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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피 Oct 18. 2023

나로 살기 3년 차

어느 8월의 오후 3시, 늦은 점심을 먹고 샤워 후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고 모자까지 쓴 뒤 호기롭게 집을 나선다. 더위가 한풀 꺾인 줄 알았는데 한낮의 더위는 아직도 기승이다. 종일 집에서 에어컨 바람을 쐐서 밖에 나오면 적당히 따뜻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마에 땀이 삐질 난다. 길가로 나와 오르막길을 쳐다보니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저 오르막길을 올라 땀에 젖는 건 사양이다. 


때마침 기침이 난다. 이번 여름 감기는 지독하다. 다 나은 줄 알았는데 밖을 나와보니 아직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이대로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면 또 기침이 날 텐데 민폐다. 이번 주까지는 집에 있자.      


화가 난다. 내 몸도 내 뜻대로 안 된다. 쉬고 있어도 초조하다. 몸은 쉬지만, 마음은 여전히 쉬질 못한다. 집에서 시원하게 에어컨이나 켜고 좋아하는 미드나 웹소설을 보면서 죄책감이 든다. 


30대는 ‘잃어버린 십 년’이라고 자위적인 농담을 할 만큼 ‘나’가 없었다. 한쪽만 희생하는 지극히 불균형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나’로 산 지 이제 겨우 삼 년 차다. 마흔이 넘어서야 나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나를 위한 무용(無用)의 시간을 보내는 데 인색하다. 세 살배기가 걸음마를 하고, 말을 배우는 것보다 더디다. 

본능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서 그런가. ‘나’로 살기 위해 의식적으로 하는 행위들이 과연 진정으로 원하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      


나로 살기로 한 순간부터 좀 더 뻔뻔해지기로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뻔뻔함과 자책을 오간다. 아무것도 안 하는, 정확히 말해 경제적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렇게까지 죄책감을 느낄 일인가.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당연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아무리 되뇌어 봐도 나의 안위가 동반자의 고생으로 얻은 대가라서 편치가 않다. 


인간의 뇌는 과거의 습관대로 하려는 경향이 있으니까 환경이 바뀌면 위기라고 느끼고 본능적으로 방어 태세에 돌입한다. 자꾸 ‘나’로 살지 말고 과거의 살던 대로 살기를 에고(ego)가 강요한다. 내가 진짜로 바라는 것은 아니다. 아마 두려움 때문이겠지.      


본격적으로 ‘나’로 살면서 처음에는 해방감을 느꼈다. 짧은 해방감 뒤에 찾아오는 불안함과 두려움은 한때 나를 잠식시킬 정도로 감당이 되지 않았다. ‘나’로 산다는 것은 그저 혼자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다시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신념이 필요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려도 뒤를 보기보다 앞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한다. 은둔의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멈춰 있는 것처럼 보여도 퇴행하는 것은 아니다. 전 생애를 두고 보면 한 부분이 정지된 것 같아도 분명히 흐르고 있다. 


내 몸조차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지만, 좀 더 인내심을 가져본다. 나는 아직 걸음마를 떼는 중인 ‘나로 살기’ 3년 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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