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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Dec 30. 2021

친해지기 위한 프로세스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단편 모음 중 <교환학생>을 보고 

주인공 아이는 지구에서 외계로 전학을 간다. 친구들이 하는 말은 안 들리고, 그들의 생김새부터 식습관까지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친구들은 주인공을 배척한다. 그들끼리만 놀던 와중, 공이 바깥으로 날아가고 친구들을 대신해 그 공을 주워온 주인공은 그들의 일원이 된다.




어떤 드라마, 영화 속에 꼭 들어있는 클리셰 중 하나이다. 주인공이 새로운 집단에 들어갈 때, 들어가기 전 기존 사람들의 배척,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 그 관문을 통과하였을 때 해당 집단의 사람들이 주인공을 인정해주는 일련의 과정, 어린 시절뿐 아니라 어른이 된 지금도 꼭 한 번씩 겪는 프로세스다.


그 프로세스를 잘 처리하는 사람이 세련된 사람이고, 어른이며,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반대의 라벨을 얻는다. 그러나 그 ‘라벨’ 도 한번 더 생각해보면 각자가 추구하는 관점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의 ‘세련된 행동’ 이 다른 사람에겐 ‘무딘’ 행동이거나 ‘과한’ 행동으로 비치기 너무나 쉽다. 그들의 생각을 미리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운에 맞길 뿐이다.


집단 속에 들어가 있고 싶었지만 그들이 원하는 만큼 동화되지 않았던 사람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본다. 예전에 만난 이사님이 머릿속에 들어온다. 그는 새롭게 만난 집단의 문법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이사님을 반기지 않았다. 이사님이 자신의 문법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단의 문법에 자신을 온전히 맞추지 않고, 자신과 집단을 조화롭게 맞추어 가고 싶어 했다. 조화로움, 집단은 단 한 번도 겪지 못한 단어였다. 자신들의 현재가 ‘가장 조화로운 상태’이며, 그 외의 타인을 받아들이고 인정하여,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그대로 인정하는 그 상태는 ‘조화롭지 않’을 뿐이었다. 결국 집단은 이사님으로부터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사님이 그들의 문법에 맞춰가면 갈수록 새로운 문법을 들이밀었다. 평생 맞추지 못하는 퀴즈를 자꾸 냈다. 결국 이사님은 자신의 문법을 고수하는 것도, 집단의 퀴즈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도 포기한다. 그리고 그 자리 자체를 포기했고, 떠났다.


영상 속 주인공과 외계 생명체는 어린아이들이었기 때문에 서로가 동화되는 것이 가능했다.


그들은 서로의 ‘불안감’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밖에 몰랐기 때문에 서로를 수용할 수 있었다. 불안해하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내 과거 속) 집단 구성원들은, 드러내지 않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을 것이다. 이미 많은 불안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타인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방법이 가져다 줄 안정감을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아니면, 그 집단 구성원들의 눈에는 이사님의 프로세스가 너무 무뎠거나, 과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영상 속 주인공과 외계 생명체는 같은 수준의 ‘프로세스’를 발휘했기에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온 ‘이사님’과 ‘집단’ 은 그 결 자체가 달랐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 ‘세련되지 못한’ 프로세스를 가진 이사님을 감히 허용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답은 아무도 모른다. 나 또한 그 과거 속 이사님을 붙잡고 물어볼 수 없으니 추측하는 수밖에 없다. 그 대신 이 영상 속 주인공과 외계 생명체들을 한번씩 더 부러워할 뿐이다. 같은 결의 프로세스를 가진 존재를 만난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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