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Islam) 위험하지 않아요?”
언제부터 우리는 이슬람, 아랍(Arab), 중동(Middle East)을 위험하고 무서운 종교, 문화, 지역으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9/11 테러가 발생하고 그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Al-Qaeda)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부터가 아닐까 싶다.
UN 서부 사하라 임무단(MINURSO)에도 많은 무슬림(Muslim) 옵서버(Observer)와 직원들이 있었지만, 그들 모두 선한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슬람이나 무슬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선입견은 대다수 일반적인 무슬림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이슬람과 무슬림이 다른 종교에 비해 더 순수하다고 느껴질 때도 많았다. 특히 말레이시아인들은 내가 만나 본 가장 선한 사람들이었다. 말레이시아 공식 종교는 이슬람이지만, 불교와 기독교 그리고 힌두교까지 다양한 종교가 공존한다. 당연히 그들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화합하는 방법을 배운다.
말레이시아는 상대적으로 휴일이 많은 편인데, 이슬람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의 주요 기념일도 휴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공식 종교인 이슬람 휴일이 가장 많지만, 국가적으로 다양한 종교를 어떻게 존중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말레이시아뿐 아니라 다른 이슬람권에서도 다른 종교와 공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루는 이집트 출신 장교와 정찰을 나가게 되었는데, 두 시간쯤 지날 무렵 운전을 하고 있던 그가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한 대위는 기독교인가요?”
아마도 식사 전에 내가 기도하는 모습을 본 모양이다.
“네, 기독교인이에요.”
“저도 기독교인이에요.”
“네?”
이집트에 기독교가 존재하는지 몰랐던 나는 그가 장난치는 거라 생각하고 건성건성 대답했다.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말했다.
“진짜예요. 저 기독교인이에요.”
“진짜요? 어떻게요?”
그는 이집트에도 기독교인 콥트 정교회(Coptic Orthodox Church)가 존재하고, 국민의 18% 정도가 콥트교 신도라고 했다. 그 정도면 한국 개신교 인구 비율보다 높은 수치인데, 당연히 이슬람 국가일 것이라 생각했던 이집트에 그렇게 많은 기독교인이?
“그래도 이집트 전체 인구에 비하면 소수인데 차별이나 불편한 점은 없나요?”
“그런 것 없어요.”
어려움이 있을 거라 단정한 나의 질문에 그는 미소를 띠며 선을 그었다.
그러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랍의 봄」시위 당시 기도하는 시위대를 둘러싼 이들이 있었다. 바로 콥트 신도들이었다. 기도 시간에 무슬림들이 무릎 꿇고 기도하자, 콥트 신도들이 인간 띠를 만들어 그들을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집트 동료의 웃음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흔하진 않지만 서부 사하라에도 기독교인이 있었다. 하루는 한국군 선배가 임무단 본부가 있는 라윤(Laayoune)의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고 나오는데, 이발사가 “기독교인이냐”며 물어왔다고 한다. 선배가 “그렇다”라고 하자 이발사는 활짝 웃으며 “본인도 기독교인”이라고 하고는 선배를 붙잡고 기타 연주를 들려줬다고 한다. 아마도 찬송가였으리라.
UN이 주둔하고 있어 다양한 문화를 경험해서인지, 아니면 이미 저 이발사처럼 다른 종교를 가진 현지인이 있어서인지 서부 사하라도 다른 종교나 문화에 그렇게 배타적이지 않았다.
기독교의 가장 큰 기념일인 크리스마스, 우리 팀 사이트는 현지인들과 연말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팀 사이트 멤버들과 함께 논의한 뒤 우리는 조심스레 폴리사리오(Polisario) 지휘관들을 팀 사이트에 초대했다.
“과연 우리의 초대에 응할까?”
사실 초대장을 보낸 팀 사이트 지휘관도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우리는 팀 사이트 정문에서 폴리사리오 지휘관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한 명씩 인사를 나누고 예멘 출신 옵서버 모하메드 대위의 인도 아래 공터에서 함께 기도를 올렸다. 나를 포함한 비 무슬림 옵서버들은 옆에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기도를 마치고 모두 함께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슬람 사람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막연히 두려워하고 피할 필요도 없다. 그들도 이미 다른 종교, 문명, 문화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크리스마스이브, 우리와 그들이 함께 했던 것처럼.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고 음식을 나누며 함께 축배의 잔을 들었다.
우리는 와인으로, 그들은 포도 주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