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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준 Oct 01. 2021

막내 중위가 레바논에서 당직근무 서며 들려주는 이야기.

26살 막내 장교의 좌충우돌 레바논 살아남기.(6월 11일 금)

6월 11일 (금)


오늘은 지난 두달 간 계획하고 협조한 UNIFIL(United Nation Interim Forces In Lebanon, 레바논 주둔의 유엔 평화유지군) 의 연합 장비 전시회, "Steel Strom"의 마지막 날이다.


드디어 끝이라는 설렘과 아침 일찍부터 이동해서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마음의 준비도 하기 전 새벽 5시 30분에 기상했다.


대충 어제 벗어놓은 전투복을 입고, 5시 50분에 식당으로 가서 샐러드에 올리브 오일을 뿌리고, 빵을 구워 딸기잼을 발랐다. 비몽사몽 정신도 없어 먹는둥 마는 둥하고, 대충 먹고 잠을 깨기 위해서 뜨거운 커피를 한잔 따랐으나, 너무 여유를 부린 탓이었는지, 제대로 마시지도 못하고, 급하게 새벽 6시 20분 전시장을 향해 출발했다.


처음 레바논에 도착 후 주둔지 밖으로 나와서 이동할 기회가 있을 때는 무엇 하나 놓칠새라 눈이 아플 때까지 째려다 보았던 레바논의 거리였지만, 오늘은 스타렉스 차 맨 뒷자석 창가에 몸을 우겨넣고 그냥 눈을 붙혔다.


차에 몸을 맡기고 한 시간 즈음 지났을까 눈을 뜨니 오늘의 훈련이 진행되는 UNIFIL 본부 근처의 사격장에 도착하였다. 지중해를 등에 지고 위치한 사격장으로 에메랄드 빛깔의 파도가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 보였다.


오늘의 훈련은 장비 전시회로 레바논에 주둔하고 있는 유엔 평화유지국들이 각 국의 장비를 전시하고 소개하며, 우애를 다지기 위한 것에 목적이 있다. 마지막에는 이탈리아 대대의 30구경짜리 포를 장착한 장갑차가 수 백발을 적이라고 가상하고 지중해를 향해 쏟아붓는 피날레도 준비되어 있었다.

 

전시장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자 가장 먼저 말레이시아와 이탈리아 대대가 도착해 있었다.

전시장은 사격장을 임시로 사용하는 것으로, 길이 350미터 정도에 폭은 100미터 정도의 공터였다.

건너편, 사격장 우측에는 네팔 대대, 인도네시아 대대, 스페인 대대, 폴란드 대대, 핀란드, 프랑스 기동 예비대, 레바논 군 5여단이 위치하여 각자의 장비를 전시하였고, 우리는 사격장 좌측을 배정받았다.


어제 예행 연습을 왔을 때는 다들 테이블과 함께 전시할 전투용 차량 한대만 가지고 왔지만, 간밤에 다들 짜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어제는 힘을 빼고 보여준 리허설이라 그런지 어제보다 다들 많이 준비해 바리바리 싸왔다. 각 나라의 국기와 각 부대의 기를 세우고, 현수막 등을 걸어두었다.


어제보다 다들 뭔가를 다들 싸왔고, 한대에서 두대의 전투용 차량과 중화기, 장비까지 전시하니 자리가 비좁았다. 게다가 미리 온 말레이시아 대대가 생각보다 오른쪽으로 테이블을 쳤고, 뒤따라 온 이탈리아 대대도 그에 맞춰 오른쪽에, 자연스레 우리 한국군도 오른쪽에 짐을 내렸다.


'아직 가나 대대가 오지 않았고, 공간이 없을 터인데 다들 어떻게 하려나. 뭐 내가 거기까지 신경써야하나.'


우려가 되었지만, 일단 시간이 없었다.


우리가 짐까지 내린 시간은 8시. 평화유지군의 총 지휘관인 이탈리아 사령관(중장)님과 서부여단의 지휘관 이탈리아 준장이 오시는 시간은 10시. 그전 우리 한국군 지휘관은 9시 40분경 도착하실 예정. 생각보다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다.


서둘러 장비를 전시할 테이블을 나르고, 이동식 천막을 쳤다.


"종이 현수막은 천막 위에 양면 테이프로 붙이자."

지역대장님이 말씀하셨다.

"수평을 맞추기가 어렵고, 테이블 다리가 너무 볼품 없어서 밑에다가 붙이는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행정보급관님이 말씀하셨다.


아침 8시 밖에 되지 않았지만, 레바논의 해는 강렬하게 내리쬐고, 벌써부터 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일단 해보고 안되면 다시 합시다."

지역대장님의 말에 모두가 빠르게 움직여서 천막 위에 붙였다.

