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고 기특한 식물

일상의 작은 기적

by 백소피

작년에 분양받았던 세브니(식물명 란타나)가 일 년 만에 꽃을 피웠다.


선인장도 죽이는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전원생활을 꿈꾸게 되었다. 작은 식물이라도 키워보고 싶었다. 의도치 않게 3개나 분양을 받았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집에 데려와서 애칭을 지어주고 핸드폰에 물 주는 날 알람 설정을 해 놓은 게 다였다. 물 줄 때마다 말을 걸기는 했다. 처음에는 다정하게 인사하다가 나중에는 의무적으로 물만 줬다. 그 흔한 영양제 하나 안 줬다.


계절에 따라 햇빛을 받는 위치나 겨울에 실내로 들여놓는다든지 이런 신경을 거의 쓰지 않고 방치하다시피 했다. 셋 다 꽃이 피는 식물이라고 들었는데 작년에 한 놈도 피지 않았다. 걔들도 사람을 가리나보다.


식집사도 부지런하고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다. 내 한 몸 돌보기도 버거워하는 애가 무슨.

작년의 식물 키우기는 대실패로 끝나고 시들하다 못해 다 죽어가는 세 놈을 어찌할까 하다가 가지치기만 했다. 워낙 시든 잎이 많아서 가지를 치고 나니 거의 뭐 앙상한 수준이어서 올해는 기대도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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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프랭클린(벤자민), 큐피드(안스리움), 세브니(난타나)


올해도 살아나지 못하면 차라리 동네 앞산으로 보내주자 결심했다.

두 놈을 햇빛이 좀 더 드는 창가로 옮기고 나자 어느 날 꽃몽오리가 맺히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꽃이 폈다.

프랭클린이라고 지어준 벤자민에서 난꽃 같은 하얀 꽃이 폈는데 폰을 바꾸면서 사진이 없어졌다.


제일 덩치 큰 놈인 세브니는 잎도 무성하고 열대성 식물이라 그런가 물을 자주 줘야 했다.

무성한 잎이 며칠만 물을 안 줘도 시무룩하게 처져 있는 모습을 외면하기 힘들어서 올해는 좀 열심히 물을 줬다.

그랬더니 글쎄, 무심코 지나가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조그맣게 몽오리가 맺혀 있었다. 신기해서 매일 들여다 보고 물도 줬다. 며칠 동안 눈에 띌 정도로 변하더니 꽃이 폈다!

"물은 제일 많이 먹으면서 너는 언제 네 할 일을 할 거냐?"라고 매일 구박만 했는데, 기특하다.


조그만 꽃인데 자세히 보면 꽃 안에 작은 별들이 있다.

보면 볼수록 대견하다.

저 꽃 안에 작은 기적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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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꽃 안에 옹기종기 모인 작은 별


나도 모르게 너희들은 한결같이 제 할 일을 하고 있었구나.

지루한 일상에 감사함을 안겨주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