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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준 Oct 01. 2021

레바논. 근데 이제 다이나믹한 군생활을 곁들인

8월 26일 (목)


어젯밤 아홉시. 미라클 모닝에 대한 결의를 다시 한번 다지며, 새벽에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우고 오랜만에 오늘 다시 처음으로 일찍 기상하였다.


새벽 0430에 기상하여 우선 기도하였다. 입으로 소리내어 기도하자 훨씬 마음이 가벼워졌다.

주님의 존재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아둥바둥 살 필요가 없고, 내가 세상 일을 잘하던 잘하지 못하던 주님 앞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가 세상 일을 열심히 하고자 하는 것은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이후 5시부터 5시 30분까지 혼자서 부대를 뛰었다. 아무도 없고 나 혼자 뛰니 기분이 이상하였지만 천천히 조깅한다고 생각하니 좋았다. 주둔지는 경사가 진 곳이 많아서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체력이 더 많이 소모된다. 3바퀴 정도 천천히 뛰자 대략 20분정도 소요되었다. 숨도 돌리고 물도 한 모금하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였다. 평소에는 사람이 정말 많지만, 새벽인지라 아무도 없었고, 그 넓은 헬스장의 기구를 마음대로 사용하니 좋았다.


이어서는 아침밥까지 든든히 챙겨 먹고 기분 좋게 샤워 후 출근하였다. 정말이지 완벽한 아침이다.

출근 시간 20분 전에 미리 나와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한잔 내리고 컴퓨터를 켜는 내 스스로를 보고 있노라니 정말 프로다웠다. 그래 오늘은 일이 나를 통제하게 하지 말고, 내가 일을 통제하는 하루가 되어야겠다.


아침 회의가 끝나고, 하루의 스케쥴을 확인하고 내 이메일도 별다른 내용이 없기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11시에 이른 점심을 먹고 점심 시간에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 먹기 전 잠깐 작전과로 넘어가서 이메일을 확인하였다.

서부여단 공병 참모로부터 이메일이 한 통 와 있었다. 방호물 관련 메일이었다.


지난번 레바논과 이스라엘 간의 포격이 있었을 때, 다시 한번 부대 방호력을 점검하고, 가능하다면 더 추가할 수 있는 것은 추가하자라는 판단에 한국군은 서부여단 부여단장과 공병 부서장에게 방호시설을 추가 설치해 줄 것을 건의하였다.


하지만 유엔의 경우 미리 1년 간의 공사를 사전에 정해놓고, (물론 긴급한 건은 승인하긴 하지만)

뉴욕의 유엔 본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내년에 새로운 공사를 시작하더라도 우선 기존에 설치된 방호물을 이동시키자는 답변을 받았다.


거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이메일을 열자 그 뒤 과정에 대한 내용이었다. 군과 관련된 물자의 이동과 관련된 활동 등은 레바논 군과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뭐 아무래도 좋다. 협의를 하는 게 내 임무니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오늘 오전 11시에 우리의 주둔지 밖 초소에 레바논 군과의 협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비상이었다. 현재 시각 오전 10시 40분 이럴때는 여유롭게 이메일을 쓸 때가 아니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찌 갑자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서부여단 공병 부서장과 레바논 군 연락장교가 연락하여서 우리와 레바논 군과의 협조 토의 약속을 잡았단 말인가."

내가 먼저 다소 강경한 어조로 물었다.


"우선 한국군에서 급하게 요청한 사항이고, 이메일을 확인하면 알겠지만, 제한사항이 있으면 답장을 달라고 적었습니다. 이틀 간 답장이 없어서 제한사항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공병 부서장도 당황해하며 답변했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가 굉장히 급하다고 먼저 말했다. 그리고 더욱 맞는 말이었다. 제한사항이 있으면 답장을 하라고 이틀 전에 말했다. 여기서 맞아야 할 건 정신 못차리고 메일을 확인하지 못한 채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세상 일은 별개 아니라고 말한 중위 밖에 없다.


"혹시 그러면 지금 레바논 군이 오고 있나요?"

우선 잘못을 시인하고 저자세로 가되, 당황하였고, 미안하지만, 오늘의 협조 토의가 다소 제한될 수 도 있다는 것을 흥분한 목소리로 보내야 한다.


"네. 4명의 레바논 군이 출발했다고 방금 연락받았습니다."

돌이킬 수 없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간이 없다. 전화를 군더더기 없이 끊었다.


서부여단에서 우리를 위해 레바논 군과 협조하여 레바논 군을 우리 주둔지 밖 초소로 보낸 것이다. 가뜩이나 기름 난으로 기름도 없는 레바논 군이 연비도 안 좋은 작전 차량을 타고 이 더운 날씨에 네 명이나 왔는데, 승인을 구하고 협조를 받아야 할 한국군이 메일 하나 똑바로 확인하지 않아서 그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는 마당이었다.


이게 국격의 망신이 아니면 무엇이 망신이란 말인가.


