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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렉시테리언 Oct 19. 2021

“행복한 일을 해야지.”

내가 제대한 이유

이탈리아 출장 중에 해상에 정박해 있는 선박에 오를 일이 있었다. 선박에 오르기 위해서는 지상에서 안전교육을 받고 보호의, 헬멧, 고글 같은 안전 장비를 착용해야 했다.


“하하, 기본 군사 훈련 같네요.

처음 훈련소에 입소하면 소지품을 반납하고 지급받은 옷으로 갈아입거든요.”


보호 장구를 착용하던 한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군에 있었나요?”


“네, 미 해군에서 복무했어요.”


“반가워요. 저는 예비역 공군 소령입니다.”


아무리 제대를 했지만 전직 군인이나 현역 군인을 만나면 오랜 전우를 만난 것 같은 친근함과 반가움이 있다. 미 해군 대위로 7년 정도 근무했다는 그는 주로 항공모함에서 근무했고, 한국에도 몇 차례 입항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내가 ‘공군에서 10년 정도 복무했다’라고 하자 그가 물었다.


“10년을 복무했다고요? 그런데 왜 제대했어요?”


보통은 훨씬 이전에 전역하거나 10년 이후에는 계속 근무하기 마련인데, ‘10년씩이나 근무하고 왜 제대를 했냐?’라는 것이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내 제대가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전역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건 사하라 사막에서였다. 파병을 가기 전에도 전역에 대한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마음을 굳히고 결심한 것은 UN 서부 사하라 임무단(MINURSO)에서 일하고 난 뒤였다.


가장 큰 이유는 ‘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어학 장교 출신인 덕에 공군에서 개인적으로 하고 싶던 ‘대외 업무’를 오랫동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급이 올라가고 연차가 쌓일수록 그런 일만 할 수는 없었고, 주특기인 ‘군수’ 분야 일을 해야 했다. 물론 군수 분야 일도 재미있긴 했지만 전공인 ‘국제학(International Studies)’과 보다 관련 있고 더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MINURSO 파견이 끝나갈 무렵 프랑스 출신 옵서버(Observer)가 물었다.


“진, 귀국하면 어떻게 살 거야?”


“글쎄. 공군으로 복귀하면 다시 군수 일을 하겠지. 그게 고민이야.

전공 분야인 국제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데, 사실 군수 분야가 내 전공과 맞는 건 아니거든.”


“국제관계나 국제정치 쪽 일이 좋아?”


“응. 이번에 MINURSO에 근무하면서 확실히 알았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쪽 분야라는 것을.

그런데 직업 안정성도 생각해야 하고. 지금 나이에 이직이 쉽지도 없잖아. 그래서 고민이야.”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응?”


“무엇을 하던, 진 네가 행복한 일을 해야지. 안정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래. 적은 돈을 벌더라도 스스로 행복한 일을 하자.’


국방대학교에서 평화유지활동(PKO) 기본 교육을 받던 게 생각났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공부하고 여유시간에 평소에 관심 있던 외국어를 공부하는 삶. 이건 그때까지 군 생활을 하며 느꼈던 성취감과 만족감과는 차원이 달랐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라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리고 사하라 사막에서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역할이 분쟁 해결이나 역내(Regional) 평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모르지만, 만의 하나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다면 그걸로 만족하고 행복했다.




그렇게 전역 신청서를 제출했다.


공군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제대하고 비록 원하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군에 있을 때보다 훨씬 적은 월급 불안정한 비정규직(임기제 공무원)과 구직자의 삶을 외줄 타기 했지만, 글을 쓰는 이 순간처럼 제대 후 삶은 너무나 재미있고 행복했다.


다시 구직자 신세가 되었을 때 글로벌 기업의 임원으로 있다가 퇴직한 미국인 친구가 조언과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가장 행복할 것 같은 일 다섯 가지를 적어보세요.


당신의 경력이나 업무 숙련도 이런 것은 모두 무시하고요.


그리고 꿈에 그리는 직업을 찾을 때까지 처음부터 도전하세요.


행운을 빌어요.”



"행복한 일을 해야지."라고 조언해 줬던 프랑스 옵서버(Obse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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