른 식당을 찾아보다가 왕푸징의 어느 한 백화점에 동북음식을 파는 곳이 있어서, 기대를 안고 방문했다.


동북요리 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대표적으로 꿔바로우, 티에궈둔, 토마토 달걀볶음, 지삼선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꿔바로우 锅包肉와 지삼선 地三鲜이 먹고 싶었다. 지삼선은 땅에서 나는 세 가지 재료(감자, 가지, 피망)로 만든 볶음요리로, 처음 먹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양념도 밥반찬으로 딱이었고, 가지의 재발견이었다랄까.


꿔바로우
띠싼시에


두 요리만 있으면, 밥 한 공기를 뚝딱했던 그 시절, 그때의 음식. 그 맛은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먹었을 때, 참 반가웠다. 바삭하고, 적당히 새콤하고, 딱 깔끔했다. 띠싼시에도 짭조름하게 밥과 잘 어울렸다. 학교 앞에서 먹었던 그 시절의 음식이 더 맛있긴 했지만, 이게 어디야 싶은 마음이 컸다.


다시 APM백화점으로 가서 구경을 했다. 줄 서서 갓 나온 에그타르트도 먹고, 유행하는 밀크티도 사 먹었다. 팝마트 구경도 하고,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서점에 들어가서는 쭈그리고 앉아서 읽기 쉬운 동화책 한 권도 읽었다. 나서는 길에 눈길이 가는 책이 있어서 기념으로 구매했다. 《没关系,因为我是猪》, 직역하면 '괜찮아, 나는 돼지니깐'라는 제목의 만화책이었다.



저자는 어렸을 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다. 어른이 되면 신기한 능력을 갖게 돼서 사람들이 기쁘고, 즐거워하는 세상을 마음껏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었을 때 현실은 이랬다. '世界很大, 自己很小', 세상은 넓고 자신은 너무 작았다.

어느 날, 저자의 마음속, '小孩'(아이)가
구상화되는 걸 느꼈는 데, 그건 바로 한 마리의 돼지였다. 자신이 한 마리의 돼지라는 생각을 갖자, 모든 세상이 단순해졌다. 실수해도 괜찮고, 세상을 바꾸지 못해도 괜찮았다, 돼지니깐! 저자는 말한다. '어차피 처음 돼지가 돼 보는 거니깐, 그 누구도 어떤 돼지가 완벽한 지 모르니깐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면서, 세상을 탐구하다 보면 별빛 찬란한 세계를 누비게 될 것이다.'

我不相信未来,我相信的是,人们内心的‘‘小孩’’是不会长大的,那才是未来的希望。
나는 미래를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은 사람들 마음속의 '아이'는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미래의 희망이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어른이 되지만, 마음속의 '아이'는 자라지 않고 그대로 있다.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천진난만한 그 어린 마음은 여전히 우리들 마음속에 있다. 8년 전 우리는, 덧없이 해맑게 세상을 경험했다. 지금의 우리는, 그 마음을 따라서 다시 북경으로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여행하는 3일 동안, 매일 왕푸징에 들렸다. 귀국할 때 하나쯤은 '익숙한 풍경'을, 또다시 추억할만한 장소를 눈에 담아 갈 수 있었다. 돈 주고 여행까지 와서 쇼핑거리에서 시간을 쓰냐고 할 법도 하지만, 괜찮았다. 상점도, 사람들도, 불어오는 바람도, 거의 모든 게 익숙해서 오히려 좋았다.


어쩌면 우리는 '일상이 여행이던 그 시절'을 다시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외국에서 살아본다는 건 매일이 여행인 기쁨을 누리는 것과도 같다. 다시 찾은 왕푸징 거리는 일상이 여행은 아니더라도, 여행이 일상 같은 기분을 선사했다. 특별하게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의 여유가 여행 중에도 가능하단 걸 느꼈다.


낮과 밤의 왕푸징 거리를 모두 걸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언제든지 다시 지하철을 타고 오면 되는 나들이 장소였지만, 지금은 아니니깐, 그래서인지 밤거리가 유독 새로웠다. 여운이 밤처럼 깊어졌다. 언젠간 또 한 번은 다시 이곳에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별 하나를 조용히 마음에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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