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소피 Oct 18. 2023

프롤로그

그리 잘난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 삶이지만 항상 부족했다. 뭔가 이룬 게 없었다. 누구인지도 모를 대상에게 자꾸 증명하고 싶었다. 이만하면 잘하고 있다고, 실수하고 헛발질했지만, 낙오자는 아니라고 당당하게 외치고 싶었다. 


조각 난 경력을 어떡하든 연결해 보려고 최대한 이력서를 포장했듯이 산발적으로 흩어진 내 삶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여주기 위해 썼다.      


‘작가의 말’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서 ‘작가의 말’부터 구상했다. 글을 쓰면서 바라는 것이 많을수록 자꾸 멈칫거렸다. 자기 검열에 빠져 키보드에 손이 멈추는 동안 수만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그 생각을 떨구려고 아무 말이나 썼다. 막 써 내려가도 결국에는 하나로 연결될 거라고 믿으면서 썼다. 근거 없는 믿음이 계속 쓰게 했다. 심연 깊숙이 박힌 파편들을 끄집어내서 이어 붙이고 싶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기억은 자신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경험이 사소한 기억으로 덮여 있다”라고 했다. 진짜 기억은 덮개 기억(screen memory)에 쌓여 무의식 아래 숨겨져 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심정으로 덮개 기억을 꺼내려고 용기를 냈다.     


나는 대범한 척하는 겁쟁이라서 글 쓸 때조차 내가 드러날까 봐 망설여진다.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고, 이성적인 척해도 얼마나 감정에 잘 휘둘리는지 안다. 쓰는 내내 벌거벗은 채 길거리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이 말을 하기까지 거의 평생이 걸렸다. 매일 글을 쓰지 못한 이유다. 매일 쓰기로 한 자신과의 약속을 어겼다는 자괴감에 포기하고 놔 버리고 싶었으나 늘 글의 언저리를 맴돌았다. 


매일 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숙성되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매일 하지 못했다고 자신을 나무라기보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계속할 수 있다고 다독이고 싶다.

매일 하는 마음은 거창한 목표를 세울 필요가 없다. 뭘 바라지 말고, 매일 ‘하는’ 행위에만 집중한다. 뭘 바라는 마음이 사라지면 마음을 비울 수 있다. 

멈춘 듯해도 조금씩 한발 한발 내디디면 가고자 하는 길로 다다르게 될 거라고 믿는다. 

공부든, 일이든, 글쓰기든, 사랑이든 삶을 사는 그 무엇이든 매일 하는 기적에 감사한다.


이번 생은 갓생은 못 되어도 나를 완성하는 삶, 완생(完生)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일단 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