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헛헛해서 된장찌개를 끓였다

비우기 위해 채우기

by 백소피

비 오기 전날부터 일기예보 보다 정확한 내 몸은 여지없이 불면증을 선사한다.

월요일 새벽에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어느새 저녁부터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더니 다음날까지 계속된다.


이런 날은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해가 지면 잠은 오는데 여지없이 새벽에 깬다. 새벽 1시. 3시. 3시 반...


그나마 오늘은 양호한 편이다.

일요일에 온몸으로 비를 예감하며 낮잠을 밤잠처럼 자다가 월요일 새벽에는 내내 깨어있었다.

잊고 있었던 공모전 소식을 확인했다. 이미 일주일 전에 발표가 끝나있었다.

기대하지 않던 공모전이고(정말이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마음은 당연하지가 않았다.


잠도 오지 않고, 헛헛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서 월요일 점심에 먹을 된장찌개를 미리 끓였다.

이상하게 된장찌개는 간단하면서도 어렵다. 아무리 집 된장을 갖다 쓰고, 멸치 육수를 우리고, 참치 액젓을 넣고, 차돌박이까지 넣어도 집에서 먹던 맛이 나지 않는다.


요리를 즐겨하진 않지만 먹을 만하게 만드는 편인데(정말이다) 된장찌개는 맘에 들지 않았다.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한 건 시판용 된장찌개 양념을 쓰는 것이다. 시판 양념에 쌀뜨물을 넣고 두부, 애호박, 버섯, 대파를 썬다.


KakaoTalk_20230926_043355095_05.jpg 된장찌개 단골 사총사


간단하게 먹는 요리는 왜 재료준비는 간단하지 않을까?

새벽에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된장찌개를 끓인다.

시판 양념은 아무래도 짜서 물을 더 넣다 보니 찌개인지 국인지 모를 애매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국물이 끓어오르고 손질한 재료를 넣고 익힐 때까지 딴생각이 들지 않았다.

당장 밥을 먹고 싶지는 않은데 흰쌀밥도 지었다.

된장찌개의 부글부글 소리와 전기밥솥의 뜸 들이는 소리는 빗소리만큼이나 마음이 편안해진다.



KakaoTalk_20230926_043355095_01.jpg 된장찌개와 국의 애매한 경계

된장찌개를 한 국자 담아 밥 한술 뜨고 식탁에 앉았다.

갓 한 음식은 맛이 있건없건 식욕이 돈다.


의자에 앉아 다시 잡생각이 든다.

요리하며 비운 온갖 상념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만약 내가 세상의 공인된(?) 인정을 받지 않아도 계속 쓸 수 있을까?

이럴 까봐 본격적으로 마음을 먹지 못한 건데. 떨어진 사실보다 궁금한 건 내 글의 수준이다. 뭐가 잘못된 건지 알아야 고치지.


된장찌개는 전에 끓인 것보다 맛이 없다. 뭐가 잘못된 거지? 차돌박이를 넣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오늘의 된장찌개가 맛이 없어도 다음에 또 끓이겠지.

오늘의 글이 별로여도 아마 다시 쓰긴 할 테지.


된장찌개로도 헛헛한 맘을 달래지 못해 요즘 한창 꽃을 피우는 세브니에게 간다.

그는 아주 물 만난 꽃이 되어 여기저기 피어나느라 바쁘다. 작년에는 풀만 무성하다 시들해져 다 죽어가는 줄 알았는데 올해는 다시 꽃을 피웠다. 내년에 꽃을 피우지 못해도 또 그다음의 꽃을 기대할 수 있는 건 그 한결같음 때문이지.


KakaoTalk_20230926_043355095_0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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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은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오늘도 채우고 비웠다.

내일 또 채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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