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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Jan 01. 2022

빨간불에 멈추지 않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단편 모음 중 <횡단보도>를 보고

세포에서 물고기, 유인원을 지나 한 인간이 된 어떤 존재가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기다리는데 불은 바뀌지 않는다. 빨간 불은 인간이 된 존재를 다양하게 놀린다.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한없이 늘리기도 하고, 앉아라 일어나라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인간에게 행동을 요구한다. 그 요구를 받다 못한 인간은, 자신의 dna 하나를 바꿔버림으로서(?) 그 빨간불의 요청을 무시한다. 무지막지한 힘을 가지고 빨간불의 저지를 무시하고 건넜지만, 자신의 가방을 두고 온 것을 깨닫는다.

우선, 이 영상은 시작 부분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감독은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네 조상을 떠올렸어요.’ 라고 말을 하며 앞부분의 설명을 덧붙인다. 감독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나니, 내가 좋아하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문명인으로 살고 있는 한, 야만인의 행동을 한다는 것은 우리 조상들의 시간과 노력을 욕보이는 것이라는 점, 그가 인간이 되어 횡단보도의 빨간불에서 멈추고 파란불에서 움직이려고 한 것도 그와 같지 않을까. 오랜 시간을 들여, 문명인이 자신의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지키고자 한 ‘우리네 법칙’ 을 상징하는 것이 횡단보도의 파란불이지 않았을까.


주인공은 자신의 조상들이 보낸 시간 속 시행착오를 결국 ‘무시’한다. 사실 무시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DNA에 새겨진 흔적을 깨 부수기로 했고, 그 흔적을 이겨 내기 위해 눈을 번쩍이며 횡단보도를 건넌다. 빨간불은 그에게 ‘그만해, 정지’ 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는 내면을 이기고 결국 빨간 불에 길을 건넌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한 단계 진화를 한 셈이다. 과거의 조상들이 ‘위험하니 행동하지 말라’ 라고 제한 둔 본능을 이겨낸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고(관찰하고) 아무 이상이 없을 경우, 그 행동을 해도 된다, 라는 새로운 명제를 몸소 보여준 것이다.


아쉽게도, 그는 실패했다. 자신이 가지고 왔어야 했던 가방을 건넛편에 두고 온 것이다! 자신의 오른손엔 ‘있어야 했던 서류가방’이 없었다. 빨간불은 그를 향해 가득 비웃었다. 그리고 그는 절망했다. 빨간불의 웃음 속에는 ‘거봐, 너 그럴 줄 알았어. 하지말라고 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지’ 라는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말 자신이 횡단보도를 건넌 것을 후회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빨간불은, 문명은, 사회는 그에게 ‘하지말라’는 사인을 다양하게 건넨다. 그러나 행동할 수 있는 주체인 인간, 문명의 결과물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결국 문명은 인간에 의해 다시 쓰여진다. 횡단보도를 건넌 그는 자신의 가방을 가지러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는 초록불에도 건널 수 있지만, 이미 한번 건너본 그 길을 다시 자신의 판단에 기반하여 건널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옵션이 한 가지 더 생긴 것이다. 초록불에 건너는 것, 그리고 '빨간불에도 건널 수 있는' 것.


영상에서는 더 이상 보여주지 않는 그의 미래를 곰곰히 생각해본다. 그는 분명 자신의 가방을 가지러 다시 빨간 불을 건널 것이다. 그리고 그 가방을 잘 잡고 또 한번 더 빨간 불을 건널 것이다. 그의 삶이 바뀌는 순간이 시작되었다. 작가가 원하던 이야기도 그것이 아니었을까. 빨간 불, 제한된 어떤 것 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려고 하는 행동의 주체인 '우리 자신'의 다음 이야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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