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기에는 북경의 대표 관광 명소를 소개하는 장면은 담겨있지 않다. 이번 여행은,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소를 꼽아서 추억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장소'를 선택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곳은 예전에 다녔던 학교였고, 그다음이 '올림픽 공원'과 '경산 공원'이었다.
나와 친구는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공원을 참 좋아했다. 단순히 자연이 좋아서, 쉼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중국 현지인들에게 공원은 삶의 터전과도 같기에, 공원을 찾을 때마다 항상 즐거운 추억을 얻어갔던 기억이 많다. 공원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고, 또 그들의 '삶'이 있었다.
올림픽 공원과의 추억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대학생 때 대외활동으로 북경을 방문했을 때 올림픽 공원을 방문하는 일정이 있었다. 노란색 단체 티셔츠를 입고, 한 여름의 무더운 어느 날 그곳을 구경하고 갔었다. 그리고, 교환학생으로 다시 북경을 찾았고, 올림픽 공원에 다시 갔었을 때는 현지인처럼 그곳을 즐겼다.
당시, 올림픽 공원은 주로 해 질 녘에 찾아갔었다. 그 시간에 가면 사람들이 많았는 데, 말 그대로 '사람 구경'을 했다. 춤을 추고, 붓글씨를 쓰고, 연을 날리고, 운동하는 사람들로 공원은 늘 활기가 넘쳐났다. 특히, 현지인들이 음악에 맞춰 다 같이 춤을 추는 모습이 그렇게 인상 깊었었다.
그때의 감흥을 기대하며 8년 만에, 올림픽 공원을 다시 찾아갔다. 기대에 부흥하길, 예상하는 장면을 마주하길 바랐다. 막 도착했을 때, 입구에서부터 우리가 찾던 퍼즐이 조금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춤을 추는 사람이 드문드문 보였다.
뭔가 아쉬운 느낌을 받고,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갔을 때, 음악 소리가 여러 군 데서 들려왔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잠시 서서 노래를 감상했다. 두 분이서 노래 부르며 춤까지 추셨다. 날은 어느새 어둑해지고,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음악이 더해지자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갑자기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유 모를 감정이 몰려왔지만,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남들 시선 신경 쓰지 않고 순간을 즐기는 모습에 울컥했던 것 같다. 체면 차리지 않고, 본능적으로 음악에 몸을 맡길 수 있는 그런 시선의 자유. 문화의 차이지만, 그런 무해한 모습들이 나를 눈물짓게 했다. 자연스럽게 고인 눈물조차 부끄러워서 감추는 나는, 이들에 비하면 얼마나 솔직하지 못한 걸까. 눈물조차 해방되지 못한 그런 기분이 잠시 들었다.
노래를 다 듣고, 공원을 느긋하게 걸었다. 한두 명이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무리 지어 단체로 춤을 추고 있었다. 춤추는 사람들 곁으로 다가갔다. 매일 이렇게 추는 건지 안무가 딱딱 맞아 보였다. 그런 모습이 우리 눈에는 참 즐겁게 보였다. 음악과 춤, 그리고 공원, 이 삼박자가 고루 갖춰졌다.
익숙한 뒷모습이 보여서 다가갔는 데, 아까 노래를 부르셨던 아저씨를 다시 마주했다. 부채춤을 추고 계셨다. 군무에 맞춰서 어찌나 잘 추시던지, 아저씨도 우리를 알아보시고는 손짓을 보내셨다.
서로 웃음이 나왔다. '아저씨가 왜 여기서 나와?' 이런 느낌을 받아서 친구와 한참을 웃었다. "여기서 또 만나네요"라고 말했더니, 멋쩍게 웃으시면서 아저씨는 딱 한 마디 하셨다. "锻炼身体~", 몸을 단련한다, 즉 운동하는 중이라는 말이었다.
뚜안리엔션티, 이 한 마디가 중국 공원 문화를 설명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즐기면서 건강을 챙기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공원을 가득 메웠다. 올림픽 공원은 야경도 물론 아름답지만, 현지인들의 모습이 더 화려하게 인상 깊었다.
다시 찾은 올림픽 공원은 여전히 활기찼다. 두 명 이상만 모이면 무대가 되는, 남녀노소 즐기는 현지인들의 공연장. 우리가 기대했던 장면을 고스란히 마주할 수 있어서 기뻤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저녁을 올림픽 공원에서 보낸 건 참 잘한 선택이었다. 우리만의 힐링 장소가 그들에게는 일상인 게 묘하면서도, 황홀한 시간이었다.
우리의 또 다른 힐링 스폿은 '경산 공원' 景山公园이다. 자금성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유명한 데, 유학생 시절 우리는 경산 공원의 산을 네다섯 번은 올랐었다. 북경에 가족이 왔을 때, 가장 먼저 데려갔던 곳이기도 했다.
어느 한 날은 우리가 1월 1일에 일출을 보러 이곳을 찾았던 적이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택시를 타고 갔는 데, 미세먼지가 심해서 결국 일출을 보지 못했었다. 실망하고 있었는 데, 매일 이곳을 운동삼아 오시는 듯 보이는 한 할아버지께서 무심하게 한 마디 건네셨다. "해는 내일도 또 뜰 텐데 뭘 그래~" 이런 뉘앙스였다.
그 말의 의미를 이제는 더 잘 알 것 같은 지금의 우리는 경산공원을 다시 찾았다.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여섯 시쯤 일어나서 부지런히 그곳으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려서 공원 입구까지 걸어가는 북경의 아침 풍경은 한적하면서도 산뜻했다.
공원 입구에 도착해서, 잠시 걷다가 낮은 높이의 언덕을 올랐다.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서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세먼지는 없고, 하늘은 적당히 맑았다. 아침이어서 햇살은 그렇게 뜨겁지는 않게 느껴졌다. 쉬엄쉬엄 올라가다 보니 어느덧 정자가 보이고, 목적지가 보였다.
어제만큼 날이 화창하지는 않아서 아쉬웠다. 어제 왔으면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더 깨끗하게 잘 보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었다. 그러다 문뜩, 그런 마음이 욕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눈에 보이는 게 얼마나 맑은 지도 중요하지만,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국하기 전 마지막 장소로 우리는 이곳을 택했고, 다시 이곳을 올랐다.' 이 사실만큼 중요한 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을 더 즐겨보기로 했다.
북경의 중심부와 같은 자금성. 이른 아침부터 견학 온 학생들이 입구에 줄지어 서있었다. 사진으로 다 담기지 않는 규모의 웅장함,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우리는 이곳에 왔다. 북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그 탁트임의 전율, 우리는 그 분위기를 다시 느껴보며 천천히 정상을 한 바퀴 돌았다.
명상하는 사람들 곁에서 같이 잠시 명상도 해보고, 지나가는 사람도 구경하면서 휴식했다. 공항으로 가야 하는 마지막 일정이 있어서 오래 머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이곳을 올랐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자금성을 뒷배경으로 우리는 셀카를 찍고, 이번 여행을 의미 있게 마무리했다.
북경의 볼거리는 참 많다. 만리장성, 자금성, 천안문 광장, 이화원, 십찰해, 천단공원 등 수없이 많다. 다시 가보고 싶을 정도로 물론 다 너무 가볼 만한 곳이다. 그럼에도 이번 여행에서는 '올림픽 공원'과 '경산 공원'만 다시 찾았다. 관광 보다도 그곳의 정취가 더 그리웠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우리가 기대했던 '북경'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