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값은 얼마입니까
직장에 다닐 때는 월급이 내 이름값이었다.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는 프로젝트 건당 작업물이 이름값이었다.
현재는 사정상 직접적으로 돈 버는 일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럼, 지금 내 이름값은 얼마일까?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모든 돈 버는 행위는 내가 정한 가격이 아니다. 최종 선택은 내가 하지만 사실상 '할 거면 하고, 아님 다른 사람 시키고'라는 식의 시장 논리에서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면접 볼 때 회사에서 '희망 연봉'을 물어볼 때가 가장 허무했다. 나의 희망과 회사의 희망이 합치될 리가 없는데 그걸 왜 물어볼까? 희망 고문도 아니고.
처음에는 순진하게 진짜 내가 희망하는 연봉을 말했었다. 순간 인사담당자의 표정이 썩은 걸 보고 아차 싶은 뒤로(당연히 떨어졌다) 다시는 진짜 내 희망을 알려주지 않았다.
나의 희망은 당신네들의 희망 연봉에 최대한 일치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가짜 웃음을 지으며 일단 붙고 보자는 심정뿐이었다.
100번이 넘는 면접을 경험하고 난 뒤에는 면접의 단골 마무리 질문 희망 연봉이 나오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희망 연봉은 말 그대로 저의 희망일 뿐, 회사에서 정한 기준이 있을 텐데 딱히 상관없지 않을까요?"라며 막말을 시전 하기에 이르렀다.
같은 월급쟁이 처지인 인사담당자일 경우 내 말에 움찔하며 무언의 동조를 한다. 반면 회사 대표라면 자존심이 상하니까 "당신이 그 정도 연봉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 검토해 보고 연락 주겠다"(탈락이라는 소리)라며 무슨 솔로몬의 왕이라도 된 듯 짐짓 엄숙하게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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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가 된 후 내 이름값은 단가가 더욱 낮아졌다.
가뜩이나 저평가된 마당에(내 생각) 건당으로 받는 작업은 시간에 비해 가격이 지나치게 낮았다. 프리랜서는 왜 최저 시급 적용이 안 되는지 모르겠다. 작업 시간당 계산하면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는데.
울며 겨자 먹기로 그나마 재택으로 할 수 있어서 인터뷰 기사 쓰는 일을 했다. A4 한 장 반에 얼마였는데 몇 년 전에 투잡으로 했을 때와 단가가 똑같았다. 그나마 인터뷰 녹취록을 안 들어도 되어서 수락한 일이었다.
크게 수정하거나 요청 사항도 없고, 작업 건수도 많지 않아서 그럭저럭 순조롭게 몇 달을 했다. 기사에 내 이름이 들어간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내가 작업한 인터뷰 기사는 오프라인 잡지로만 발행되는 것이었는데 알고 봤더니 회사 자체 블로그에도 기사를 올리고 있었다. 우연히 내가 쓴 인터뷰를 봤는데 기사 끝에 버젓이 내 이름 석자가 OOO기자로 나와있었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
내가 한 작업물이니 내 이름이 들어가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엄연히 그 기자의 작업을 대필해 준 사람일 뿐이다. 그 매거진 소속 기자는 더더욱 아니다. 더 웃긴 건 나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맘대로 내 이름을 갖다 쓴 것이었다.
더욱 황당한 건 이 일로 따졌을 때 돌아온 편집장이자 대표의 대답이다.
물어본 적 없잖아요?
왜 진작에 시작할 때 내 이름을 넣는다는 말을 안 했냐고 했더니 하는 대답이 가관이다. 어이가 없어서 내 이름을 걸고 작업물이 나가는 건 다른 의미이지 않냐, 그럴 거면 그 가격에 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대답이 더 가관이다.
거 뭐 유명한 이름도 아니고,
(이름) 좀 쓰는 게 어때서
그렇게 아무 이름이나 써도 상관없으면 가명으로 아무나 지어내지 왜 굳이 아무개나 마찬가지인 내 이름을 써? 그런 잡지에 이름이 실린다고 뭔 일이 생기는 게 아니라는 거 나도 잘 안다.
자존심이 상한 건 둘째 문제고, 이름을 걸고 인터뷰 기사가 나갈 만큼의 작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에 대한 내 신념의 문제였다.
그 바닥이 원래 그렇다고는 하나 내 이름을 걸고 나가는 작업물은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매거진 대표에게 일단 알겠다고 한 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쪽 일을 잘 모르는 주변 지인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내 이름이 계속 올라간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결국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더니 나를 쓸데없이 깐깐하고 예민한, 유난스러운 여자 취급했다.
아무개나 다름없는 내 이름이지만 적어도 스스로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다.
예전에 직장 생활할 때 대표가 뜬금없이 유튜브를 하겠다며 나보고 운영자로 나오라고 했다. 입사할 때는 그런 말이 없더니 월급 준다고 내 초상권까지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기가 막혔다. 퇴사해도 내 얼굴은 온라인상에서 계속 떠다닐 걸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들의 말대로 유난히 까탈스럽고 예민하게 구는 걸 수도 있다.
비록 아직까지 내 이름값은 내가 정하지 못하지만 내 가치는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아직 덜 배고파서 그렇다고? 그래봤자 치킨 먹을 거 소고기 먹을 정도로 돈을 벌지는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