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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Jan 05. 2022

할머니 집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단편 모음 <순환>을 보고

주인공은 요양원에 가기 전 할머니, 그리고 그녀의 인생이 녹아있는 집을 시간 역순으로 보여준다. 할머니에서 엄마, 그리고 와이프의 모습까지.




최근에 할머니 집을 다녀왔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시던 적에는 ‘할아버지 집’이라고 불렸던 공간 말이다. 왜 그 집을 굳이 할머니, 할아버지로 구분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특별히 부를 말이 없던 탓에 무의식적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할머니만 남아있는 공간이 되어서야 드디어 그 집이 ‘할머니 집’ 이 되었다.


할머니 집에는 방이 두 개 있다. 큰 방과 작은 방, 큰 방에는 침대와 TV가 있고, TV 아래에는 할머니의 서랍장이 있다. 움직이기 쉽지 않은 그를 위해 리모컨 꽂이는 침대 주변에 있다. 전화기도 따로따로 놓여 있는데, 그중 하나는 침대 곁이다. 혹시나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일 때 가족들에게 연락하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그 자리에 두었다. 코로나 1차 접종 후 주말이 되자, 요양사도 따로 방문하지 않았는데 하필 할머니의 통증은 그때부터 시작되었고, 멀리 있는 전화기를 잡지 못한 할머니가 겨우겨우 침대에서 내려와 가족에게 연락했던, 아찔했던 경험 이후에 배치된 것이다.


그다음, 거실에도 할머니의 손길이 조금 보인다. 아쉽게도 자신의 시간 대부분을 침실과 부엌에서 보내는 탓에, 거실이어도 할머니 친화적인 물건들이 그리 많지 않다. 소파나 테이블, 기타 잡동사니는 할머니 스스로를 위한 것은 아니고, 그 집에 드나드는 다른 가족들을 위한 공간이다.


거실을 너머 작은 방에는 김치냉장고와 책 선반, 그리고 옷장이 있다. 옷장에는 할머니 취향의 겉옷들이 있는데, 평소에 열어볼 기회가 많지는 않다. 할머니의 외출복들은 할머니의 다리 건강과 완전 반대다. 다리 상태가 좋지 않을수록, (나갈 수 없으니) 옷들의 상태는 유지되는 것이다. 아쉬웠다. 할머니의 외출복을, 패딩을, 멋진 겉옷들을 사드리고 싶었지만 할머니의 다리가 허락하지 않는다. 코로나 때문에 ‘외출하지 못하는’ 상황을 달래곤 있지만, 코로나가 끝나면 그는 그의 두 다리로 나가서 바깥을 여한 없이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닳고 닳은 외출복과 함께 말이다.


할머니의 모든 생활들이 함께하는 부엌, 식탁. 할머니는 식탁에 앉아 있는 것이 편한가 싶다. 편하다기보다는 익숙하겠지. 과거 할아버지와 함께, ‘숟가락 하나만 들고 시가를 벗어났던’ 할머니의 인생은 작은 부엌에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결혼 후 시가에 들어가 보니, 식모살이할 게 너무 뻔했다고 한다. 그들이야 좋겠지만, 할머니 스스로는 이렇게 살면 안 될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큰 도시로, 부산으로 서울로 계속해서 남편을 끌고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자기 자식들에게 떳떳하면서, 돈 걱정 없이, 다른 가족들 눈치 안 보게 키우기 위해 스스로를 갈아 넣었던 공간, 부엌이다.


가만히 부엌 의자에 앉아 어떤 생각을 하실까 싶어, 그를 위한 엽서와 책을 두고 할머니 집을 나선 지난주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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