수평이 맞지 않고 양면 테이프가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서 계속 떨어졌다.


"다시 떼자."

이번에는 양면 테이프가 힘을 제대로 발휘하여 프린트해 간 종이 현수막이 찢어졌다.


다른 것도 아니고, 21개국이 모이며 유니필 사령관이 오는 자리이다. 각 국가가 서로의 국격을 뽐내며 장비를 전시 및 자랑하는 자리인데 현수막이 찢어졌고, 곧 한국군 지휘관도 오시며 해는 빌어먹게 내리 쬐었다.


떼었다 붙였다를 땡볕에서 3번정도 반복하다 보니 짜증이 절로 났고, 모두들 결국 테이블에 고정하기로 원만히 합의하였다.


자리 선정, 차량 전시, 테이블 위치, 현수막 설치 등 대략적인 그림이 나오자 지휘관들이 오기 전까지 약 20분정도 시간이 남았다. 다른 국가들도 살펴보니 모두들 준비를 마치고 서로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벌써 친목을 도모하고 있었다. 어서 가서 나의 친화력을 뽐내야 하는데 피가 끓었다.


통역장교는 있어서 별 도움이 안된다는 결론이 나오자 이외의 나머지 장비를 세팅하는 것은 행보관님과 1개 팀이 마무리 하기로 하고, 작전장교님과 나는 나와서 주위를 구경하기로 결정했다.


밖으로 나오자 마자 마주한 것은 뒤늦게 온 가나 대대의 실무자가 행사 주최 실무자 중 한 명인 핀란드 해군 장교에게 항의를 하는 장면이었다. 앞서 우려한 바와 같이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 가나 대대는 장비와 차량을 전시할 공간이 얼마 되지 않았고, 이에 대해 분개한 상태였다.


"이거 저희한테 불똥이 튈 수도 있겠습니다."

내가 먼저 작전장교님께 말을 건넸다.


"그러게. 우리 올 때부터 이랬다고 설명해야지."


작전장교님과의 대화가 끝나자 마자, 항의를 받은 핀란드 해군 장교는 겉으로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잔뜩 상기된 얼굴로 우리 쪽으로 찾아와서 한국군의 현장 지휘관을 찾았다.


“실례지만, 이곳의 현장 지휘관이 누구지요?”


현장의 책임자는 지역대장님이셨지만, 외부와 협조하는 사항의 일체는 나와 작전장교님께서 담당하셨으므로 내가 대신 대답하였다.


“접니다.”


“혹시 한국군 대대가 가장 먼저 왔나요?”


붉어진 핀란드 소령의 얼굴에 바로 답변하였다.


“아닙니다. 말레이시아 대대가 먼저, 그 다음이 이탈리아 대대, 저희가 마지막으로 왔습니다. 어제와 다르게 공간이 부족하여 한국군 대대도 자리가 좁네요 어떡하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해결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같은 입장이라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실무자의 의견을 따를 것임을 간결하게 전달하고 공을 상대방에게 토스. 아름다운 처세였다.

 

흥분한 가나 대대와 핀란드 실무자를 뒤로 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자, 지난 두달간 훈련을 함께 계획해 온 우리의 카운터 파트너, 서부여단 참모, 이탈리아의 알베르토 소령을 만났다.


특유의 마스코트였던 턱수염을 밀어서 긴가민가 하였지만, 잔털이 남아있는 대머리인점, 키는 작지만 가슴 근육으로 전투복이 꽉 끼는 점, 무엇보다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만들고 있다는 점 덕분에  알아볼 수 있었다.


"본 조르노"

내가 먼저 이탈리아 인삿말을 건넸다.

"굿 모닝"

웃으며 알베르토 소령이 답해주었다.

"드디어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

너털 웃음에 나도 웃으며 답했다.

"그러게요. 고생 많았습니다."

"이번 훈련을 준비하면서 귀찮을 법한 한국군의 질문에도 성실하게 잘 답변해 주신 덕분에 잘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작전장교님이 말했다.

"부족했지만 잘 따라와줘서 고맙습니다. 이제 전 곧 있으면 이탈리아로 복귀합니다."


항상 따뜻한 태도로 우리를 배려했던 알베르토 소령이 복귀하고 현실적으로 앞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정말 아쉬웠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선물을 챙겨왔는데,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전날 작전장교님과 챙겼던 선물이 생각나서 부탁했다.

 

타고왔던 스타렉스를 다시 찾아 내려가서 트렁크에 지난 밤에 종이백에 준비해둔 신라면 블랙, 팔도 비빔면, 짜파게티를 가지고, 받고 좋아할 알베르토 소령을 생각하며 빠르게 뛰어 돌아왔다.


