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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Jan 23. 2022

디즈니의 '뻔한(?)' 음악 이야기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단편 모음 <제니스>를 보고 

사슴의 모양을 한 별자리가 뛰어다닌다.

평화로웠던 우주에 블랙홀이 등장하여 자신의 친구 별자리들을 모두 흡수한다.

사슴 별자리는 자신의 뿔을 가지고 블랙홀로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사슴 별자리의 희생으로 나머지 별자리들은 블랙홀으로부터 탈출하고, 탈출한 그들은 사슴 모양으로 모여있었다.




감독은 이번 영상을 준비하면서 음원에 많은 신경을 썼다고 소개한다. 최근 ‘다운타운’을 보고 디즈니의 배경음악에 굉장히(?) 실망해있던 터라, 제발 좀 좋았으면 하는 애타는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번 영상은 ‘디즈니’ 하면 떠오르는 배경음악들로 가득했다. 디즈니랜드에 가면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그 음원, 디즈니 퍼레이드를 보거나 열차를 타기 위해 건물에 들어갔을 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그런 구조 말이다. (1) 자기 인생 열심히 살다가 (2) 시련이 닥치고 (3) 주인공 각성하고 (4) 최종 결과물을 맞을 때 종종 나오는 박자와 악기들이 거의 그대로 나왔다. 약간의 자가 복제 느낌도 들었다.



조금 더 소개하자면 이렇다.


(1) 자기 인생 열심히 사는 장면

Epcot entrance music loop

이 장면은 이 느낌과 비슷하다. 따다 다단, 따다 다단, 하면서 뒷 배경으론 풍성한 오케스트라를, 주요 등장하는 악기는 사람의 걸음걸이보다 2배 빠른 속도로 계속 연주하는 구성. 그 덕에 ‘주인공 나’를 둘러싼 이곳이 평범한 곳이 아니라, ‘모두 나를 위해 서포트를 해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주요 등장하여 사람의 걸음걸이보다 빠른 속도로 연주하는 악기 때문에, 음악을 듣는 ‘주인공 나’의 움직임도 빨라진다. 그 음악을 들을수록 나의 미래가 밝아지고, 자신감이 가득 차오르는 느낌을 받게 된다.



(2) 시련이 닥치는 장면

(비슷한 음원을 찾지 못했다)


배경으로 전달되던 음악이 잠시 멈춘다. 귀를 통해 주인공의 상태를 따라가던 사람들이 불현듯 ‘아니 이게 뭐람’ 하는 생각과 함께 화면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어두운 느낌의 음악과 블랙홀이 눈앞에 등장한다. 어두운 느낌의 음악은 그 나름대로 웅장해서, 쉽게 주인공이 대적할 수 없을 듯한 느낌을 준다. 크기도 주인공보다 훨씬 커다랗고, 선명하고, 음흉하게 생겼거나 혹은 그 정체를 알 수 없게 생겼다. 대부분 주인공과 반대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마치 MBTI에서 정반대 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3) 주인공이 각성하는 장면

https://www.youtube.com/watch?v=_kZDScT9wz0&list=RDQMwumom7GUoAg&start_radio=1

초반의 주인공은 다양한 성격을 보인다. 바로 달려드는 존재도 있고, 가만히 관찰하는 존재들도 있다. 그렇게 ‘능동적인 액션’을 취하는 주인공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 처음이기에 (디즈니는 참 너무했다. 처음인 존재에게 저렇게 큰 적을 주다니. 사실은 그리 큰 적이 아닌데 주인공에게 처음이기에 크게 느껴지는 건가?) 가만히 얼어붙어있어, 주인공 주변들이 더 큰 피해를 겪는다. 운이 좋게도 주인공은 피해를 입지 않는다.

좀 아이러니한 부분은 이것이다. 실제로 ‘내 인생에 오는 시련’은 주변인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고 오직 나에게만 어렵게 다가온다. 나는 타인들이 ‘다치는 모습’을 통해 ‘저게 시련이다’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각자의 인생에는 1:1로 싸워버려야 하는 적이 있을 뿐이다. 이런 나에겐 어떤 음악이 잘 맞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주인공은 그렇게 고민 고민하다가 결국, 자신이 스스로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 결심을 하는 순간 음악은 경쾌하지만 진중하게 바뀐다. 음악 속 알맹이가 있는 느낌. 음악은 ‘거봐, 너 할 수 있었다니까? ‘라고 말해주듯 에너지를 담고 있다. 블랙홀을 대하는 주인공의 행동에는 ‘큰 뜻’이 담겨있고, 그 큰 뜻을 품었기에 큰 에너지가 나온다고 설명한다.

사실 이 부분도 웃긴 포인트가 있다. 실제로 우리네 삶에서 큰 뜻을 품는다고 큰 에너지가 나오는 건 절대 아니다. 에너지는 어제 쓴 만큼만 나온다. 내가 관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미 많은 일들을 습관화하였다면 크게, 그렇지 않다면 작은 에너지가 나올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큰 에너지를 발현할 수 있었던 것은 디즈니 주인공들만 가능했다. 우리네 인간들 말고.



(4) 최종 결과물이 나오는 장면

어벤저스 4:엔드게임 ost (엔딩 크레딧 ost)

주인공의 희생으로 주인공 빼고(!) 나머지 주변인들이 블랙홀 속에서 빠져나온다. 아름다운 별이 된 주인공, 그의 움직임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듯 화면도 아름답고 음원도 웅장하다. 오케스트라가 다 같이 힘을 내서 ‘감사합니다’라고 외친다. 저음을 내는 타악기들이 더 많이 등장한 느낌을 받았고, 이 모든 서사를 정리하듯 크고 박자가 느린, 그렇다고 힘이 빠지지 않을 수준의 속도로 연주되는 음악과 함께 영상도 마무리된다.

힘은 주인공과 블랙홀, 두 메인 캐릭터가 다 쓰고 소멸한다. 남은 존재들은 주인공의 희생에 감사하고 블랙홀의 사라짐에 안도하게 되지만 그건 그들의 마음속에 ‘감정’ 형태로 존재할 뿐이다. 실제로 그 어느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힘만 쓰고 없어진 셈이다. 억울하진 않을까, 했지만 억울할 거라 상상한 ‘나의 깜냥이 그 정도’라고 스스로 알아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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