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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렉시테리언 Oct 03. 2021

오렌지를 모르는 아이

사막을 가로질러 정찰(Patrol)을 하다 보면 현지 민간인들을 마주칠 때가 있다. 낙타나 염소와 같은 가축 떼를 이끌고 이곳저곳을 이동하는 베르베르(Berber) 유목민들이다.


긴박한 상황만 아니면 정찰팀은 보통 차를 세우고 민간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텐트를 방문하기도 한다. 현지인들과의 소통도 중요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헤어질 때면 생수나 점심으로 챙겨온 간식거리를 건네주곤 한다. 사막 한가운데서 깨끗한 생수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이들에게 별미로 줄 수 있는 비스킷이나 과일이 얼마나 귀한지 알기 때문이다.


사막을 달리고 있는데 얼핏 봐도 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Peacekeeping” (차량 정차를 의미하는 무선 통신 용어)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사막에서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서인지 나 같은 동양인을 처음 봐서인지, 아이들은 반가움과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이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점심으로 챙겨온 오렌지와 떠먹는 요구르트 그리고 생수 몇 병을 건넸다.


아이는 생수는 받아 가면서 이상하게 다른 간식거리는 받지 않으려 했다. 동행한 폴리사리오(Polisario) 연락장교가 “괜찮아. 먹는 거야” 라고 말을 해도 아이는 받으려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연락장교는 그 자리에서 오렌지와 떠먹는 요구르트를 까서 직접 먹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이는 그제야 우리가 건네 준 먹을거리를 받았다.


아이는 오렌지와 떠먹는 요구르트를 처음 본 것이었다.




모로코 통제 지역이 폴리사리오 통제 지역과 다른 것 중 하나는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모로코는 자신들의 통제지역을 사실상 영토화하면서 많은 기반 시설을 설치했는데, 휴대전화 중계기도 그 중 하나였다. 덕분에 모로코 통제지역에서는 휴대전화에 모로코 선불 심 카드(Sim card)만 넣으면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


임무단 본부가 있는 라윤(Laayoune)으로 행정 정찰(Admin. Patrol)을 가던 때였다. 라윤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출발해 3~4시간 동안 폴리사리오 지역 사막을 달려 흙둑을 넘고, 다시 모로코 지역을 4-5시간 달려야 하는 긴 여정이었다.


흙둑을 넘자마자 같은 차량에 타고 있던 이집트 출신 동료가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아마도 모로코 통제 지역에 있는 동료나 라윤에 있는 지인과 통화하는 것 같았다. 아랍어로 한참을 신나게 통화한 그가 말했다.


“나는 차라리 모로코가 서부 사하라 전체를 통제하고 개발했으면 좋겠어. 이것 봐. 휴대전화도 사용하고 얼마나 좋아?”


‘뭐라고??

UN 옵서버(Observer)로서의 중립성까지는 기대도 안 하지만,

당사자들의 입장은 생각지도 않고 어떻게 저런 발언을 할 수 있지?

너무 이기적이고 침략적인 것 아닌가?’


그런 동료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나라를 잃고 지배당한 경험이 없어서 사하라위(Sharawi, 현지인)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나 본데, 당신은 지금 본인의 편리함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봐요 친구, 당신은 이집트의 아픈 역사를 몰라요.

이집트도 수많은 침략과 지배를 당했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어요.

나도 충분히 사하라위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어요.”


동료는 모로코의 전체적인 통제 아래 서부 사하라의 자치가 현실적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20년 넘게 아무런 변화도 없는 분쟁을 계속하느니, 차라리 발전한 모로코 통제 아래 개발과 발전을 이뤄가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지금같이 발전된 세상에 사막에 갇혀 문명의 혜택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하라위가 안타깝지도 않아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솔직히 동료를 ‘자신의 편리함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문명의 혜택을 못 받는 사하라위를 안타까워하고 있었다니.


‘잠깐만, 정말 사하라위만 생각한다면, 저 말이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사막에 갇혀 아무것도 못 하고 난민캠프에서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느니, 그의 말대로 차라리 자치권을 얻고 발전을 이뤄 문명의 혜택이라도 보는 실리를 챙기는 게 맞는 걸까?

오히려 나같이 쓸데없는 자존심이 사하라위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이라는 말에 오렌지를 모르던 그 아이가 생각났다. 오렌지가 무엇인지, 어떻게 먹는지 모른다고 해서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 아이는 그들의 문명과 문화에 따라 가축들과 이동하며 자신들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그들의 삶에 끼어들어 세상의 문물과 기술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이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과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한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폴리사리오는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의 선거를 치르고 싶어 하고 있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폴리사리오가 원하는 방식대로 선거를 치르고 완전한 독립을 얻어, 모로코가 서부 사하라에서 물러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진정 사하라위를 위하는 건 어떤 걸까?


어느새 우리 차량은 모로코가 깔아놓은 아스팔트 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현지 민간인 텐트에서 새끼 염소랑 놀기


정찰(Patrol) 중 만난 유목민(Ber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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