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보령을 가야 하나?”
친구 하나가 단체 대화방에 다큐멘터리에 나온 ‘보령 천북 굴단지’ 영상을 올리며 말했다.
“나도 이 영상 본 적 있는데 괜찮아 보이더라. 언제 시간 맞춰서 가볼까?”
마침 그 영상을 본 적이 있던 터라 친구들에게 흔쾌히 여행을 제안했고, 지난 주말 천북 굴단지에 다녀왔다. 한 친구는 “지난 1년 동안 먹은 굴의 양보다 하루 동안 먹은 굴의 양이 더 많은 것 같다.”라며 한동안 굴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굴 요리를 먹다 보니 ‘한국에서 굴이 얼마나 저렴한지’ 이야기가 오갔고, 다른 나라의 굴 요리와 가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서부 사하라에서도 딱 한 번 굴 요리를 먹어 본 적이 있다. 정확히는 생 굴(굴 회)이었는데, 바닷가로 정찰(Patrol)을 갔다가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데, 동료 옵서버(Observer) 한 명이 생굴 몇 조각을 시켜 레몬즙을 뿌려 먹고 있었다.
사하라 사막에 있으면 안 좋은 점이 신선한 해산물을 맛 볼 기회가 적다는 것인데, 오랜만에 굴을 보고 신난 나머지 동료에게 한 조각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마음씨 좋은 동료는 아무 말 없이 굴 한 조각에 레몬즙을 뿌려 건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격이 꽤 비싼 편이라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서부 사하라에서 신선한 해산물을 전혀 맛볼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UN 서부 사하라 임무단(MINURSO) 본부가 있는 라윤(Laayoune)에는 바닷가와 항구가 있었는데, 그곳에선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었다.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한 곳 더 있는데, 바로 ‘다클라(Dakhla)’라는 도시다. 다른 글에서도 짧게 소개한 적이 있는데, 다클라는 휴양지로 유럽인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항구 덕분에 다클라에서도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생 굴을 맛 본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도대체 사막에 뭐가 있기에 분쟁을 하는 거예요?
사막에서 석유도 나오나요?”
서부 사하라 분쟁에 대해 이야기하면 이런 질문들을 한다. 서부 사하라에 석유나 천연가스가 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다. 몇몇 탐사에서 충분한 가능성을 보고 일부 유럽 기업이 실제 채굴을 시도했지만, '해결되지 않은 분쟁 지역에서의 탐사와 개발'에 대한 비판과 현지인들의 반대에 부딪쳐 대부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UN도 서부 사하라 주민의 동의 없는 개발과 탐사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앞으로도 서부 사하라에서의 석유나 천연가스 채굴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있을까? 확실한 두 가지 자원이 있다. 첫 번째는 풍부한 어족 자원이다. 정확히는 어족 자원이 풍부한 대서양을 끼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 북서쪽에는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Canary Islands)’라는 곳이 있다. 최근 라팔마(La Palma) 섬 화산 폭발로 많이 보도되기도 했고, 몇 해 전 ‘윤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우리에게도 꽤나 익숙한 곳이 되었다.
사실, 카나리아 제도는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알려져 있었다. 카나리아 제도는 7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섬이 그란 카나리아(Gran Canaria) 섬이다. 그란 카나리아에는 ‘라스팔마스(Las Palmas)’라는 유명한 항구가 있는데, 이곳에서 우리 원양업이 큰 활약을 했다. 한창이던 1970년대에는 약 1만 5천 명의 한국인이 이곳에 거주했다고 하는데, 라스팔마스 전체 인구가 30만 명 인 것을 생각하면, 한 나라 출신 외국인으로는 적은 수가 아니다.
카나리아 제도와 인근 해역에 풍부한 어족 자원이 있다면 대서양을 맞대고 있는 서부 사하라도 오죽할까. 실제로 라윤 항구나 다클라 항구에 가면 어업 활동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고, 다양한 종류의 생선과 해산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서부 사하라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풍부한 자원은 인산염(Phosphate)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얼라이드(Allied)”에는 모로코에 주둔하고 있는 독일 대사를 암살하기 위해 캐나다 장교 맥스(브래드 피트)와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 마리안(마리옹 코티야르)이 독일 대사관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맥스는 독일 대사관에 자신을 광산업자로 소개하며 접근하는데, 맥스가 모로코에서 찾고 있던 광물이 바로 인산염이다.
인산염은 꼭 필요하지만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광물이다. 오래전에 ‘인산염을 뺀 믹스 커피가 출시됐다.’라는 광고도 나왔는데, 많은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인산염은 질소와 함께 합성 비료에 꼭 필요한 2가지 요소인데, 공기에 있는 질소와 달리 인산염은 광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대체품 생산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한 기사에서는 “인산염이 없었다면, 인류는 증가하는 인구에 필요한 식량을 공급할 수 없었다.(Without phosphate, humanity's growing population couldn't feed itself.)”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서부 사하라 현지인(사하라위, Sharawi)들은 이 두 풍부한 자원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자원 대부분이 모로코 통제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대신 모로코는 이 자원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모로코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약 100km 길이의 컨베이어 벨트(Conveyor belt)가 있는데, 이 벨트로 인산염을 운반한 뒤 서부 사하라의 수도인 라윤 항구를 통해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심지어 모로코의 인산염 공급 비중은 전 세계 공급량의 약 70~80%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서부 사하라에서의 분쟁이 심화될 경우 전 세계 식량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족 자원 역시 마찬가지다. 해안을 끼고 있는 서부 사하라의 서쪽 지역 모두를 모로코가 통제하고 있어서 사하라위는 해안이나 바다로의 접근 자체가 제한되고 있다. 대신 모로코가 라윤과 다클라를 통해 다양한 어족 자원을 유럽 등으로 열심히 수출하고 있다.
사하라위도 해안이나 바다 접근이 가능했다면 어쩌면 지금쯤 세계 곳곳으로 인산염도 수출하고, ‘모로코 산’ 해산물이 아닌 '서부 사하라 산'으로 수출되어 많은 식탁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겨울 끝자락에 먹은 굴 덕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언젠가 서부 사하라 자원에 대한 짤막한 글을 써 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뜬금없는 연상에서 시작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지도를 보면 '반도'형태의 다클라와 천북 굴단지 앞의 반도처럼 생긴 안면도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천북 굴단지 지도를 보다가 무의식 중에 '반도'하면 생각나는 다클라가 떠올라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오랜만에 서부 사하라 자원에 대한 최근 내용도 찾아보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참고로, 모로코는 2021년 4월 다클라에 새로운 항구 건설을 시작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