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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Mar 29. 2024

열고 닫는 일

빈 서점 일기

#1. 빈 서점 첫째 날


다음 날 오전 10시. 사장님을 만나 정말로 서점키를 받았다. "키 받았으니 서점 한 번 열어보시겠어요?"라는 사장님 말에, "쑥스러우니 혼자 있을 때 해볼게요."라고 답했다. 무안해서 서점문을 잠깐 쳐다봤다. 열쇠 구멍은 오른편 바닥 쪽에 있고 열쇠는 넣어 돌려따면 된다. 서점 사장님은 독서여행을 떠날 거고 돌아오실 거다. 암. 나는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며 주문을 외웠다.


생각보다 빈 서점을 지키는 일에 인수인계받을 것은 없었다. 그동안 서점에는 책이 배송되지 않을 거고 임시휴무 공지를 놓친 손님들이 어쩌면 서점 문 앞까지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문을 열어볼 일은 없다. 서점의 전등은 켜고 싶은 만큼. 내가 원하는 조도에 맞춰서 전등을 전부 켜도 상관없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전구색 샹들리에 조명은 제일 아래 스위치였다. 당분간 서점 문은 닫혀있겠지만 불은 켜져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맘 같아선 더 환하게 불을 켜서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싶기도 했지만 불필요한 전기세는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정선님, 이곳에서 책 보고 글 쓰실 거라 하셨죠? 그럼 무드가 빠질 수 없겠네요."

사장님은 서점에서 쓰는 스피커 사용법을 알려줬다. 역시 너무나 멋있는 분이다. 하얀 테이블보를 두른 테이블 위에 2개의 커피잔과 잔받침을 마주 보게 내려놓고 따뜻한 럼배럴커피를 따라 홀짝 마셨다. 조금 뒤 서점을 잘 부탁드린다고 연신 인사를 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사장님이 서점을 떠나고, 나는 서점에 남아 사장님을 배웅했다.   


나는 시간과 공간을 선물 받았다. 무엇부터 해야 하지? 아직은 생각이 떠다니고, 마음처럼 서점이 편하지 않다. 이 공간을 수도 없이 와봤지만 혼자 남아있던 적은 처음이므로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시간은 벌써 오후 5시. 나는 마셨던 커피잔을 설거지하고 집으로 왔다.




#2. 빈 서점 둘째 날


첫날 빈 서점에 있으면서 생각한 것 중 하나는 매일 같은 시각에 불을 켜두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나만의 출퇴근 시간을 정하는 것이 필요했고, 서점 내부의 어떤 조명을 켜둘지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다. 하지만 모든 고민의 결제자 또한 나뿐이라 결정은 쉬웠다. 나는 이 서점의 샹들리에 조명을 좋아하므로 다른 조명 스위치는 거들떠보지 않고 샹들리에 조명만 켰다. 서점 중앙에 위치한 샹들리에 조명은 총 3단으로 되어 있는데 제일 위칸에 5개의 주황조명으로 시작해서 밑으로 내려갈수록 그것의 배수만큼 반짝임이 웅장해진다. 하여 총 30개의 빛이 가려둔 커튼을 통과하여 바깥으로 생존을 밝히는 중이다.


서점은 매일 10시 열었다. 사장님이 주신 키를 오른쪽으로 돌려 홀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잠자던 책들이 나를 반겼다. 황보름 작가님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서 보면 서점지기 영주가 오픈시간에 서성이고 있는 손님을 마주하며 이런 말을 건넨다. "밤새 냄새가 좀 뱄을 거예요. 밤 냄새랑 책 냄새요. 그래도 괜찮으시면 들어와서 보세요." 나는 이제 매일 그 감각을 느껴보려고 한다. 책방에서만 맡을 수 있는 귀한 냄새. 책에 배어있는 글자의 채취, 과연 어떤 냄새일까?


나는 빈 공간에서 무뎌진 감각들초대하고 있다. 고요함 속에서 책들을 쳐다보고, 문틈 사이로 들려오는 사람들의 대화소리, 공사장 덜컹 소리, 옆 가게의 오픈 준비 소리를 귀에 담는다. 서점 옆에는 이와 비슷한 크기의 카페가 하나 있다. 카페의 오픈은 12시지만 10시 반쯤 문을 여는 것 같았다. 카페 사장님은 발매트와 소파들을 툭툭 털더니 청소기를 돌렸다.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혼자서 있으니 예민해진 귀는 곧 눈이 되어 그곳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다.) 청소기를 돌리며 한 손으로는 의자들을 들어 올리는지 우당탕탕 소리가 난다. 이후엔 카펫 먼지 빨아들이는 소리가 쓰읍. 하고 들렸다. 소리들이 전부 재밌다. 청소기 소리는 30분 동안 들리더니 사라졌고, 그 후로도 커피머신과 물건들, 의자 정리하는 소리들이 귀를 쫑긋거리게 했다. 카페 오픈 30분 전. 드디어 벽을 타고 재즈음악의 베이스 기타 소리가 둥둥거리기 시작한다. 그곳도 오픈 준비 끝. (나는 그 후로 옆가게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연스럽게 입에 침이 돌았고 커피가 마시고 싶어 져 가게 간판의 'close''open'으로 바뀌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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