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색깔만 보이면 눈이 커지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핑크색 아이템을 보면 ‘와! 저 핑크색 예쁘다.’ 하며 색깔에 반하고, 갖고 싶은 것들은 눈을 최대한 크게 뜨고 핑크 레이더망 안에서 여러 번의 검색을 한다. 모임이 있어서 집 앞에서 버스를 타야 했던 날, 그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두 명의 사람에 눈길이 갔다. 한 명은 보라색 스웨터에 자주색 코듀로이 바지로 멋을 낸 젊은 남자였고, 한 명은 멜란지 오트밀 색 후드티에 인디핑크색 운동복을 입은 아줌마였다. 아침부터 유난히도 많이 보이는 핑크색 향연(그도 핑크색 가방을 어깨에 메고 연핑크색 운동화를 신었다.)에 그는 얼떨떨하며 바로 뒤에 줄을 서고 기다렸다. 몇 분 뒤 버스가 왔고 이렇게 셋은 버스로 올라탔다. 젊은 남자는 앞에서 세 번째 줄에 있는 핑크색 좌석에 앉았다. 여자는 그 남자의 바로 뒤인 노란색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뒤이어 그는 하차하기 편한 뒷자리석에 앉아 다시 이들을 지켜보았다.
대중교통의 좌석에는 임산부를 배려하기 위한 좌석인 핑크색 좌석이 있고, 노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좌석인 노란색 좌석이 있다. 남자가 앉은 임산부 배려석, 여자가 앉은 노약자석. 이들은 이 좌석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것일까? 둘 다 비어있는 곳에 앉은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좀 더 지켜볼만했다. 다음 정거장에 버스가 멈춰 섰을 때, 70대로 보이는 한 명의 백발노인이 올라탔다. 풍이 왔었는지 오른쪽 손을 덜덜 떠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다. 노인이 젊은 남자 쪽으로 다가가 섰지만, 핑크색 자리를 꿰찬 젊은 남자는 오히려 창문 쪽으로 시선을 향하며 그쪽을 결코 바라보지 않았다. 노약자를 보고도 자리양보를 하지 않는데 임산부가 앞에 있다고 자리를 비켜줄 것 같진 않다.
노인이 오른팔을 덜덜 떨며 기둥을 붙잡고 서있자, 결국 뒤에 앉아있던 아줌마가 자리를 양보했다. 노약자석이 노인 지정석이 아니고, 임산부 배려석이 임산부만 앉는 자리가 아님은 인정한다. 하지만 ‘배려’라는 뜻이 무엇인가?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기 위해 마음을 쓰는 것을 배려라고 한다. 나는 우리가 도움을 주는 입장이 되더라도 상대의 마음까지 편하게 해주는 것이 배려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핑크 색깔만 보이면 눈이 커지는 나는 9년 전의 일을 떠올려본다. 그때는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고, 1시간씩 버스를 타고 직장을 다니던 때고, 임산부 배려석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던 때다. 버스에서도 대부분 서 있어야 했고, 출퇴근 시간 외에도 서서 일하는 일이라 조산끼가 있던 때다. 때문에 다니던 일을 그만두었던 때다. 핑크 색깔만 보이면 눈이 커지는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핑크색 자리에 당연히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우리 눈에 충분히 보이지 않는, 눈에 띠지 않는 사람 중에서도 힘들고 약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배려를 조금이라도 받았다면 덜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배려가 의무는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용기 내어 말하고 싶다.
핑크색 좌석에 앉지 말고 바라봐 보세요. 핑크색은 마음을 느긋하게 해주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멋진 배려가 뭔지 알고 있어요. 실천만 하면 됩니다. 삶을 좀 더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바라본다면 우리가 옳고 그름을 따질 이유가 사라지기도 합니다.
성숙한 포용의 핑크빛
부산에서는 지하철에 '핑크라이트'라는 불빛이 있다고 한다. 주변에 핑크색 불빛이 깜빡이면 근처에 임산부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불빛이라는데, 임신 초기에 말 못 하고 힘겹게 서있을 임산부를 위해 마련한 양보 신호등이란다. 이러한 신선하고 따뜻한 배려가 핑크색 불빛으로 반짝인다는 것에 나는 감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