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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Jan 15. 2022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시작한 생각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단편 모음 <징화>를 보고

앞서가던 사람의 죽음, 그의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스승에게 배운 무술을 하나 하나 사용할 때 마다 자신을 둘러싼 것들이 한개씩 보이기 시작한다. 제일 마지막엔, 자신이 딛고 있던 땅을 향해 무술을 사용하고 그 곳에서 스승을 잠깐 만난다. 마지막까지 모은 무술의 모든 힘을 다해 땅이 아닌 하늘로 펼쳐내본다. 모든 힘을 다 하여 하늘에 작은 원을 그리고 나서야, 주인공 주변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주인공은 자신의 멘토와, 이 영상을 만들던 감독은 세 명의 가족과 큰 이별을 맞았다. 내 주변에서 나에게 이별을 고할만한 사람을 떠올려보니 할머니가 떠오른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많이 없다는 것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에게 할머니는 역할 속의 할머니었다. 이름을 외우고, 인사를 해야 하고, 나는 잘 모르지만 그들이 날 좋아하니까 찾아가는,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역할에 따라 행동을 했던 그 존재말이다.


그러다 작년에 나의 성격을 찾아 올라가보니 그 끝에 나의 할머니가 있음을 깨달았다. 무언가를 해야 하고, 남에게 밉보이면 안되고, 마음은 쪼그라들어있더라도 그 모습이 바깥으로 보이지 않도록 어깨를 피고 다녀야 한다는 것, 무시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해야 상대도 나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그 일련의 생각들 말이다. 무의식 속에 뿌리 박혀 있던 생각은 DNA 를 통해서도 왔겠지만, 내 어릴 적 나의 할머니가 나도 모르는 새에 그녀의 생각을 들려줬을지도 모른다. (이 내용은 어느 누구도 기억할 수 없기에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도 없다 ) 어찌되었든 지금 되돌아보니 나의 삶에 긴 그림자 처럼 깔려있던 베이스는 나의 아버지, 나의 할머니에게도 똑같이 보이는 것을 보면 아마 그들의 피(?) 에서 온 것이겠다 싶었다.


그런 그녀는 왜 그런 생각을 하였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어떤 삶을 사셨길래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지난번 잠깐 만났을 때 물어보자, 그녀는 놀라운 사실을 나에게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너희 할아버지랑 숟가락 하나 들고 집을 뛰쳐나왔다’


할아버지 집안으로 결혼을 간 할머니는, 자신이 식모살이처럼 할 인생이 너무 뻔하게 눈에 그려졌단다. 그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설득하여 부산으로, 서울로 이사를 하며 직업을 얻고자 했다. 그녀는 자식 넷을 낳고, 자신의 남편을 해외에 보낸뒤 홀로 살아온 그 삶을 살아내면서 여러 사건들을 경험했겠지. 첫째와 둘째, 셋쨰와 넷째가 각각 자신의 삶을 잘 살면 다행이고 못살면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그들이 자기의 가정을 꾸려 손자 손녀를 데리고 왔을때는 즐거웠을 것이고, 그들과 소원해졌을 때는 ‘또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살아야지’ 라며 받아들였을 것이다.


자신의 삶이 아닌 누군가의 그림자가 되어 서포트 하는 삶을 사는 것, 그리고 그 끝에서 ‘내 삶을 좀 더 살아봐도 괜찮았는데, 너무 스스로를 <누리지 않아도 괜찮은, 안그래도 괜찮은> 존재로 살았구나’ 하고 깨닫게 되며 아쉬움을 남기진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의 인생 선배들, 나의 스승님들, (나의 엄마와) 나의 할머니를 위한 선물을 떠올려 본다.


그녀의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선물해주고 싶다.

시작은, 노트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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