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은 온전히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주로 야간에 수업하는 특수대학원이나 내가 다니는 석박사 과정만 있는 전문대학원에는 평균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나도 어디 가서 적은 나이가 아닌데 대학원에서는 거의 막내였다.
50대 이상의 학우들을 보면 나의 50대를 그려보게 된다. 대학원에서 동기로 만나도 나이와 직업,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인지 아니면 학생이 아닌 삶이 길어서인지 학생이라는 자각이 별로 없다. 외국처럼 나이와 상관없이 이름을 부르며 반말하면서 친근한 척하기는 힘들어도 적어도 학교에서만큼은 모두가 학생이라는 같은 입장인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전공 특성상 여성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내가 듣고 겪은 일부 50대 여성들만 그런지 공부 보다 남의 사생활, 뒷담화에 더 관심이 많았다. 회사 말고는 이렇게 가깝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과 지내본 적이 없어서인가 적응이 잘 안 된다. 더군다나 나는 군대에 보낸 자식이 있거나 남편 눈치를 보거나 자랑할 손주가 있는 게 아니어서 그들의 사적인 대화에 끼지도 못한다.
며칠 전, 오랜만에 학교 모임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했는데 나보고 “살찐 거 같다”라는 말만 계속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한 사람이 그 말을 하자 옆에 있던 다른 한 사람도 그 말에 동조하고 급기야 세 사람이 나에 대해 한 말이라고는 “살쪘다”가 거의 다였다.
오랜만에 봐서 진짜 살이 쪄 보였겠지. 한 10kg쯤 쪄 보였다면 그건 내 탓이겠지. 그렇다고 할 말이 고작 그것뿐인가? 요즘 나는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한 달 넘게 20분 러닝을 하는 중인데 말이다!
나를 포함한 4명이 한 테이블에서 밥을 먹는데 나보고 살쪘다는 얘기를 하더니 그다음은 신세 한탄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모두 40대 후반~50대 중년 여성들이다. 다들 배울 만큼 배우고 살 만큼 산 사람들인데 개인적으로 공부를 같이하자고 먼저 다가가 본 적도 있으나 이내 포기했다. 그들은 공부에 대한 열의로 대학원에 오긴 했으나 학문적 성취감보다 공부하는 모습에 취해 진짜 공부하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요즘 대학원이 현실적으로 어려운데 수요와 공급이 잘 맞아떨어져 각자 나름의 목적으로 대학원에 온 것이니 내가 뭐라고 판단할 이유는 없다. 대학원에 대한 환상은 진즉에 깨졌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학문적 교류를 기대했는데 아쉬울 뿐이다.
오랜만의 외출은 피로와 씁쓸함만 남았다. 나도 곧 그들의 나이가 될 텐데 저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으면 어쩌지? 부자든 가난하든 집안에 적정거리 하나쯤 없는 집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그들은 항상 표정이 어두웠다. 오랜만에 보니까 더 하다. 뭔가 좋은 말을 해주고 싶어 귀담아듣지 않는다.
대학원까지 와서 왜 그렇게 사는 게 재미없다고들 할까? 내 주변도 그렇고, 미디어를 통해 접한 많은 사람 중에 롤모델로 삼고 싶은 50대 여성이 없다. 나만 그런가 싶어 주변 사람에게 물어봤다. 대부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질문이라는 듯 한참 떠올려 보더니 결론은 “없다”였다.
그동안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50대면 어느 정도 가정의 짐을 좀 내려놓을 시기인데 왜 자유로워 보이지 않을까.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말을 옮기고, 걱정을 가장한 시기 질투 어린 말을 내뱉는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친절하지도 않다.
처음에는 공감하려고 애썼다.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사람 중에 상처를 감추기 위해 가해자가 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의도가 어떻든 간에 자신의 상처를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걸 아무렇지도 않아 한다. 스스로 상처 주는지도 모른 채.
50대는 표정에 자신의 인생이 드러나는 시기라고 하지 않은가.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어두운 사람은 왜 그럴까? 내가 내린 한 가지 결론은 “자기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해서”이다. 남 욕할 처지가 못 된다. 그동안 나에게 일어난 일을 회피하거나 분노하거나 자책하는 일 말고, 왜 그런 감정을 느끼고 행동하는지 제대로 바라본 적이 있나?
딱히 없다.
그 감정에 휩싸이거나 빨리 벗어나려고만 했지 내 감정이 어떤지 찬찬히 들여다보고 살핀 적이 없다. 그건 상대방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남의 감정을 돌보는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결과적으로 그 일도 완벽히 해내지 못하고(애초에 타인을 백 퍼센트 만족하게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나 자신에게도 소홀히 해 피해의식만 남았다.
그렇다. 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이가 들수록 나도 모르게 우울한 그림자를 달고 불행의 씨앗만 키울 게 뻔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의식적으로라도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주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프로젝트라니 거창해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찬찬히 생각해 본다. 우선, 하루 한 가지씩 나를 칭찬하는 ‘칭찬 일기’를 쓰기로 했다. 오늘 나의 칭찬은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주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 것이다.
사소한 거라도 매일 나에게 칭찬 일기를 쓰기로 한다. 한 달, 일 년 뒤에는 어떤 일이 생길지 궁금하다. 한 며칠하고 나면 칭찬할 게 없을지도 모른다. 평소 자신을 흠칫 잡는 것만큼의 절반이라도 필사적으로 한다면 칭찬 거리가 모자라지는 않겠지.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친절을 베풀수록 남에게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에게 좋은 사람으로 사는 것, 이제부터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