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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Jan 20. 2024

라스트 포커스

퇴사한 이형 [타임트래커 시간관리 원데이 클래스]를 듣고 #3

잠깐 피드백 하는 시간을 가진뒤, 그는 15분의 쉬는 시간을 주었다. 이미 클래스에 참가한 사람은 그의 24년 다이어리를 사들고 와있었다. 아주 극 소수만 그의 다이어리 없이 클래스에만 참가했다. 그 중 하나가 나였다.


그의 다이어리 라인업엔, 지난번에 이야기 했던 ‘멋진 쨍한 파란색’ 은 없었다. 검정색과 흰색, 미색은 있었지만 그러한 파랑은 없었기에 가방에서 노트를 꺼낼 때도 조금 조심스러웠다. 그 수업을 들으면서 아무런 ‘도구’ 도 없다는게 조금 부끄러워진 나는, 쉬는시간 15분 동안 24년 다이어리들을 들춰보았다. 살 예정은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내가 모르는 그만의 프레임이 있는건 아닐까, 싶어 궁금해졌기도 했다.


그의 다이어리는 온라인 판매처나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던 건, 손바닥 정도의 세로로 길고 가로가 조금 짧은 노트였다. 그걸 ‘날개’(와 비슷한 어떤 단어) 로 칭했는데, 24년 다이어리 본체 옆에 끼워 쓸 수 있는 용도로 만들었다고 했다. 용도도 다양했는데 눈에 띄던 건 <주니어 전용> 노트였다.


팀장님의, 협력업체의 모든 이야기를 받아적으려고 했던 나의 주니어 시절이 눈앞에 그려졌다. 무지 노트에 ‘어떤 이야기가 중요한지도 모른 채’ 마구 잡이로 받아적곤 정리하는데에 꽤나 오랜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었다. 그 시간을 들였지만, 시간 이상의 혜택을 얻진 못했다. ‘나만의 기준을 갖지 못한’ 주니어에게는 너무나 당연했다. 그리고 그 노트는, 그런 점을 해소해주기 좋았다.


노트 한 권을 둘러보고 기억에 남는 부분은, 감정노트/단어노트 라고 구분해 둔 페이지였다. 제작자의 세심함이 느껴지는 페이지였다. 감정노트를 따라 적다보면, 회사 생활을 하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 그 감정을 느끼게 한 기폭제가 되었던 단어를 찾을 수 있다. 단어노트는 상사/동료들이 주로 사용하는 단어들을 리뷰하며, 그들의 언어를 나의 언어로 바꿀 수 있는 사전처럼 사용할 수도 있었다. 내가 만약 주니어 시절에 이런 노트의 존재를 알았다면, 이런 기준들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타인을 만나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은 갖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더 수월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동생에겐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권 구매했다. 그렇게 돌아오니 15분이 순식간에 지나가있었다.


남은 시간동안 그는 <우선순위> 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오늘 해야 할 10가지를 떠오르는 대로 쓴다. 그리고 나선 중요도와 시급성을 기준으로 4사분면에 배치한다. 2사분면(높은 중요도와 높은 시급성) 을 가진 곳에서는 2가지, 1사분면 (높은 중요도와 낮은 시급도)를 가진 부분에 배치된 항목 중에서 3가지를 골라야 했다.


나머지 5개는요? 버리는 겁니다. 바로 버리세요. 그건 중요한게 아닙니다.


앗, 또 한번 나를 발견했다. 버린적이 없었던 나를 직면한 것이다. 내가 가진 체력과 시간을 최대한으로 사용해 많은 것들을 이루어내려고 했다. 그래서 항상 허덕였다. 내가 주어진 시간동안 할 수 있는 게 3개 뿐이더라도, 나는 매번 10개를 기대하며 다이어리에 써두었으니 스스로 생각할 땐 ‘역부족인 사람' 일 뿐이었다. 만약 내가 그때 처음부터 5개를 버리고 시작했다면, 아닝 7개를 버렸다면 어땠을까. 매일 나에 대한 기억이 ‘꽤나 달성하는 사람’ 이었을것이다. 생각을 바꾸니 5개를 쉽게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안해도 된다’ 라는 상태가 만족스럽기도 했다.


에라이, 하고 5개 위에 좍좍 선을 그어버렸다. 그리고 나서 중요하고 시급한 것들만 하기로 결심했다. 10개를 하려고 했는데 5개만 해도 된다니 몸이 저절로 신이 난 듯 했다. 들은 강연의 후기를 ‘얼개’ 로 작성하기, 얼개를 기반으로 1/3만 작성하기, … 등등 5개로 줄였을 뿐인데 그 날이 조금 더 길어진 듯한 느낌도 받았다.

우선순위 기준으로 꼽은 5개를 실제 내 삶에서 수행할 수 있게 자리 재배치를 해야했다. Time Blocking 이라고 하는 것이 필요했다. 하루 20%는 내가 최우선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그리고 5%는 그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들을 하세요, 라는 말을 남겼다. 잠자는 7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14시간 중 2.8시간을 ‘최우선 과제’에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30분은 나의 ‘우선과제’ 할당해야 했다. 가용시간의 80%를 최우선과제보다 우선과제에 사용했던, 그리고 15%만 최우선과제를 활용하는데 사용하고 남은 5%만 겨우 쉬었던 과거의 내가 거기있었다.


다행이었던 건, 기억이 아니라 노트에 쓰여진 글자들을 기반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고있었다는 점이었다. 메모를 좋아하는 나는 매일 그렇게 나의 시간에 대한 메모를 하고 있었다. 몇시부터 몇시에는 어떤 스터디를 했는지 적었고, 잠은 언제 일어나 운동을 갔었는지 남겨두었다. 강연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시간에 대한 글을 남겨두는 것”도 메모라는 말을 들었을 때, 크게 끄덕이기까지 했다.


2시간 짜리 강연은 약간은 쫓기듯, 약간을 급하게 그러나 시간에 맞춰마무리 되었다. 원데이 클래스를 듣고 나니 사전 질문의 답변은 나에게 필요 없었다. 개인화되지만 않았을 뿐, 그가 해준 말에 답이 있었다. 나는 그의 여러 이야기 중에서 ‘가장 필요한 것’ 부터 내 삶에 적용시키면 되는 일이었다.


여운이 많이 남는 강연이었다. 끝나고 나서 강연장을 한번 휘 돌아보기도 했고, 집가는 지하철을 타기 전 편의점에 들러 샌드위치도 사먹었다. 2시간 동안 들은 이야기를 바로 내 삶에 적용하고 싶었다. 우선순위에 맞춰 todo를 짜고, 그 중 반만 선택했다. 머리가 조금 더 가뿐해진 느낌을 받았다. 그래 이거야! 내가 원하던 느낌이 이거였어! 스스로의 ‘하기 싫은 마음'을 뛰어 넘어버린 상태, 부담스럽지 않게 해야 할 일을 처리하는 어떤 status, 그 상태가 될 수 있게 만들어준 클래스였다.


지금은 그렇게 삶에 적용한 지 5일 정도가 지났다. 조금 더 차분해졌고 머릿속이 더 많이 정리된 느낌이다. 그리고 피드백 & 재설계 하는 과정이 머릿속에서 당연하게 흘러간다. 나는 나의 시간을 잘 썼는가? 유효하게 사용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스로 물어보곤 하는 일주일을 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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