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핑크 색깔은 예쁨을 담당하는 대부분의 물성들에 뿌려놓은 색깔이었다. 갖가지 인형과 악세사리, 문구류, 화장품, 여성용품 등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은 투박하고 실용적인 것들 옆에 덜 실용적이어도 예쁜 것들을 배치해서 우리의 눈을 현혹시켰다. 예쁜 것들은 돈을 더 지불하더라도 구매하고자 하는 욕구가 컸기 때문에 언제나 늘 잘 팔려나갔다.
무꽃과 핸드폰
여자들의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색깔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색깔이 핑크색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핑크에는 핸드폰이 있고, 블루투스 키보드, 무선 마우스, 그리고 여러 가방에도 핑크색이 빠지지 않는다.
자주 쓰는 핑크색 용품들
운동을 할 때에도 핑크색이 들어간 레깅스나 티셔츠들을 사 입었다. 최근에는 오래된 골프채를 바꿔야 해서 샵에서 상담을 받는데 미리 알아봤던 제품은 사지 않고 엄한 핑크색에 꽂혀서 그 골프채를 손에 쥐었다. 이럴 땐 핑크 덕후임을 인정해야 할지도.
지난주엔 친한 친구로부터 핑크스러운 선물을 받기도 했다. 내가 핑크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연재하다 보니 친구는 “이제 핑크만 봐도 네 생각이 나더라.” 라며 웃으며 택배 상자를 건넸는데, 색깔부터 강렬했던 핫핑크색 두루마리 화장지였다.
레노바 컬러 화장지 : 핑크
오 마이 갓! 아마 이건 지구상에서 가장 섹시한 화장지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핫핑크색 두루마리 화장지는 화장실 분위기를 싹 바꾸어줬다. 은은한 휴지 향도 맘에 들었고 휴지를 쓸 때마다 일어나는 먼지 날림도 없었다. 걱정거리였던 물 빠짐 현상도 없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한 번쯤은 호기심에 사볼 법했지만 평소 30 롤 들어있는 화장지 한 묶음과 6 롤 들어있는 핑크색 화장지가 같은 가격으로 매겨져 있다면 적잖이 당황하며 나는 흰색 화장지를 고른다.
가끔 같은 제품인데 핑크색이어서 가격이 더 비싼 경우들이 있다. (위의 화장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그런 차별적인 일들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화장품, 면도기, 데오드란트 등 같은 상품이라도 ‘여성용’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좀 더 비싸지는 현상이 있었다. 사람들은 남성용 상품보다 여성용 상품에 좀 더 가격을 높여 판매하는 것에 대해 ‘핑크 세금(TAX)’을 내고 있는 것 아니냐며 그런 불공정에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you`re no good!
이럴 때에는 핑크색은 아름답지만 불쾌하게 느껴진다. 몇 해 전에 스타벅스에서 프리퀀시 이벤트로 내걸었던 여행 가방 ‘서머 레디 백’이나 아이스박스 ‘서머 데이 쿨러’의 핑크 색깔에서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계절 음료 3잔을 포함하여 17잔의 음료를 당당히 구매하고 받아내는 사은품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쁜 핑크색의 사은품을 받아내기 위해 돈을 쓰고 줄을 서서 기다리며 소중한 시간을 썼다.
우리가 계속해서 알게 모르게 핑크 택스를 지불하며 농락당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어쩌면 핑크색은 사치의 색깔이 맞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