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빛 하늘을 꿈꾸다.

하늘

by 포로리
에피소드1. 순간의 시간을 공유하는 방법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은 아침 7시가 되기 전에 나에게 회사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오늘은 핑크빛 하늘이 담긴 현장 사진과 함께 메시지가 왔다. 영롱한 핑크빛의 하늘에 아무도 없는 텅 빈 도로, 빨간색 신호등이 켜져 있고 주황색 조끼를 입은 신호수만이 도로를 지키고 있다.


“몇 시에 볼 수 있는 하늘이야?”

“6시 11분”


잠깐 사이에만 볼 수 있는 핑크빛 하늘을 보고 싶어 시간을 물어봤다.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내일 6시 11분에도 이런 하늘을 볼 수 있을까? 매일 똑같이 시간이 흘러가고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만 우리의 하루는 늘 새롭기에 저 하늘을 볼 수 있을 거라 단정할 수없다.


지금-여기. 참 멋있는 말이다. 우리가 앞으로의 시간만 쫓아가면 현재는 불행할 것이다. 때문에 항상 지금-여기에서의 내 감정을 살피고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는 요즘 기록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 기록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두 달째 남편은 초등학생이 쓰는 좁은 칸 일기장에 늘 파란 펜으로 일기를 쓴다. 손으로 꾹꾹 눌러 담는 진심에는 그의 손에 쥐어진 펜이 만년필처럼 보일 때도 있다. 어제의 남편 일기를 살짝 들여다봤더니 그곳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오늘은 연휴 끝난 이틀째인데 벌써 추석은 온데간데없고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을 다시 살아가고 있다. 출근길 새벽 5시 기상은 추석 내내 9시에 일어나서인지 제일 힘들다. 현장 업무 중간에는 공사구간 내에 법정보호종 ‘흰발농게’가 발견되어 서식지 정밀조사를 했는데, 와이프가 네이버에 한 번 쳐봤으면 좋겠다. 제법 신기하기도 하고 멋지기도 했다.


일기장을 덮고 실실 미소가 새어 나왔다. 이런 귀여운 글이 있나. 사람은 목소리를 내어 진심을 내보이고 싶을 때도 있고, 글로 진심을 내보이고 싶을 때도 있나 보다. 남편은 똑같은 업무와 똑같은 일상을 보내며 힘들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의 심장에 콩콩콩 노크하는 모먼트가 일상 속에 녹아있었다. 나도 바로 ‘흰발 농게’를 검색해봤다. 조그마한 몸집에 한쪽 집게발만 커다랗고 새하얗게 확대시켜 놓은 듯했다. 너무 귀여워서 페이지가 넘어가도록 사진들을 찾아봤다. 남편이 보여주고 싶었던 현장에 내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순간 이동하여 남편 곁에 와닿아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이 새벽에 보게 된 핑크빛 하늘. 나는 그 하늘에 어울릴 핑크 스웨츠(Pink Sweat$)의 노래를 사랑을 담아 보냈다. 내일 혹시, 또 한 번 같은 하늘을 보게 된다면. 이 노래를 들으며 나의 마음속으로 순간 이동하라고.





에피소드2. 누군가의 진심에 믿음이 생기는 순간


초등학생 때부터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가면 어김없이 토를 했다. 스릴 있고 아찔함을 좋아하는 학창 시절에 바이킹조차 정복하지 못한다는 것은 친구들 사이에선 아직 조금 덜 큰 아이처럼 여겨졌다. 생각보다 별로 무섭지 않다는 친구들의 말에 용기 내어 손을 잡고 올라가면 결국은 만신창이가 되어 늘 화장실로 향했다. 높이 올라가고, 빙글빙글 돌고, 내 몸이 뒤집히는 것들은 나에게 전혀 흥밋거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이었을까? 여행이 주는 특별함 때문이었을까? 괌으로 가족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내가 덜컥, 용기 내어 예약한 것은 '스카이 다이빙'이었다. 롤러코스터도 무서워하고, 번지점프는 생각도 해본 적 없는 내가 말이다. 하지만 전용 공항으로 이동해 면책 동의서를 작성할 때에는 이제야 정신이 들어 반쯤 후회하기도 했다. 체크리스트 안에는 아래의 내용들이 있었기 때문에.


죽어도 책임 못 집니다.
당신이 하고 싶어서 뛰어내리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모두 당신의 탓임을 인정합니다.


처음으로 고소공포에 대한 불안을 뛰어넘고 힘겹게 도전의 의지를 내비친 나에게 이 동의서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시도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럼에도 걸려있던 파란색 점프슈트가 너무도 예뻐 보여서 서둘러 사인을 했다. 경비행기에서 내가 뛰어내릴 높이는 무려 4200m. 할 수 있는 최고 높이라고 했다. 시속 200km, 낙하산이 펼쳐지기까지의 자유낙하시간은 약 1분. 그 1분 동안 과연 나는 놀이기구를 탈 때처럼 눈을 질끈 감을까? 아니면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을 마주 볼까?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도전자 5명, 그들의 다이버 파트너 5명, 그리고 조종사 1명. 열한 명이 오밀조밀 몸을 붙이고 앉아있을 만큼 작은 경비행기가 드디어 하늘 높이 떴다. 그때였다. 불안이 엄습해왔다. 허름해 보이는 이 안의 모든 것이 안전해 보이지 않았다. 뭐라도 붙잡아야 했기에 살짝 뒤를 돌아봤는데 내 파트너는 올라가는 순간 몸에 십자 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의 작은 소곤거림. 그 소리에 가슴이 북받쳐 올랐다. 매일 매 순간, 본인과 타인의 안전을 위하여 신께 기대는 목소리는 정령 신성해 보였으므로.

지금 돌이켜보면 두려움에 맞설 의지가 생기는 이유는 단순하다. 때론 친구가 좋아서, 때론 특정한 옷이 예뻐 보여서, 때론 누군가의 진심에 믿음이 생기는 순간.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많은 일들은 조금만 단순화시켜보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다.


창문이 열림과 동시에 나는 내 몸을 맡겼다. 내 파트너에게.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떨어지는 몇 초간은 눈을 뜰 수 없었지만 이내 곧 사전에 배웠던 다이빙 자세를 취하고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하늘이었다. 지금껏 비행기 위에서 보았던 하늘과는 차원이 달랐다. 애니메이션 영화 <UP>의 BGM이 들리는 것 같은 평화로운 하늘이었다. 그곳에서의 온도와 촉감, 모든 것이 따스했다. 구름들이 나를 껴안아주는 것 같았다. 낙하산이 펼쳐지고 더 유유히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을 때, 내게 생기는

감정은 고마움이었다.


“I think I`m a bird.”

“Yes. You are a bird.”


다시 기회가 되어 모험을 떠난다면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싶을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나는 다시 한번 새가 되어보고 싶다. 여전히 토를 해대야 하겠지만, 이번에는 다른 색깔의 하늘에서 날고 있으면 좋겠다. 하루가 시작하는 동 틀 무렵, 혹은 하루가 마무리되는 해 질 무렵, 푸르던 하늘이 살아 움직이는 빛의 움직임을 받아 핑크빛으로 물드는 그 짧은 시간 중 한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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