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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Dec 25. 2021

변하지 않기 위해 변화한 것

디즈니+ 스파크 쇼츠 <펄 purl>을 보고

실뭉태기 주인공은 회사에 입사한다. 인간들, 혹은 남자들로 구성된 회사 BRO에서 유일하게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실뭉태기 자신만 내보일 수 있는 아이템을 가지고 주변을 꾸미고, 자신 그대로를 타인들에게 보여주었으나 그들은 철저히 배제한다.


실뭉태기는 자신의 외관을 바꾸고, 인간들(혹은 남자들)과 동일한 사무 용품을 사용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사고방식에 따라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하기도 한다. 유머를 소비하는 방식도 함께 한다. 동일한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함께’라는 소속감을 부여받는다. 그러던 와중 또 다른 실뭉태기가 등장한다.


‘인간의 모습을 한 실뭉태기’는 인간들과 동일한 행동을 하던 자신을 멈추고 새로운 실뭉태기에게 찾아간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의 신규 직원을 회식에 초대한다.




소속감이란 무엇일까. 어린 시절부터 대학교,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 다양한 시기에 만나는 대다수에게 ‘소속’ 되기를 바랐다. 나도 당신들과 같은 속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며 그 속에 참여하고 싶었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먼저 요청하지는 않았다. 나 스스로 ‘가장 너희 같은 모습’을 찾았고, 그 모습에 부합하도록 스스로를 바꾸었다. 주인공 실뭉태기처럼, 나 역시 내 삶에서 스스로를 바꾸어 낼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열심히 바꾸었다. 그 결과 많은 집단에 속해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나 모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바꾸어 살다 보니, 내 스스로 나를 정의하는 힘이 점점 약해졌다. 나의 소속감이 나를 설명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비난하던 나였으나, 그런 내 자신을 다시 한번 바라보면 나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원하는 소속에 들어가기 위해 ‘내가 기꺼이 나를 바꾸려는 노력’에 취해있었다. 마약과 같았다. 진짜 나를 바라보지 않고, 마음껏 인지 편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아주 쉬운 방법이었다.


왜 그렇게 스스로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생각을 바꾸어 가며 소속에 살고자 하였을까? 내 마음속 ‘불안정’과 ‘well-functioned’라는 두 생각이 강하게 작용했음을 알았다. 불안정한 존재라는 것을 항상 알고 있었다. 안정적이고 싶었고, 그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는 내가 머리로 상상하는 걸 행동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변화하고 싶다’라는 상상을 실제로 보여주면, 나는 ‘well-functioned’ 한 사람이라는 것 까지 증명하는 셈이었다. 아 나는 내 통제하에 놓인 사람이구나, 내 스스로 마음만 먹으면 잘 바꿀 수 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위안 속에 살았던 것이다. 나를 향한 위안에 휩싸여 그 ‘변화의 주체’가 외부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오히려 ‘나는 외부의 이야기를 잘 듣고 사는 사람이야!’ 라며 칭찬하기까지 했다.


이번 스파크 쇼츠에서는 ‘자신과 같은 상태인 타인’을 보고 주인공은 기존의 생각을 바꾼다. 그러나 내겐 이번 영상처럼 아름다운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뇌가 부서질 만큼 충격적인 계기가 나에게 찾아왔다. 내가 쫓던 수많은 ‘소속’ 들이 하나 같이 ‘너에게 그렇게 변화하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다 너의 선택이고 책임이지’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타인을 향해 움직이던 나는 배신감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만든 감정에 눌린 채로 버티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혼자 감당해야 했다.


그땐 '나'라는 존재는 없었다. 나의 모든 선택은 내 스스로를 향해있지 않았다. 누군가의 컨펌이 절실했다. 카페에 가서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어먹어도 되느냐?’라는 질문까지 하는 수준이었는데, 그 커피를 내린 바리스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커피는 개인 취향에 따라먹는 것인걸요. 설탕을 넣어먹고 싶은 기분엔 그 맛을, 그렇지 않은 날엔 에스프레소만 즐기는 거죠.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이렇게 먹어야 한다~’는 모두 무시하세요. 온전히 자기만의 에스프레소를 마시면 됩니다. 꼭 여기 아니고 다른 카페를 가시더라도 그렇게 하세요”


그러고 나서 그 주인은 나에게 에스프레소 한 잔을 다시 내려 주었다.



소속되지 않아도, 타인의 기준이 없어져도 느낄 수 있는 행복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어떤 단체에서의 나의 모습이 ‘소속된 모습’을 갖지 않아도 된다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나의 모습을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떤 단체가 나에게 ‘커피 마시기’를 요청한다면 나는 그들과 같이 ‘커피를 마시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떤 커피를 어느 정도의 당도를 추가하여 마실 지는 나의 몫이었다.  그들이 제공한 ‘에스프레소’는 기본일 뿐, '내게 최적의 맛을 보여주는 커피'가 아니었다.


나는 나만의 커피를 만들어 마셔도 되는 것이었다. 마치 주인공 purl의 선택처럼 말이다.




스파크 쇼츠에서는 주인공이 결국 자신의 본 형태를 찾아간다. 그는 자기 자신을 알고 있었기에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간 것이다. 아쉽게도 난 아직 나의 형태를 잘 모르겠다. 그래서 무조건 회귀할 수도 없다. 지금부터 다시, 원래의 내 모습이 무엇인지 찾아가아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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