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했던 것을 되돌아보게 해준,
그는 LogicKor라는 이름의 벤치마크 데이터셋을 만든 사람이었다. 아직 고등학교 재학중이었고 현장실습을 신청하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며칠 걸리지 않아 만든 벤치마크 데이터셋은, 논문을 보고 참고했다고 이야기했다. 22년부터 개발을 시작했다는 그의 계기는 외국 게임 속에 한국어 패치가 없어 번역을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런 그의 단순한 마음이 여기까지 그를 데려왔다. 그리고 그의 그 다음 꿈은, 유학이었다. 똑똑한 AI 인들이 모여있는 곳.
그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난다. 반짝거리는 눈에서 나오는 눈빛, 손가락과 엉덩이, 그리고 깃헙코드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자신감과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한스푼 더해진 눈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눈이었다. 확신에 찬 눈, 그러나 아집이 아니라 자기만의 경험에서 나온 눈을 가진 사람을 본건 참 오랜만이었다. 낯설지 않았다. 내가 어린시절부터 갖고 싶어했던 눈이기도 했다. 또렷한 사람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으며 '미래에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던 그때, 스크린을 넘어 보던 멋진사람들의 눈.
대학생 시절에 저 비스무리한(?) 눈을 가끔씩 뜰 때가 있었다. 인생의 길을 찾지 못했을 때, 그래도 정답같은것들이 몇몇 보이기도 했다. 머신러닝과 딥러닝을 할 줄 알아야 한다던가, 글쓰기를 놓지 말아야 한다든가. 내가 인터넷 세상 속에서 ‘검색되지 않도록’ 신분을 숨기며 다양하게 살아야 한다던가. 그런 이야기를 했을때 나도 저런 눈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런 것들이 나의 다음 선택들을 유도했고, 그 선택의 조합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Python을 배우고, NLP에 관심을 갖고 비식별화된 데이터를 다루는 방법을 알고자 했던 것들 이전에는 생생한 ‘눈’ 이 있었다. 그게 어느 순간 빛을 잃었고, 그 상태로 몇 년을 보내왔다. 상황과 현실을 부정하고 ‘억지로 타협한다’ 라고 말하며 말이다.
내가 깜박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보게 해준 눈이었다.
그와의 이야기 후 6시간동안 다른 사람들의 발표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길, 대중교통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그의 눈이었다. 그리고 나의 눈을 찾았다. 그의 눈을 닮은 내 마음속 제 3의 눈이 드디어 세상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돈에 대한 연결점이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너무나 당연한 인간의 생존욕구일 뿐이다. 그 생존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나의 눈이 찾는 것은 세상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소비자의 니즈가 철저하게 반영된 프로그램 말이다. 소비자를 만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조금더 빠른 시간내에 전달해주고 그 ‘시간 절약 값’ 을 받는 것은 어떨까. 이미 chatGPT가 충분히 잘하고 있고, 나의 몫은 그 LLM이라는 ‘거인의 어깨’ 에 올라 타 조금 더 발전한 무엇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부릅떠버린 나의 눈은 그 ‘방법’과 ‘아이템’을 찾기 위해 두리번 거릴 것이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용광로 위 눈이 프로도의 반지를 찾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