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은 나누면 절반, 슬픔은 나누면 두 배?

공감이 지나치면 호구된다

by 백소피
대학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 A가 있었다.

입학식 때부터 친구가 되어서 졸업 후에도 각별하게 지냈다. 나는 친구 A 얘기를 들어주는 친구였다.

내 얘기를 하기보다 상대방의 얘기를 먼저 들어주고, 공감해 주었다.

그 친구를 비롯해서 당시 친하게 지내던 대학 동기 중에는 나보다 집안 상황이 나쁜 친구는 한 명도 없었지만 그들을 위로하고 들어주는 역할은 언제나 였다.


대학 졸업 후 각자 갈 길이 달라지면서 가끔 만나도 예전 같지 않았다. A는 어학연수를 다녀온 뒤로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영어 유치원의 강사가 되어 개인 과외까지 하면서 또래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수입을 벌었다. 그것 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A는 만나면 맨날 자기 자랑만 했다. 이번에 차를 바꿨네, 아파트를 샀네 하면서 당시 내 사정을 대충 알면서 돈 얘기밖에 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나는 점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어느 날, A가 갑자기 결혼을 한다고 했다. 너무 뜬금없는 얘기였다. 아무리 사이가 소원했어도 결혼할 조짐 같은 건 있지도 않았는데 의아했다. 그런가 보다 하고 나름대로 결혼식에 가서 축하도 해 주었다. 그 뒤로 가끔 만나도 여전히 돈 얘기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어느 날 대놓고 물어봤다.

"넌 왜 만나면 돈 얘기밖에 안 해? 나 들으라고 자랑하는 거야 뭐야?"


A는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지금 생각하면 조증 같다) "사실은 나 이혼 소송 중이야. 별거한 지 꽤 됐고, 하필 혼인신고를 먼저 하는 바람에 일이 꼬였어. 너무 괴로워. 괴로워서 만나면 할 말이 그것밖에 없었어."


그럼, 결혼 전에는? 그때도 돈 말고는 내세울 게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할 말이 돈 얘기 밖에 할 게 없어서 그랬다는 A의 말이 너무 안쓰러워(?!) 한참을 둘이 부둥켜안고 울었더랬다.


그 뒤, 내가 이번에는 연애를 하게 됐다. 당시 친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남자를 갈아치웠는데 내가 남자를 만나자 자신과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결국 A를 비롯한 대학 동기 사이에서 왕따가 됐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아무리 연락을 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헤어진 뒤 한동안 너무 심적으로 힘들었고, 악몽까지 꿨다. 지금도 아주 가끔 악몽을 꾼다. 그들 사이에서 왕따 당하는 꿈.




B는 지인보다는 가까운 친구보단 먼 사이였다.

B는 싱글맘이었는데 항상 밝고, 낙천적이었다. 한참 어린 나이의 남자와 연애도 하며 꼬인 데가 없는 보였고,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속마음을 가끔씩 털어놓기도 했다.


B가 연하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힘들어할 때 곁에서 최선을 다해 위로했다. 끊임없는 신세한탄을 들어주고, 같이 욕해주고, 온갖 뒤끝 있는 스토커 짓에도 응원(?) 해 주었다.


남자친구의 공백을 내가 메꿔주려고(!) 아침마다 모닝 카톡은 물론이고, 한 시간에 한번씩 연락하고, 만나면 데이트 앱에 올려보자며 그 친구 사진만 엄청 찍어 댔다.


그렇게 한 달 여쯤, 내가 썸을 타는 남자가 있었는데 진지한 사이로 발전했다.

B는 내가 자신에게 오롯이 할애하던 시간을 썸남과 나누게 되자 못마땅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썸남의 얘기를 하면 부정적인 말만 했다.


갈수록 이건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B는 여전히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전 남자 친구에게 보이고 있었고, 더 이상 동의할 수 없을 만큼 남자들과 무의미한 일회성 만남을 계속했다.


뭣보다 '남자' 얘기 말고는 할 얘기가 없었다.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 아직도 남자 얘기만 하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사는 게 대단하다 싶었는데 이건 뭐 철부지 20대 보다 못했다. 직장도 안정적이지 않아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거냐, 하고 싶은 일이 있냐고 물어도 별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 자신만을 사랑해 줄 남자를 만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결정적으로 B와 멀어지게 된 건 자기 얘기만 한다는 점이었다. 내 얘기를 들어주는 시늉은 하는데 결론은 자기 얘기로 끝났다. 더 이상 무의미한 대화는 공허했다.


웃긴 건 내가 연락을 끊은 뒤로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단. 한. 번. 도.




나는 어릴 때부터 공감을 잘하는 아이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예전에 TV에서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걸 보면서 하도 우니까 엄마가 하는 말 "누가 보면 네가 이산가족 찾는 줄 알겠다"


남에게도 이 정도였으니 가족에게는 오죽했겠는가.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 한참 힘들어지기 시작할 때 자진해서 휴학부터 했다.

나한테 쓰는 만원은 아까워도 가족한테 쓰는 10만 원은 아무렇지 않았다. 돈을 버는 목적이 엄마를 호강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안타깝게도 아무리 해도 역부족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집을 탈출하려고 말도 없이 서울 사는 친구에게 간 적이 있었다.

엄마는 맨날 나한테만 하소연하다가 하소연할 상대가 없어지니까 오빠에게 내가 말도 없이 나갔다고(마치 엄마를 버린 것처럼) 하소연을 해 댔다. 엄마의 하소연을 듣기 괴로운 오빠가 나에게 전화해서 또 하소연을 했다.


그때 딱 한 번이었다. 잠시 일탈을 한 게. 근데도 난 가족을 버린 불효녀가 되어 있었다.




타인의 슬픔에 지나치게 공감한 나머지 호구가 됐다

타인을 공감하려고 한 모든 노력이 결국엔 공감받지 못하는 대가로 돌아왔다.

내가 힘든 걸 얘기하면 상대방이 안타깝게 생각할지언정 껄끄러워한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속 얘기를 하지 않게 됐다.


어디선가 봤는데 진정한 친구인지 알고 싶으면, 슬플 때 말고 기쁜 일이 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라고 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은 진리다. 나와 상관없는 유튜브에서 자수성가한 사람들 이야기를 볼 때 보다 지인이 잘 되는 소식을 들으면 더 질투가 난다. 내 주변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조금 더 잘 사는 것이 백만장자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는 말에 공감한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주입식 교육의 폐해 같은 허튼소리는 믿지 않는다.


내가 감정적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딱히 억울하지도 않다. 실망할 것도 없다.


최악은 나 자신이 한심하게 보이더라는 것.

나는 타인에게 공감하는 대가로 인정을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공감도 그리 순수하지 만은 않았나 보다.


타인에게 바랄수록 남는 건 절대 채워지지 않는 공허 뿐이다.


그럼, 이제 사람을 믿지 않는 냉소주의자가 되었냐고?

그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믿는다.


공감은 소중한 감정이다. 그러나 함부로 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