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플러스 스파크 쇼츠 <아웃>을 보고
주인공이 동성 연애 중임을 부모에게 말하지 않고 숨기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하는 찰나에 자신이 키우던 개와 영혼이 바뀌어지고, 개의 몸으로 자신의 엄마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미 그의 부모는 아들이 동성 연애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주인공이 어떠하든 간에 너의 편이 되어 응원해주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말을 들은 주인공은 다시 인간의 몸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자신의 애인을 소개한다.
가족이 나의 편이 되어주는 것, 어떤 선택을 하던 응원해주는 것. 평생을 걸쳐 결핍되었던 부분들이다. 고작 3달 간의 타인의 심리적 지지로 내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더 큰 배신감과 원망이 들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직접 해결해주길 바라지 않았다. 해결책을 스스로 제시하고 한 발짝 나아가 자기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훈련해주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내 삶에 부모가 그런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어려움을 앞두고 '회피' 하는 방법만 다양하게 알려주었다. 회피 하는 방법, 새로운 것을 자꾸 시작하기, 음식에 기대기, 타인에게 심리적 공감을 받을 수 있을 때 까지 반복적으로 이야기 하기, 스스로를 숨기기,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기, 나 스스로 짊어지기 등등... 종류도 많았다.
난 나의 부모가 디즈니 영상에 나오는 부모들처럼 행동해주기를 원했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널 사랑하고, 네가 하는 모든 것들을 응원한다, 고 말해주는 사람. 저게 뭐 얼마나 어려운 건가 싶었다. 그러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 나의 부모에게 너무나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한 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기대를 낮췄다.
내가 어떤 상태이든 나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이길 바랬다. 아니길래 포기했다.
내가 행복해 할 때 같이 행복해주는 사람들이길 바랬지만 그 또한 아니었다. 포기했다.
내가 문제 상황에 처해있을 때 해결해주는 사람들이길 바랬지만 이 역시 불가능 했다. 포기했다.
가족이라는 존재, 아버지,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기대를 계속 낮추고 낮춰서, 내가 괴로워 할 때 나를 괴롭히지 않는 사람을 원했다. 하지만 이조차 나의 너무나 큰 기대였음을 알았다. 내가 괴롭고 힘들 때, 그들은 더 많이 나에게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강조했다. 아버지 앞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엄마 앞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건 나쁜거야, 라고만 반응했다.
그들의 반응에 맞춰 30년을 살던 나는 결국, 내 자신을 '더 이상 고칠 수 없는 로봇'이라고 생각했다. 우울증도 있겠지, 자존감도 없지, 매번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마다 그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안달 난 나의 본능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는 나에게도 너무 실망스러웠다. 고치려고 수 천 가지의 방법과 유튜브 영상, 상담과 책을 다양하게 보아도 해결되지 않았다. 스스로 망가진 채로 평생을 살아야 하며, 그 탓은 '해결되지 못한 숙제' , 가족에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당신들이 나 힘들 때 응원과 격려를 해주지 않았어.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말 조차 해주지 않았어. 항상 내가 잘못이었고, 잘못 생각했고,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들이 더 '큰 뜻'을 가지고 있기에 나에게 그렇게 행동을 취했을 것이라고만 말해줬지?
위와 같은 생각에 매몰되어 살았다.
내 가족이, 최전방 심리적 지지선이라고 생각했던 내 가족마저 나에게 지지대가 되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망가진 나는 이대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자기 삶은 다 잘 살고 있었고, 누군가가 나에게 ' 너는 너 스스로를 너무 괴롭힌다' 라는 말이 내 머릿속에 자꾸 돌아다녔다. 그랬다. 이 고통은 내가 만든 것이고, 고통 안에서 아무리 가족들에게 구해달라고 손 내밀어 봤자 다들 각자의 시점에서 날 보고 행동할 뿐이었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손내밀어주지 않았다. 이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바깥에서 '널빤지 하나 정도 던져주는 수준' 이었다. '어어 그거 밟고 올라와봐, 내 생각엔 그 널빤지 밟고 올라오면 될 것 같아' 였다. 안되는데, 자꾸 널빤지만 던져주는 가족들에게 기대를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널빤지를 던지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지만, 더 이상 그 도움만 받기엔 내 자신이 너무나 많은 시간을 보내기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과거 속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내가 힘들고 괴로울 때, '아니야 너는 그렇지 않아' 라며 이야기 해주던 수많은 타인들에게 너무나 큰 감사함을 느꼈다. 그런 타인들이 내 주변에 운이 좋게도 너무나 많았다. 그들의 존재가 '당연하다'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가족이 해주지 못하던 심리적 지지를 그들이 해준 것이다.
그렇게 나는 가족으로부터, 과거로부터 나오기로 결심했고, 지금 빠져 나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