"알베르토 소령님 이 라면들은 정말 이것들은 우리 수준에서 준비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굉장히 귀한 것이고 저희의 마음이 담긴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진심이 전해지길 간절히 기도하며 흥분을 감추지 않고 설명했다. 정말이지 약소하지 않은 선물들이었다.


보급으로 나오는 미역라면을 줄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였으나 상대방이 영관급 장교이며, 양국의 협력에 기여한 점, 국제사회에서의 대한민국의 위상 등을 고려하여 우리도 잘 먹지 못하는 것들을 대접한 것이었다.


알베르토 소령은 기념품 정도를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당황해했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요리법에 대해서는 그늘 하나 없는 땡볕일지라도 설명해야만 했다.

생각해보니 요리법도 다 달라서 각각 설명을 해야하는 필요가 있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한숨을 한번 크게 쉬고 시작했다.


“이건 신라면 블랙이라고 정말 프리미엄 라면이다. 맵기도 적당하고, 고급 라면에 속한다. 550미리의 물에 끓여야한다. 커피 타듯이 뜨거운 걸 붓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끓여야 한다. 또한 후첨 양념이 있는데, 이것은 조리가 다 된 뒤에 넣는 것이다.”


“이건 짜파게티라고 콩을 발효시켜 만든 춘장이라고 하는 소스를 기본으로 하였고, 영화 기생충에 나온 것이다. 물을 버리고 스프를 넣어야한다. 이때 물을 버리라고 다 버리면 안된다. 적당량을 남겨야 한다”

아 물을 자박자박하게를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냐.


“이건 팔도 비빔면이다. 더운 날 먹으면 입맛이 싹 돈다. 얼음을 넣어야한다. 그냥 찬물에 한 번 행구면 그건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딸 시집보내듯이 걱정스러웠다. 면은 잘 익힐까? 이탈리아 사람이라 알단테에 익숙하여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나?


서서히 더워하는 기색의 알베르토 소령이 이제 행사를 준비해야한다고 하여 당부할 것이, 혹시 김치도 먹을 줄 아냐라는 질문도 미처 하지 못하였건만, 아쉽지만 보내주었다.


'이제 정말 빠르게 둘러보자!' 다짐을 하고 돌아다녔다.


스페인 대대 테이블로 가서는 평소보던 유튜버 까로의 인삿말 “올라 꿰딸“을 사용하였다. 모두들 웃으며 답해주었다. 축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레알마드리드 좋아한다고 이야기 해주고 나왔다.

이탈리아 테이블에서는 2주간 여행을 갔던 경험. 레몬첼리를 먹고 놀았던 이야기를 하고

프랑스 테이블에서도 1주일간 파리에서 지내며 바티칸 성당 앞에 있는 젤라또 맛집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말레이시아 대대에선 쿠알라룸푸르와 랑카위 섬에서 2주간 휴가를 보내면서 나시고랭을 먹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한참 농담을 주고 받으며 인기를 얻으려 할 때쯤 저 멀리 입구쪽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지휘관들이 도착했다. 웃으며 잠시 놓았던 정신을 다잡고 한국군 테이블로 빠르게 복귀했다.


각 국가의 지휘관들이 서로 인사하고, UNIFIL의 총 사령관님과 함께 모여 다 같이 각 국의 테이블을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나와 농담을 주고 받던, 사귄지 17분 정도 된, 친구들이 모두 정색을 하고 절도 있게 각 국의 장비를 세계의 지휘관들에게 설명했다.


이탈리아 사령관님께 '본 조르노' 라고 인사하며 가볍게 농담을 던지고 시작할까 고민했던, 혹시 바티칸 앞 젤라또가 생각나는 날씨 아니냐고 물어보려 했던 나의 계획이 얼마나 부적절한 생각이었나 느꼈다. 우리 한국군의 발표가 뒷차례여서 다행이다.


각 국의 테이블을 모두 거치고 사령관님과 그를 뒤따르는 각 국의 지휘관들을 포함 50여명 정도가 우리 한국군 테이블로 왔다.


"안녕하십니까. 한국군 장비를 설명하게 된 통역장교 주영준입니다."

그래 본조르노는 안하길 잘했다.


"한국군의 장비는 워리어 플랫폼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생존성 보장이 각 병사들에 대한 최고의 복지라는 생각으로 생존성 확보를 위한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플랫폼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별로 장비를 맞춰 사용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도입부만 내가 하고 이어서 장비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은 작전병에게 넘겼다.


작전병의 한국군 장비 설명이 모두 끝나자 우리 다음 테이블인 가나 대대로 사령관님과  외의 50여명이 이동했다.


이렇게 6개월에 한번 있는, 어찌보면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스틸스톰의 무기 전시회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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