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밤
불면증과 함께 한 지 어언 십여 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자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불면증은 컨디션에 좌우된다. 한동안 괜찮다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또 심해진다.
유형도 각각이다.
요즘은 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무슨 신생아처럼 서너 시간 이상 자질 못한다.
불면증과 함께 화장실도 자주 들락거린다.
자기 전에 화장실을 꼭 들리고, 잠자리에 들기 한두 시간 전엔 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조심하지만 그렇다. 한의원에 가서 치료도 받았지만 그때뿐이다.
불면증의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와 불규칙적인 생활, 운동 부족...
한의원에 갔더니 "규칙적인 식사를 하라"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주문을 하시네. 그게 되면 병원엘 왜 가겠냐고.;;;
오늘도 잠든 지 4시간도 안 돼서 깬다. 새벽 2시.
밤낮이 바뀐 일을 잠시 하는 공룡이 때문에 다시 잠들기도 애매한 시각.
저녁도 안 먹고 잤더니 좀 출출한 것 같기도 하고, 새벽 5시쯤 집에 오는 남푠의 퇴근 시간에 맞춰 피자를 만들기로 한다.
최대한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갓 만든 따뜻한 피자를 대접(?)하려면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피자 세 판!"을 선주문한 고객님의 요청에 맞추려면 한 개뿐인 오븐으로 바로바로 구워내려면 바쁘다.
피자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다.
또띠아에 파프리카, 양송이버섯, 올리브 등 각종 채소와 베이컨을 적당히 토핑 한 후 모차렐라 치즈를 올리면 끝. 그리고 제일 중요한 또띠아에 피자 소스로 케첩은 웬만하면 쓰지 말기를 바란다. 그렇게 피자 귀신인 고객님도 (다 먹고 나서) 제발 케첩은 빼달라고 했었지.
이번에도 퇴근 후 간식으로 피자를 만들어 주겠다고 큰소리쳤더니 대뜸 묻는 말이
"설마 또 케첩은 아니지?"
날 뭘로 보고. 이번엔 전용 피자소스를 주문했노라 당당히 외쳤다.
그런데 ㅋㅍ에서 나름 엄선해서 재료를 다 주문했건만 '또띠아'만 안 왔다. 이건 뭔 일이지?
계속 배송 중이라고만 뜬다. 고객센터 문의하니 재고가 없어서 그렇단다. 그럼 말을 할 것이지. ㅋㅍ 안 쓸 수도 없고 이럴 때는 참 맘에 안 든다.
피자를 만들어 주겠다고 예고한 지 만 이틀 만에 드디어 피자를 만든다.
만드는 법은 간단한데 재료 모으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암튼, 잠도 깬 김에 재료부터 손질해 놓는다.
양송이, 양파, 파프리카는 미리 소분해서 용기에 덜어 두면 담에는 바로 꺼내서 만들 수 있어서 편리하다.
접시에 또띠아를 하나씩 놓고 똑같이 네 판을 토핑 한다.
첫 번째 피자는 오븐 시간을 못 맞추는 바람에 피자치즈로 뒤덮인 정체불명의 무엇이 되었다. 이건 내가 시식용으로 한 입. 오래간만에 만들었더니 시간 감각이 없군.
다시 나머지는 오븐 180도에 10분, 9분으로 맞춘다. 딱 적당하다.
만드는 데 10분. 먹는 데 10분(총 세 판).
세 판이 살짝 아쉽다는 공룡이. 더 만들어 달라고 했으면 또띠아에 계란 프라이만 해 주려고 했는데 다행히 참겠단다.
불면증이 심할 땐 뭘 먹으면 포만감에 졸리기도 한다. 늘 통하는 방법은 아니다.
시원찮은 내 위장이 견디질 못한다. 잠깐 졸리는 시기를 넘기면 또다시 잠이 안 온다.
암막 커튼으로 조금의 빛이라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꼭꼭 여미고 다시 누워본다.
먼저 잠드는 사람한테 괜히 심통도 부려본다.
오늘은 꿈도 꾸지 말고, 중간에 화장실 가느라 깨지 말고, 쭈욱 자고 일어나기를 바라며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