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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렉시테리언 Oct 21. 2021

피카소와 평화

나는 개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요즘은 많이 고쳐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아지를 보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병 아닌 병’이 있었다.


서부 사하라에서는 그토록 좋아하는 개를 마주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슬람권에서는 개를 ‘불결한 동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서부 사하라에도 개는 존재한다. ‘불결한 동물’이 얼마나 대접받을까? 서부 사하라 개들은 보통 털이 짧은 한국의 ‘황구’처럼 생겼는데, 천대받아서 마른 탓인지 황구보다 체형이 날렵하고 길쭉한 주둥이를 갖고 있었다.


개를 싫어하는 현지인들은 개를 보면 돌을 던져 멀리 쫓아버리곤 했다. 그래서 서부 사하라의 개들은 항상 꼬리를 축 내린 채 눈치를 살피며 사람들을 피해 다녔는데, 혹시라도 사람이 만지려고 하면 줄행랑치기 바빴다.


한 번은 정찰(Patrol) 중에 여느 서부 사하라 개와 다른 외모의 개를 만났다. 복슬복슬한 하얀 털이 온몸을 뒤덮고 있고 눈과 귀 주위에 판다처럼 갈색 털이 동그랗게 그려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내가 쓰다듬기 위해 다가가자 역시나 개는 줄행랑쳐버렸다. 그걸 본 모로코 군인들은 나를 위해 개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개를 쫓아낼 때와 마찬가지로 돌을 집어던지며 개를 불렀다.




이슬람 문화에서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개인마다 차이는 있다. 하루는 옆 팀 사이트(Teamsite) 동료가 전화를 걸어왔다.


“진, 이번에 우리 팀 사이트에 새끼 강아지가 여럿 태어났는데, 그 팀 사이트에서 둘을 길러보는 건 어때?”


마음 같아서야 당장 보내달라고 하고 싶지만, 우리 팀 사이트에도 무슬림 옵서버와 민간인이 있었기 때문에 혼자 결정할 수는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러고 싶은데 글쎄. 일단 팀 사이트랑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전화를 끊고 강아지에 대해 잊고 있었다. 얼마 뒤 군수 연락 정찰(Logistics Link Patrol) 차 옆 팀 사이트를 다녀오게 되었는데, 돌아와 보니 목록에 없는 박스가 하나 실려 있었다. 박스 위에는 구멍이 몇 개 뚫려 있고 박스 바닥은 젖어 있었는데, “이건 뭐지?”하며 박스를 여는 순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새끼 강아지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 긴장한 강아지들이 실례를 한 것이었다.


팀 사이트 지휘관들이 합의해 강아지를 우리 팀 사이트로 보내기로 한 것이었다. 처음 연락받은 나에게 강아지 이름을 지을 권한이 주어졌다. 고민할 것도 없이 우리 팀 사이트 정찰 코드명인 ‘피카소’와 ‘카멜’로 이름을 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성의 없는 작명이다.)


다행히 현지 민간인들이 강아지를 잘 보살펴 줬다. 옵서버(Observer)들이 주로 돌보기는 하지만 요리를 하는 현지인들이 자연스레 강아지 밥도 챙겨줬는데, 다행히 우리 팀 사이트 요리사들은 강아지를 좋아했다. 덕분에 보통의 서부 사하라 개와 달리 포동포동 살이 올랐다.




반대로 서부 사하라에 와 생전 처음 푸대접을 받는 개도 있었다. 한국으로 귀국을 앞두고 임무단 본부에서 행정 절차를 밟고 있을 때, 우연히 UN 서부 사하라 임무단(MINURSO)에 파견된 한국군 장교 4명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있었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국군 선배 한 명이 “근처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산책 겸 그 식당을 찾아가 보았다. 주워들은 정보로 그 가게를 찾아갔더니 개 한 마리가 가게 앞 나무에 묶여 있었다.


“저거 진돗개 아니야?”


“에이 선배님. 여기에 진돗개가 왜 있겠어요. 그냥 평범한 서부 사하라 개 같은데요?”


“아니야. 생김새, 특히 저 꼬리가 진돗개 맞는 것 같은데?”


한국군 선배는 그 개가 진돗개라고 확실했지만, 내 눈에는 평범한 서부 사하라 개로 보였다. 우리의 목적이 개가 아니라 서부 사하라에 있는 한국인을 찾는 것이었기 때문에 거기까지만 하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정말 한국 여자 주인분이 계셨다. 서로 놀라 당황하면서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짧은 대화를 나눴다.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여자 주인분이 가게를 나오자 나무에 묶여 있던 개가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얘는 진돗개 ‘평화’ 예요.”


놀랍게도 정말 진돗개였다. 게다가 이름도 ‘평화’라니. 진돗개를 맞힌 선배가 신나 하며 이야기했다.


“우와, 정말 인연인데요? 저희가 UN 평화 유지군이에요.”


“아 그래요? ‘평화’도 여기 와서 고생이 많아요.

한국에서는 진돗개라고 대접받다가 여기에서 매일 돌을 맞고 있으니 얼마나 당황스럽겠어요.”



그러게 말이다. 나름 천연기념물에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개인데, 이곳에서는 모든 개와 평등하게 ‘불결한 존재’가 되었으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래도 떠날 때가 되니 왠지 운명 같은 기대감이 든다. 서부 사하라에 유일한 진돗개 이름이 ‘평화’라니. 먼 길을 여행 온 한국의 ‘평화’가 서부 사하라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제발 그렇게 해주렴. 평화야.


팀 사이트에 처음 도착한 '피카소'와 '카멜'
정찰 중 만난 판다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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