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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Mar 31. 2024

시계 소리를 듣다

요즘, 시계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뜬금없이,

‘시계가 필요하니?’라고 물어왔다. 시계가 필요하냐는 질문이 너무 새삼스러웠다. 핸드폰과 손목, 주변을 돌아보면 어디에나 있는 게 시계라, 굉장히 뜬금없는 질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엄마가 스윽 하고 상자를 열더니, 내게 시계를 보여주었다. 


‘이 시계 뒤에 있는 탱화가 좀 특이한 거야. 원래는 손으로 되어있는 부분이 연꽃으로 되어있어. 어때, 너 필요하겠어? 집에 가져다 둘래?’


손이 아니라 나무이고, 나무 끝에 연꽃이 있다는 게 참 신박했다. 그럴까, 싶어 알겠다고 하고 시계를 받아왔다. 그러고 나서 한 2일 정도는, 그 박스를 열어보지 못했다. 주말이 되어서야 하나씩, 열지 못한 주중의 박스들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청소와 정리를 할 때가 되어서야 그 시계를 포장 박스에서 풀어냈다. 앞의 탱화는 자세히 보지도 못하고, 뒤에 있는 건전지를 끼고, 16시 41분이라는 시간을 맞추고 시계를 가져다 두었다.


그때였다.

너무도 오랜만에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은 순간, 이제야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라는 걸 느낀 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들리는 소리는 냉장고 소리와, PC 본체가 돌아가는 소리밖에 없었다. 제3의 소리,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를 집에서 듣게 되니 그제야 ‘시간이 정말 흘러가고 있음’을 체감했다.


디지털시계, 핸드폰에 익숙해지다 보니 시간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요소들이 많지 않았다. 밈처럼 유행했던,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껴지면 1분 플랭크를 해보세요>라는 말이 내 머릿속에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감각을 키울 다른 것들이 많지 않았다. 타이머를 맞추는 게 전부였지만, 그 타이머도 내가 보지 않는 새에 끝나있곤 했다.


아, 정말 오랜만이야!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이 소리를 언제 들었던가. 학생 때 시험 보는 공간에서 듣던 소리 아니었던가. 최근 들어 이 소리를 들을 일이 아예 없었다. 단위 시간으로 나의 삶을 뭉태기로 묶어 살아내고 있었기에, 40분, 1시간, 3시간 단위였지 초단위의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지 못했다. 그러던 내게 시계, 그리고 시간이 지나가는 소리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글을 쓰며 다시 시계를 살펴본다. 워치페이스라고 말하는, 시계 속 그림인 <백운사 후불탱화> 도 다시 본다. 엄마의 말처럼 나무가 한 그루 크게 그려져 있다. 불교와 부처님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다양한 물건들이 나무에 걸려있다. 나무 끝에는 가지들이 길고 촘촘하게 뻗어있고, 그 위엔 연꽃이 피어 있다. 원근감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단면에 그려진 이 그림을 멍하니 쳐다보게 된다. 어찌 그려졌나, 이건 뭘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려진 그림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귀로는 시간이 지나가는 초침 소리를 들으며 눈으로는 계속 탱화를 쫓게 된다.

시계 소리 때문에 그 시선의 흐름에 더 집중을 하게 된다. 어린 시절, 이 소리를 들으며 공부를 해왔기 때문일까, 그 집중이 크게 어렵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반갑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던 그때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잠시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보다 어떤 task를 처리하는 것에만 몰두해 있던 내게 ‘시간이 흘러감’을 알려주는 새로운 요소가 생겼다는 게 좋다.


당분간 주말마다 이 시계 소리를 가만히 들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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