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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절제의 미학

웰컴투 파스타 페스타

by 백소피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 드는 의문이 있다.

왜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었을까?


술은 마실수록 는다더니 나는 술은 전혀 늘지 않고, 밥만 먹을수록 늘었다. 몸무게가.

썩 많이 먹어도 될 만큼 소화가 되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스트레스받으면 위가 먼저 탈 나는 체질이라서 분명 20~30대 초까지만 해도 입이 짧았다. 지금도 입은 짧다. 먹는 빈도수가 늘어서 그러지.


30대 초중반 서울로 올라와 환경이 크게 바뀌면서 한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군것질과 폭식으로 풀었다. 더 거슬러가 보면 실패한 첫 결혼부터 식습관이 고장 났다. 사실 이건 내 탓이 크다.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살면서 엄마가 해 주는 밥만 먹었으니 끼니 자체를 신경 쓸 일이 없었다. 그러나 결혼 후 식사는 온전히 내 몫이 되었고, 그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컸다.


X는 제 어머니가 해 주는 밥상의 재현을 원했고, 나는 마지못해 그 부담을 떠안았다. 메인 메뉴가 아무리 맛있어도 국이 없으면 덜 차려진 밥상이었다. 한 그릇 음식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고, 쉬는 날에도 삼시 세끼를 먹어야 한다는 주의였다.


https://brunch.co.kr/@sophy100/46


그 당시 X가 자격증을 공부하는 수험생이었기에 나는 고3 수험생을 키우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결혼 생활이 아닌 수험생 뒷바라지를 하는 처지였다. 그와의 결혼은 5년 간의 수험 생활 실패로 끝이 났다.


그렇게 나는 삼시 세끼 밥상 차림에서 벗어났다. 그러다 남편(용주부)을 만나 새롭게 끼니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용주부는 X처럼 그런 밥상을 나에게 요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다만, 워낙 미식가에 대식가라 매끼마다 '잘' 먹기를 원했고, 그건 또 다른 스트레스를 가져왔다.


몇 번의 개싸움 끝에 남편은 스스로 용주부가 되어 할 수 있는 한 그가 요리를 했다. 시간이 없을 때는 일주일치 밑반찬을 만들어 놓고, 최대한 내가 밥상에 신경 쓰지 않도록 배려했다. 둘 다 여의치 않을 때는 배달이나 편의점을 이용했다.


https://brunch.co.kr/@sophy100/177


그러나 오랫동안 축적된 나쁜 식습관은 늘어난 뱃살만큼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었다. 태생이 게으른 나는 규칙적인 생활이 자발적으로 불가능한 인간이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직장에 다니지 않으니 제때 챙겨 먹기는커녕 배고플 땐 몰아서 먹고, 생리 전에는 호르몬 폭발로 더 먹었다. 분명 용주부보다 먹는 양은 적은데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야금야금 간식을 처먹다 보니 어느새 만성 질환자가 되어있었다.


용주부는 부부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기 위해서 어느 날 갑자기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식사 담당인 용주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식단을 짜는 것. 그는 GPT와 열심히 상의하고, 온갖 자료를 뒤진 끝에 현실 가능한 식단을 실천했다.


용주부 또한 먹는 걸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진지하기에 일주일에 한 번 꼭 치팅 데이를 넣었다. 나는 매주 토요일 치팅 데이만 기다리며 월요일부터 뭘 먹을지 정하는 재미로 일주일을 살았다.


그런데 치팅데이는 내가 생각하는 치팅데이가 아니었다.

그날 하루는 온전히 내가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는 날인줄 알았다. 용주부는 토요일에 딱 한 끼, 점심만 치팅데이로 정했다. 그것도 짜장면이나 라면 같은 자극적이고 칼로리 높은 음식은 안 되고, 적정한 선에서 타협해야 했다.


이게 무슨 치팅데이냐, 그럴 거면 안 먹겠다며 되지도 않은 꼬장을 부리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용주부의 식단에 동참하게 되었다. 용주부가 가장 간편하면서 적정하게 먹을만한 메뉴로 꼽은 메뉴가 바로 '파스타'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엔 파스타 요리는 내 담당이었다. 용주부는 생전 처음으로 파스타 요리에 도전했다. 그는 적정량 이상 먹는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전자저울까지 사서 파스타 면의 무게를 쟀다. 파스타 면을 한 개 두 개 얹어가며 신중하게 계량하는 용주부의 모습은 흡사 무슨 중요한 화학 실험을 하는 연구자처럼 진지했다.


KakaoTalk_20251008_170618065.jpg 설마 1인분?

용주부가 처음 만든 파스타는 가장 스탠더드이면서 호불호가 적은 토마토 파스타였다.

처음 몇 번은 그것만 먹다가 질리니까 이번엔 냉동실에 묵혀둔 해물 믹스를 꺼내서 해물 파스타를 해 주었다. 그는 해물의 비릿한 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음에는 알리오 올리오를 했는데 두 번은 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맛있게 먹었겠지만, 일주일에 단 한 끼 먹는 치팅데이에 올리브로만 만든 파스타는 너무 느끼하고, 너무 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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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투 파스타 페스타(몇 인분일까?)

나 : 자기는 파스타도 잘 만드는구나.

용주부 : 먹을만해?

나 : 응! 좀만 더 줘.

용주부 : 안 돼. 그만 먹어.


여전히 먹는 양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나는 용주부가 그만 먹으라고 하면 수저를 놓았다. 이건 내가 그에게 부탁한 일이었다. 극 T인 남편이 이럴 때는 로봇처럼 정확하니까 아주 신뢰가 간다.


자의 반 타의 반 다이어트 식단으로 규칙적인 시간에 적절한(조금 적은) 양을 먹으니 확실히 뱃속이 편안하다. 이른 저녁 식사로 밤만 되면 꼬르륵 대는 소리가 날 힘겹게 하지만, 살이 빠지는 신호라고 애써 위안해 본다.


다이어트는 절제의 미학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과하면 부족한 것만 못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덜어내기를 연습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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