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는 원래 말씀이 많이 없으셨다. 한 번씩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셨을 뿐 길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무뚝뚝하셨고 속정이 있으셨다. 8남매 중 셋째로 맏딸인 이모는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셨다고 했다. 어릴 때 밭일을 하고 동생들을 돌봤다고 했다. 커서는 가난한 남편을 만나 아이들을 업고 인심을 팔러 돌아다니셨다고 했다. 지독히 고생하시며 사시다 자식들이 잘 되어 노년에 평온하게 사시고 계셨다.
“어이.. 느네가 쌍둥이여?”
이모는 이번엔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누가 형이여? 어디 인나서 키 좀 재볼텨? 누가 큰지 보자~”
1호는 얼마 전에도 ‘형이 왜 더 작냐’고 친구들이 자꾸 말해서 속상하다고 했었다. 그래서 다음부터 누가 물으면 우린 형, 동생 없이 친구로 지낸다고 이야기하자고 했었다. 이모 질문에 아이들은 우물쭈물 말을 못 했다.
화투가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다. 이모가 가끔 치신다고 했다. 아이들과 이모와 다 같이 고스톱 판을 벌였다. 첫 번째 화투짝을 내려놓으시며 이모가 입을 여셨다.
“이 아덜이 쌍둥이여?”
“네? 네.. 이모”
“어째 쌍둥이를 낳았어. 능력도 좋네~ 아래로는 없고?”
“네...없어요”
“또 낳으면 또 쌍둥이였을 거 아녀~ 왜 더 안 봤어? 자석 많으면 좋은디”
“... 그러게 말이에요.”
같은 질문을 처음인듯 하시는 이모가 이상했다. 고개를 들어 이모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모 얼굴이 쪼글쪼글 주름으로 가득했다. 늘 흰 머리 하나없이 까맣게 염색하셨던 이모 머리카락이 온통 하얬다. 늘 단정하시던 이모 옷 단추가 두어 개 풀어져 있고, 숨을 크게 내쉬며 침대에 기대실 때 바지 위로 삐져나온 속옷이 보였다.
이번에는 집을 둘러보았다. 이모 댁은 여전히 정리가 잘 되어있다. 다만, 모든 물건에 이름표가 붙어있는 것이 새로웠다.
첫 번째 판은 이모 점수가 제일 많았다. 초단을 했다고 좋아하셨다. 평소 무뚝뚝한 이모에게서 처음 본 소녀처럼 예쁜 미소다.
“느그가 쌍둥이여? 누가 형이여?”
"어찌 쌍둥이를 낳았어 그래.. 아래로는 없고? 왜 안 낳았어 더 낳지..”
엄마가 얼마 전 이모가 이상하다고 치매가 온 것 같다고 했었다. 이번엔 계속 되는 똑같은 질문에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말 시켜주시는 이모 덕분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모도 더 낳으시지 왜 다섯만 낳으셨어요? 이모도 팔남매니까 여덟 명 낳으시지..”
“아이구. 다섯이면 많지 그랴..”
"다섯 키우기 많이 힘드셨어요?”
“아니~ 지들이 그냥 혼자서 컸응께~ ”
이모는 참 긍정적이시다 생각하던 찰나 이모가 갑자기 집안을 둘러보며 물어보셨다.
“근데 니네 엄마는 어딨냐? 콩 팔러 갔냐아?”
그 모습을 보고 바로 옆에 앉아계시던 엄마가 웃으며 대답하셨다.
“응. 언니! 얘네 엄마 콩 팔러 저 멀리 갔나 보구만~ 근데 갸가 누구여? 갸 이름 알겄어?”
엄마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어보셨다.
“몰러~ 난 그런거 몰러~ 근데 누구여~?”
이모가 가까이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셨다. 갑자기 이모도 내 자신도 낯설게 느껴졌다.
“언니. 그럼 난 누구야. 나도 몰라?”
“정연이 아녀~ 아이고 참.. 내가 그런 것도 모를깨비~”
틀렸다. 정연이는 대전사는 넷째 이모 이름이다.
“근디……. 근디 덕실이가 누구여~ 덕실이가 누구지?”
문득 이모가 이름 하나를 떠올려 궁금해 하셨다.
“아이고 참. 언니! 덕실이 몰라? 덕실이! 언니 막내딸이잖아!!!”
이모는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시며 말씀이 없으셨다.
그리고 이내 우리를 쳐다보고 생긋 웃으며 말씀하셨다.
“쌍둥이를 낳았어? 어찌 쌍둥이를 낳았어. 아래로는 없고?
“누가 형이여? 어디 서서 키 좀 재봐. 누가 큰지 보게~”
말수가 적은 나와 이모가 대화를 이렇게 많이 한 건 처음이었다. 이모가 눈 마주치면 생긋 소녀처럼 웃으시는 것도 마주 보며 이렇게 많이 웃은 것도 처음이었다. 이렇게 예쁜 86세 할머니가 또 어디 있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모. 왠지 모르게 이모가 그 어느 때보다 예뻐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