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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옥 Nov 26. 2021

달팽이

시계 소리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안을 연신 쳐다본다. 주름살 같이 패진 벽은 금방이라도 와르르 무너질 듯하다. 아래 밑바닥 벽돌은 언제부턴지 푸르스름한 이끼가 군데군데 탁 달라붙어 있다. 지붕 처마 물받이에 빼죽이 내민 돌나물이 반갑다는 듯 인사를 한다. 척박한 자리에 생명이 날아들었다. 파란색 대문이 자기는 알고 있다는 듯 입을 앙 다물고 있다.


오늘따라 가방을 다 뒤져보지만 열쇠를 가져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전화하고 벨을 눌려 봐도 집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다. 담을 다 돌아봐도 뛰어넘을 높이는 아니었다.


한참을 대문 밖에 서성이고 있을 즈음 현관문이 열렸다. 마당으로 지팡이를 짚고 엄마가 나오신다.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그제야 들으셨는지 문을 열어주신다. 내 눈이 먼저 엄마의 오른 귀를 더듬고 있었다. 분명 보청기가 끼워져 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한 발 앞선 지팡이가 ‘툭 툭’ 바닥을 치며 앞장선다. 나도 그 뒤를 따라 거실로 들어섰다. 가방을 내려놓고 데운 우유와 바나나를 넣어 믹서 기에 갈았다. 바나나 라테를 예쁜 컵에 담았다. 엄마는 달달한 라테를 좋아하신다.

엄마가 라테를 처음 맛 본 건 지난겨울 바람이 매섭게 불던 날이었다. 지인들과 만나기로 한 찻집에 우연찮게 엄마도 함께하게 되었다. 80 노모가 난생처음 커피숍이라는 신문화를 접하고 신기한지 이리저리 찻집을 둘러보시더니 못 올 데를 온 것처럼 쑥스러워하신다. 찻집에서 따끈한 고구마 라테 한잔에 엄마가 뿅 가셨다. 고구마 라테가 엄마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 이후로 늘 바나나 나 고구마로 라테를 즐겨해 드린다.


라테 한잔씩을 마시며 오늘 하루 센터에서 어떤 수업을 했는지 궁금해 이것저것 물었다.

“엄마, 오늘 수업 프로그램은 뭐였어요? 노래도 불렀나요? ”

“애들이 왔다고? 걔들은 추석에 오고 또 온다나?”

“엄마는 무슨 말이야? 보청기 끼고 있는데 왜 엉뚱한 소릴 해? ” 톤을 높여 소리 지르듯 말했다. 그제야 엄마는 지금 보청기가 먹통이라고 하신다. 보청기에서 건전지 교체하라는 소리가 들렸는데 깜빡 잊었다고 한다. 내가 대문 앞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벨을 눌려도 엄마는 알 수가 없었다.



나도 한 때 원예치료사로 수업을 나갈 때가 있었다. 그날도 어르신들과 수업하기 위해 꽃을 한 아름 안고 성모의 집 문을 들어섰다. 어르신들이 일제히 꽃을 보고 몰려왔다. 비타민 주사를 맞은 듯 화색이 피어오르더니 금방 복사꽃이 만발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수업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어느 분이 귓속말로 하셨다. 이번 주에는 생화로 꽃꽂이를 할 거라고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더니 기억을 하신 분들이 있었다. 소재를 분류해서 각자에게 나누어 드렸다. 자기 몫의 꽃만 다 사용해서 꽂으라고 당부를 했다. 오아시스에 물을 먹인 다음, 각자 미니 바구니 속에 잘라서 넣어 드렸다. 칼로 직접 잘라보라고 했더니 두부 같다고도 하며 신기 해 했다.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이며 사선으로 꽃을 자르는 방법과 꽃의 크기에 따라 꽂는 순서를 천천히 설명을 드렸다. 꽃이 내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최고의 예쁜 모습을 꽃바구니에 꽂아보자고 했다. 가위질에 손놀림이 어눌한 분들은 보조 선생님들이 함께 해주셨다.

어른들이 꽃을 꽂는 동안 옛 추억들은 달음질쳐 들국화가 넘쳐나던 고향의 뒷동산도 들르고 풋풋한 소년에게 들 꽃 한 움큼 수줍게 받았던 냇가도 다녀오고 하는 사이 먼저 끝낸 분들이 나머지 분들의 마무리를 도와주기도 했다. 꽃바구니를 봐달라며 칭찬을 기다리는 어르신들 사이에 성주에 미자 할머님의 꽃바구니를 보고 깜짝 놀랐다. 꽃은 없고 편백 잎만 듬성듬성 꽂혀있었다. 소재를 똑 같이 나누어드렸는데 꽃은 하나도 없었다. 유난히 얼굴이 희고 머리카락이 뽀야신 수연 할머님 꽃바구니에 꽃이 모두 이사와 있었다. 수연 할머님은 귀가 잘 안 들리신다. 입 모양과 표정을 보고 감으로 알아들으신다. 꽃을 빽빽이 꽂으시고 천진 난 만하게 웃으셨다. 자기 앞 꽃만 사용하라는 말은 삼켜버렸다. 먼저 가져가서 꽂으면 되는 줄 알고 계셨다.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핀잔을 주지만 할머니는 들리지 않으신다. 입에는 여전히 미소가 그득하다. 어떤 소리를 해도 마냥 행복할 수 있어 좋다. 수연 할머님에게 미자 할머니 꽃바구니를 보여주며 꽃을 뽑아 드리자고 하니 그러자고 하셨다.


5살 아들이 만났던 달팽이가 미자 할머니를 닮았다. 개울가 초록 잎에 앉은 달팽이를 처음 만난 아들은 물끄러미 바라보다 집에 가져가겠다고 떼를 썼다. 등껍질을 한 짐 업은 달팽이는 더듬이만 날름거리며 초록 잎 채로 아들을 따라왔다. 풀을 깔아준 달팽이 통은 시도 때도 없이 불려 다녔다. 친구들이 오면 제일 먼저 자랑한다. 달팽이를 가운데 두고 시끌시끌하지만 다행히 달팽이는 듣지를 못한다. 더듬이로 냄새를 맡으며, 더듬이 끝에 눈이 있다.


새로운 건전지를 끼우고 늘 하던 대로 잘 들리시냐고 물었다. 엄마는 벽 쪽으로 귀를 기울이며 ‘째깍째깍’ 시계 소리에 집중한다. 초시계의 선명도로 기준을 삼으신다. 함께 벽시계를 쳐다보다 아침에 남편이 내 코 고는 소리에 한 숨도 못 잤다는 말이 생각났다. 워치와 연동된 휴대폰을 열어 어젯밤 나의 수면을 찾았다. 거기는 수면 중 코골이 20분이라고 적혀있다. 그 20분을 눌러보았다. “크으으윽 크으 커 커 커 푸우~~~ 커”

깜짝 놀란 엄마가 “이게 무슨 소리고? 어디서 나는 소리고? 뭔 소리가 이렇게 크노~~ ”

엄마도 내 코 고는 소리를 다 들었다. 건전지를 늦게 끼워드릴 걸 그랬나 보다.


결코 잘 들리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닌듯하다 못 듣는 것이 유익할 때도 있다. 달팽이는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아는 것 같다. 적당히 소리를 차단하고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한다. 엄마도 때로는 듣기 싫은 소리는 보청기 핑계를 대며 달팽이집으로 함께 쏙 들어가 버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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