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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피 Oct 18. 2023

앞자리가 바뀌고 경력 단절녀가 되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한밤중의 울음소리에 남편이 일어나 잠이 덜 깬 채 긴 팔로 나를 안아준다. 왜 우냐고 물으며 다독일수록 울음은 점점 더 커져서 “꺽 꺽” 소리를 냈다. 


그날은 간만에 1차 면접을 본 뒤 불합격 통보를 받은 날이다. 어차피 가지 않을 생각이니까 별 타격이 없을 줄 알았다. 저녁에 남편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에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감정이 갑자기 북받쳐 올라왔다. 겨우 울음을 삼키며 내뱉은 말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 같다”였다.      


앞자리 나이가 바뀌면서 가장 먼저 체감하는 건 취직 문제였다. 삼십 대에는 백 번이 넘게 면접을 보고 다녔는데 지금은 면접 기회가 10분의 1로 줄었다. 나이만 바뀌었을 뿐인데 모든 것이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다닌 직장은 회사 사정으로 계약이 만료되면서 자연스럽게 백수가 되었다. 마침 석사 논문을 써야 했고, 남편도 내가 멀티플레이어가 못 된다는 걸 알기에 구직을 말렸다. 


언제든 맘만 먹으면(눈을 좀 낮추면) 취직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큰 착각이었다. 경력 단절은 육아하는 사람이나 해당하는 줄 알았다. 본의 아니게 경력 단절녀가 되었다.      


직장 생활에 미련은 없지만, 취직이 안 되는 건 마치 쓸모를 다한 폐품처럼 느껴졌다. 한창 출퇴근에 치여 살 때 지하철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며 내 또래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한 적이 있다. 비혼이라는 흐름이 생기기 전에도 자발적 독신을 택하는 여자들이 많았는데 왜 눈에 띄지 않을까? 

다들 자가용으로 출근하나? 직장인이 제일 많은 강남권으로 출근해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나도 출근 시간에 보이지 않는 여자가 되었다. 


가물에 콩 나듯 한 번씩 면접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주로 소규모 신생기업이었다. 내 경력은 탐나지만, 직원으로 쓰기엔 부담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심지어 “대표를 해야 할 분이 여기에 왜 왔냐?”라는 칭찬 같은 욕을 들었다. 그러게. 내가 왜 왔을까.     

 

구직 시장에서 선호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는데 취업을 시도한 이유는 집에서 공부나 하면서 사는 건 죄책감이 들어서 뭐라도 해야 했다. 나의 자유는 남편의 노동력을 대가로 얻어졌다. 두 사람의 몫을 짊어진 어깨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 무게의 고단함을 알기에 모른 척하기 힘들었다. 울음이 터진 날은 그 감정이 극한으로 치달은 날이었다. 


불안과 초조함은 삼십 대까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사십 대는 삼십 대와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다. 나이라는 현실적인 장벽은 물론이고, 원하는 게 뭔지 너무나 잘 아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이쯤 되면 인정해야 했다. 지금 당장은 뭔가를 하기보다 실력을 쌓아야 할 때라는 것을. 현재 상황이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상태이다. 부족하든 모자라든 이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언젠가는 나아질 거라는 희망 고문으로 현실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짓은 그만한다. 자포자기하거나 현실에 만족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덤덤히 인정하는 것이다. 은둔의 시간을 견디는 것도 삶의 이력이 될 수 있다. 

기존의 이력서는 버리고 새롭게 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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