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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렉시테리언 Oct 03. 2021

물만두와 환송 케이크

UN 서부 사하라 임무단(MINURSO)에서 얻은 가장 큰 보물은 역시나 전 세계 친구들이다. 30여 개국에서 파견 온 옵서버(Observer)들이 있었는데 민간인들까지 합하면 40개국이 족히 넘는 나라의 친구들을 만난 셈이다. 덕분에 이제 웬만한 나라에 가도 만날 사람이 있다.


실제로 여행을 다니면서 사막의 전우들을 여럿 만났는데, 호주, 러시아, 말레이시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친구를 만났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반대로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내 첫 팀 사이트(Teamsite)의 지휘관이었던 중국 출신 첸(Chen) 소령이 그렇다. 서부 사하라 임무단에서 복귀한 뒤 여행이나 출장으로 중국을 방문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한 번도 첸 소령을 만나지 못했다. 정확히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중국 인민 해방군 소속인 첸 소령은 사실 중령이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첸 중령은 자신의 계급을 소령으로 낮춰 우리 임무단에 파견 왔다. 중국 공산당원이라고 알려진 첸 소령은 계급에 상관없이 중국 장교들 사이에서 늘 리더 역할을 했다. 아마도 공산당원에 잘나가는 엘리트 군인이었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지금은 장군으로 진급했을지도 모르겠다.)


첸 소령은 ‘저런 사람이 어떻게 군인이 됐지’ 싶을 정도로 깡마른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엄청난 말술이라는 게 큰 반전이었는데, “술 좀 한다.”라는 전 세계 군인들과 술판을 벌여도 항상 끝까지 살아남는 건 첸 소령이었다. 술이 귀하다 보니 늘 술이 부족했는데, 그럴 때면 첸 소령은 어디선가 4L는 족히 되어 보이는 이과두주(二鍋頭酒)를 가져오곤 했다. 특유의 향과 강한 알코올 도수 덕분에 팀 사이트 동료들은 첸 소령의 이과두주를 “차이니스 포이즌(Chinese Poison)”이라며 피했는데, 그럴 때면 나만 유일하게 그의 술친구가 되어주곤 했다.


첸 소령은 영어를 능숙히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한번 본 것은 거의 외우는 포토 그래픽 메모리(Photographic Memory)에 주변 사물을 활용할 줄 아는 창의성이 있었다.


하루는 임무단 본부에서 보안 시스템을 점검하기 위해 팀 사이트 지휘관인 첸 소령에게 전화를 해왔다. 팀 사이트에는 사실상 제대로 된 보안 시스템이 없었는데, 본부 담당자는 우리가 첨단 보안 시스템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두 사람의 대화는 잘 통하지 않았다.


답답했던 첸 소령이 쇠 젓가락 하나를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러고는 식사시간이나 화재를 알리기 위해 걸어둔 작은 빨간 종을 치기 시작했다.


“칭! 칭! 칭!”


쇠 젓가락 하나로 치는 소리가 얼마나 작고 경박스럽던지 옆을 지나던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첸 소령의 말에 쓰러지며 박장대소했다.


“이봐요 친구, 이게 우리 경보기예요. (My friend, this is the alarm.)”



당시 서부 사하라에는 인근 말리에서 발생한 분쟁 때문에 테러 위협이 증가하고 있었다. 서부 사하라를 포함한 북아프리카 지역에는 아킴(AQIM, Al Qaeda in the Islamic Maghreb)이라는 알카에다 지부가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공공연하게 UN과 같은 국제기구와 인도주의 활동가들이 그들의 공격 대상이라고 했다.


테러 위협이 고조되자 임무단 최고 책임자인 사무총장 특별대표(Special Representative of Secretary General)가 말리와 가장 가까운 우리 팀 사이트의 보안 시스템을 점검하기 위해 방문했다. 팀 사이트에 대한 기본 브리핑이 끝나고 특별대표는 실제 경보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고 싶다고 했다.


‘헉! 설마 첸 소령이 또 쇠 젓가락 들고 나오는 건 아니겠지?’


걱정과 달리 첸 소령은 특별대표를 당직실로 안내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컴퓨터에 저장된 사이렌 소리를 켰다. 팀 사이트 스피커와 연결된 마이크를 컴퓨터에 갖다 대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팀 사이트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졌다. 특별대표가 흡족해하며 물었다.


“좋아요. 그런데 팀 사이트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이걸 사용할 줄 아나요?”

“그렇습니다. 모든 옵서버들이 할 줄 압니다.”


첸 소령의 답변에 나를 포함한 다른 옵서버들이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엥? 우리 저런 게 있었어?”


첸 소령의 창의력과 순발력이 만들어 낸 임기응변이었다.



첸 소령은 또 훌륭한 요리사였다. 정작 중국에서 요리를 해본 적이 없다는 그는 달걀 토마토 볶음, 가지볶음뿐 아니라 탕과 같이 어려운 음식도 종종 만들어 다른 동료들과 함께 나누곤 했다. 바로 옆 나라 출신이라 그런지 아니면 함께 차이니스 포이즌을 함께 마셔서 그런지 첸 소령은 나를 각별히 챙겼다. 내 정찰 리더 자격(Patrol Leader Qualification) 축하 파티를 앞두고 식당에서 홀로 밀가루 반죽을 밀던 첸 소령은 나를 보고 씩 웃으며 말했다.


“이거 너 거야. (This is for you).”


축하 파티에 너무나 맛있는 물만두가 나왔다.


내가 다른 팀 사이트로 전출가기 얼마 전, 식당에서 무언가를 찾아 헤매던 첸 소령은 작은 주사기 하나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주사기로 뭐 하려고?”


내 질문에 첸 소령은 또 한 번 씩 웃으며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환송 파티가 열리던 날, 첸 소령은 내 이름과 “환송(Farewell)”이라는 단어가 쓰인 케이크를 내왔다. 떠먹는 요구르트를 주사기에 담아 케이크 레터링(Lettering)을 한 것이다.




내가 팀 사이트를 떠나던 날, 첸 소령은 “내 형제(My Brother),” 한 마디만 남기고 조용히 나를 포옹했다. 그게 그와의 마지막이었다.


한국에 온 뒤에도 SNS 나 이메일로 연락을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전송 실패” 메시지뿐이었다. 아마도 그와 연락하던 SNS 대부분이 중국에서 차단된 게 아닌가 싶었다.


길을 가다 우연히 빨간 종을 볼 때면 첸 소령 생각이 난다. 그의 미소, 그의 맛있는 음식, 그리고 모래바람을 맞으며 함께 기울이던 차이니스 포이즌까지.



언젠가 첸 소령과 다시 차이니스 포이즌(Chinese Poison)을 기울일 날이 오겠지?


첸 소령은 "내 형제(My Brother) 한 마디만 한 채 한동안 나를 꼭 껴안고 있었다.  


첸 소령의 물만두


주사기와 떠먹는 요구르트로 레터링 한 첸 소령의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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