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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Jan 06. 2022

귀엽지 않아서 다행이야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단편 모음 <라이트닝 인 어 보틀>을 보고

주인공 아이는 번개를 잡아 가두기 위한 병을 준비한다. 번개가 잔뜩 치던 날, 그 병에 번개 한 마리(?)를 잡아넣게 된다. 원하던 것을 이룬 아이는 즐거워 하지만, 이내 번개는 나가고 싶어(?) 한다. 번개가 시간을 좀 느리게 흐르게 했더니, 아이 눈에 번개의 움직임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번개의 친구(?)가 병에 갇혀 있는 번개를 구하러 와보지만 불가능했다. 잡힌 번개는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불쌍한 표정(도 아닌 그냥 어떤 것)을 보여주자, 아이는 미안한 나머지 번개를 풀어준다. 번개는 풀려나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아이 주변으로 폭죽과 같은 형태로 번개를 터뜨리고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예전에 어떤 글을 하나 본 기억이 난다. 각 생물체의 아기가 귀엽게 생긴 이유는, 그 생명체가 막 태어나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첫 번째로 ‘귀여움’이라는 무기를 갖췄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꼭 인간의 아기뿐 아니다. 아기 호랑이도 귀엽고, 아기 강아지도 참 귀엽게 생겼다. 새끼 돌고래도 귀엽게 생겼고, 아마 이제 막 태어난 아기 해마도 자그마해서 잘 볼 수는 없지만 귀엽게 생겼을 것이다. 그들이 생존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갖출 수밖에 없었던’ 무기, 귀여움을 장착한 것이다.


이야기 속 번개도 그 귀여움을 장착했다. 작은 몸에 큰 눈처럼 생긴 점 두 개가 일렬로 배치되어있고, 그 아래는 다리처럼 생긴, 양 옆으로 뻗은 팔보다는 조금 두꺼운 두 개 기둥이 붙어있다.


이렇게 말이다.


무심결에 저 그림 속 번개를 귀여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둥그렇게 생긴 결정체가 병 안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나가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곤, ‘얼른 놔주지’라고도 생각하는 나도 있었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사실은 자연현상이 지구라는 병 속에 수많은 인간을 넣고 흔들고 붙잡고 있는 중이다. 인간들 중 몇몇은 너무나 귀엽게 생긴 나머지, 자연현상이 그들을 지구로부터 해방시켜주기도(!) 했다. 그들은 지구의 삶을 끝내고 우주에서 ‘별'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번개의 눈에 ‘그다지 귀엽게 생기지 않았기’에 풀려나지 않았고, 거대한 지구 위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다는 상상.


거울을 한 번 보고, 귀엽게 생기지 않은 나 자신을 바라본다. 휴, 다행이다. 자연현상 눈에 그다지 귀엽게 생기지 않아서 지구에서 인간의 삶을 계속 유지할 수 있구나. 귀엽게 생기지 않은 것의 장점도 있었네,라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하루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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