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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Mar 22. 2024

다짜고짜 심쿵

빈 서점 일기

좋아하는 독립서점이 3주 동안 문을 닫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이 서점을 들려야 고질병인 우울도 내게서 조금은 없어지는 듯했는데 갑자기 서점 공지사항에 이런 글이 올라온 것이다.

'31일까지 독서여행을 떠납니다.
돌아와 더 나은 공간과 이야기를 준비하겠습니다.'


멍했다. 2년 가까이 이 독립서점을 지켜본 자로써, 정기휴무날인 일요일과 월요일을 제외한 날에 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설날이나 추석연휴에도 열어두셨다는 말을 서점 사장님께 들었던 적이 있다. 문득 작년 생각이 났다. 작년 가을, 좋아하는 단골 카페가 없어졌다. 유동인구가 별로 없는 곳에 있던 카페였고 젊은 사장님의 패기로 그곳의 동네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느껴지던 곳이었다. 한나절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 적도 자주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 공간엔 카페 사장님과 나뿐인 적도 많았다. 손님이라고 해봐야 테이크아웃 커피 몇 잔 정도. 나는 이 공간을 나 혼자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내심 좋았다. '역시 나는 마이너틱한가 봐. 이 좋은 곳을 사람들은 왜 안 오는 걸까?'하고 손님들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으면 했다. 이기적이게. 


그러던 카페가 일주일에 몇 번씩 문을 닫아두는 일이 생기더니 어느 날 카페간판이 사라지고 여성옷가게로 바뀌어진 것을 보게 되었다. 분명 카페 사장님은 내게 "잠깐 쉬려고요. 다시 돌아올 거예요."라고 말했었지만 해가 바뀌고 봄이 된 지금까지도 그곳에는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옷들이 옷걸이에 걸려있다. 자영업자들에게 그 공간을 지켜낸다는 것은 분명 매출과 영향이 큼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공간을 포기하고 조용히 떠난 이를 나 같은 단골손님 한 명이 붙잡을 수는 없는 노릇인 것도.


그럼에도 후회가 된다. 카페 사장님께 여기 커피만큼 내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곳은 없다고 고백할걸. 이곳에 있으면 글이 잘 써진다고, 사실은 아지트 삼고 싶다고 더 솔직해질걸. "사장님의 잘생긴 얼굴이 이곳을 오는 이유에 한몫 거드는 거 아시죠?"라고 웃겨드릴걸... 나는 부끄러움에 내뱉지 못했던 수많은 말들을 떠올리며 내가 좋아하던 (사라진) 카페와 어쩌면 사라질 수도 있는 이 서점을 겹쳐 놓고 있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곳이었으니 그곳이 사라지지 않게 나도 노력해야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블로그 후기라던가 영수증 리뷰. 별 거 아닌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에게 이곳의 매력을 알려줘야 했던 거 아닐까 하는 후회도 뒤늦게 밀려온다. 그랬으면 좀 더 든든한 마음으로 사장님도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서점 몇 주 닫는다고 무슨 일 나겠어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카페보다 더 유지하기 힘든 곳이 독립서점이지 않을까? 카페는 대중적이고 이제 커피는 사람들이 물보다 자주 마시기도 하니까. 하지만 여전히 책은 그렇지 않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소수고, 서점에서 책을 사는 사람들은 더 드물다. 내가 좋아하던 카페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없어지는 것을 본 내게, 독립서점 사장님의 3주간의 임시휴무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헤어짐부터 먼저 예상하는 것이 섣부를 수도 있지만 만약 그렇다면 이번엔 후회하지 말자, 그게 내 다짐이었다.  




정선 : 사장님, 안녕하세요. 3월달 서점 쉬어요?

서점 : 안녕하세요 정선님. 좋은 아침이에요. 네. 서점은 그러려고요.

정선 :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서점 가려고 했는데 임시휴무라고 쓰여있는 게 왠지 마음에 걸려서요.

서점 : 아 오시려고 했는데 너무 죄송하고 아쉬워요.

         휴무는 순수하게 집중해서 책을 읽고 싶어서 결정했어요.


정선 : 큰 결정 응원해요. 그러면... 무례한 부탁일 수도 있지만,

        사장님 안 계시는 동안 제가 서점에 있어도 되나요?

        서점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면 저도 집중이 잘 될 것 같아요. 제가 서점도 지키고요.

서점 : 정선님이 응원 주시니 걱정 없어요. 감사합니다.

         서점 키 복사해 둔 것이 있는데 그럼 내일 10시에 들려주시겠어요?



난감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우리에게 믿음이 없으면 가능치 않은 일이다. 서점 키를 내게 준다는 것은 이곳에 있는 책들과 나머지 것들을 내게 맡긴 거와도 같으니. 책임의 문제도 뒤따른다. 혹여 손님인 내가 물건들을 훔쳐가거나 고장 난 다면 그 문제들은 어쩌려고 말인가. 서약서라도 써둬야 할까?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그 고민에 대해 사장님께 말하자 "서점키를 맡긴다면 그것도 제가 감수해야 하는 것이지요."라고 답했다.

오 하느님.


서점 사장님은 지금껏 쉰 적 없었는데 모처럼 여유가 생겼다고 좋아하셨다. 나 혼자 괜한 걱정을 한 것은 아닌가 하고, (오지랖도 병이라던데 이건 또 무슨 약을 먹어야 할까) 생각했다. 그래도 빈 서점 안에 누군가 있다는 것이 보이면 적어도 바깥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문 닫힌 느낌은 아닐 것이다. 비록 유리창에는 '임시휴무'공지문이 붙어 있긴 하지만. 난 이제부터 2주간 서점을 지킨다. 사장님이 없으면 그 가게는 분명 티가 난다던데, 그러지 않도록 매일 서점으로 와 불을 켜고, 먼지를 털 것이다. 당분간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책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낼 것이다. 그러면 책들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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