한국군이 주둔지 밖으로 나가는 모든 외부 업무는 아무리 늦어도 전날 한국의 합동참모본부에 보고를 하고 승인을 득해야 한다. 또한 초소까지는 도저히 걸어갈 수 없는 거리이다. 차를 타고 싶어도 전날 오전 10시까지 신청을 하여 부대 활동의 우선 순위에 따라 차량을 배정하고 배정된 차량을 이용하여 안전교육까지 받고 주둔지 밖으로 나갈 수 있다.


현재 시각 10시 45분. 15분 남은 상황에서 내가 주둔지에서 지금 당장 출발해도 20분은 걸리는 초소로 갈 수 있는 방법이란 없었다.


링컨이 말했다.나에게 나무를 벨 수 있는 시간 8시간이 있다면 그 중 6시간은 도끼 날을 간다고.

빌어먹을 8시간 있으면 나도 6시간 갈겠다.

 

일단 이 상황을 빠르게 보고해야 한다. 누군가 나에게 지침을 주어야 한다.

믿을 수가 없었다. 결심을 해주셔야하는 각 과의 과장들과 지휘부는 한국과 화상회의 진행중이었다.



머리를 굴렸다. 지금 초소에서 근무중인 근무자가 누구지?

지휘통제실로 뛰어가서 확인했다. 1년 후배 부중대장이 있었다.

다시 전화가 그나마 잘 터지는 연병장으로 뛰어가서 보이스톡을 걸었다. 벌써부터 땀이 나서 전투복 상의를 풀어 헤쳤다.

'제발 받아라. 도와주세요.'


"충성! 부중대장입니다."

 아! 받았다!

"어 부중대장님, 통역장교에요. 지금 근무중인 것 맞죠? 혹시 레바논 군이 초소에 왔나요?"


부랴부랴 상황을 설명하였다. 안그래도 더워 죽겠는데 땀이 흘러 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부중대장의 핸드폰을 잠시 옆에 도착한 레바논 군에게 빌려주면, 그 핸드폰을 이용해서 페이스톡을 통하여 레바논 실무자 4명과 급한대로 조잡하지만 화상회의를 할 수 있다. 급한대로 보안에 위배되지 않는, 이미 인터넷 망을 이용하여 서부여단에 기 보고된 사진을 전송하여서 사진을 통해서 연락을 주고 받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다소 무책임하다고 느껴지기도 했지만, 부중대장에게 우리의 입장을 남은 시간 7분 정도 속성으로 교육시키고, 한국부대의 입장을 레바논 군에게 전한 뒤 레바논 군 제한사항을 받아서 우리에게 전달하는 방법도 있었다. 영어를 잘 못한다고 부중대장이 하였지만, 뭐 손짓발짓이면 다 통하지 않겠나. 급한 마음에 무책임한 생각이 마구 떠올랐다.


 그때 다시 전화가 왔다. 레바논 군이 도착하였다는 것이었다.

 우선 우리가 양해를 구해야 하는 입장이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

외국인이 해당국의 언어로 인삿말을 하는 것보다 첫 분위기를 웃음으로 만드는 것 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잘하면 잘하는 데로, 못하면 못하는 데로 웃음을 이끌어 낸다.

 “마르하바. 아나 주영준, 슈크란. 꿀루 따맘?”

 "안녕하세요. 나의 이름은 주영준 입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다 괜찮은가요?"

내가 아는 모든 아랍어를 한번에 다 말했다.


 수화기 넘어로 상대방의 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성공이었다.

 “수화기로 계속해서 회의를 진행할까요?”

 내가 먼저 물었다.

“아니요, 제가 한국군 대대로 가겠습니다. 거기서 대화하시죠.”

다행이다. 물론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은 내 잘못이 가장 크지만, 분위기는 나쁘지 않게 잘 해결되어가고 있었다.

 

20 안에 도착한다는 말에 다시 작전과로 뛰어들어가 우선 부랴부랴 관련 서류를 뽑았다. 또한 작전장교가 가지고 있던 태극기 뱃지를 적극 활용하여서 우선 주머니에 가득 챙겼다. 서류를 챙기고 위병소를 통과하기 위하여 지휘통제실에서 임무 수행하고 있는  대위에게 나를 막지 말고 위병소에서 통과시켜줄 것을 부탁하고, 작전과장님께 보고한 다음, 방탄복을 챙기고 위병소로 바로 뛰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위병소를 통과하자 마자 레바논 군 4명이 도착했다. 우선 뱃지부터 주고 상황 설명을 했다.


가장 계급이 높은 것 같은 인원에게 상황과 서부여단과 그동안 있었던 절차에 대해 설명하였고, 문서를 전달하였다.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았고, 공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을 표했다.

 

다시 한번 아는 아랍어를 총동원하여 주둔지까지 와준 그 자비에 감사함을 표하고 돌려보냈다.


이른 점심은 개뿔, 시간도 훨씬 지나있을 뿐더러 힘도 없어 방에 들어가서 양말을 벗었다.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다녔다.


오늘은 일이 나를 통제하게 하지 말고, 내가 일을 통제하는 하루가 되어야겠다고?


 왜 내 군생활은 이리도 다이나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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