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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져

버림받을까 봐 먼저 떠나려 했다

by 백소피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각, X는 서울의 한 길거리에 나를 내버려 둔 채 떠났다.

그와 만난 지 백일 기념으로 서울 사는 친구도 만날 겸 처음으로 함께 한 짧은 여행이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술도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커플 모임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한껏 들떠 있었다.


문제는 숙박이었다. 전형적인 P인 나는 KTX만 예매한 상태였다. 그것도 편도였다. 십여 년 전에는 숙박앱이 그렇게 활성화되지 않을 때였고, 여행을 자주 다녀본 적도 없었다. 나보다 더 아무것도 모르고 몸만 따라 온 X는 묵을 곳이 없자 다짜고짜 화를 냈다. 주말이라 거의 모든 곳이 만실이었다. 친구가 방을 잡아주겠다고 했었는데 신세시기 싫어서 괜찮다고 했던 게 후회가 됐다. 친구에게 전화하기엔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친구의 집에는 갓난아기도 있어서 무턱대로 한밤중에 찾아갈 수도 없었다.


일요일 새벽에 어딘지도 모르는 생소한 서울 한 복판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요즘같은 추운 날씨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더 이상 알아볼 숙소도 없어서 이대로 밤을 새야 할 판이었다. 그 상황에서 남자친구였던 X는 갑자기 날 놔두고 반대방향으로 걸어가 버렸다.


몇 년 후, X가 집을 나가겠다고 했을 때 문득 예전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내가 오자고 한 거니까 왠지 모를 내 탓 같았다. 그래서 화가 나서 날 두고 가버리는 그를 붙잡았다. 붙잡는 나에게 그가 하는 말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우리가 지금 상황에서 다시 하하 호호 웃으며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결국엔 그 말이 옳았다.

만약 그때 잡지 않고 내버려 뒀다면, 그 길로 헤어졌다면 어땠을까.


한 번 떠난 남자는 결국 떠난다.

X는 떠나는 게 진심이었던 적은 없다고 했다.

그저 화가 났을 뿐.

내가 붙잡아주기를 바라고 한 짓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붙잡지 않았다. 내심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는 내가 붙잡지 않아서 당황한 듯했다. 그 속내를 떠나기 전날 밤에서야 넌지시 비쳤고, 나는 외면했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면서 망설임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99%의 확신과 1%의 망설임이 한데 섞여 있으면 사이가 좋을 때는 모른다. 어쩌다 싸움을 하면 단 1%였던 망설임은 불안을 먹고 순식간에 99%까지 커진다.


특히 결혼 초기에는 흔한 부부 싸움도 과거의 망령까지 소환해 나를 끈덕지게 괴롭혔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나갔다.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서.


처음엔 남편이 날 붙잡았다.

그는 날 나가지 못하게 붙잡고, 나는 나가려고 짐을 싸고, 그는 내 가방을 빼앗고, 나는 맨 몸으로라도 나가려고 발버둥 치고...

힘으로 그를 이길 수 없어서 발버둥 치다가 멍들고 넘어져 제 서러움에 못 이겨 울고 나서야 겨우 일단락되는 개싸움을 수도 없이 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울음을 그치고 나서 "헤어져"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남편은 서로의 잘잘못을 떠나 우는 날 달래주다가도 헤어지자는 말에는 불같이 화를 냈다. 연인 사이도 아니고 그렇게 쉽게 이별을 말하는 나의 태도에 머리끝까지 열이 뻗쳤다. 그래도 난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나도 내가 이혼 경험이 있으니 다음 관계엔 좀 더 성숙하고 현명해질 줄 알았다. 웬걸. 나는 내 몸에 생채기를 낼지언정 사과 한 마디 하지 않는 독하고 이기적인 여자가 되었다. 불안하고 두려울수록 아집과 독단으로 나를 꽁꽁 싸매고 먼저 집을 나가려고 했다.


싸움이 일단락되고 나면 남편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물었다.

대체 어딜 가려고 했냐고.

집 나가는 사람이 목적지를 알려줄 리가 있냐고 큰소리쳤지만, 내가 갈 곳이 없다는 걸 그도 알고 나도 안다.


계속 같은 패턴이 반복되자 그도 나를 잡지 않기 시작했다. 대신 핸드폰과 지갑, 노트북을 뺏어서 내 키가 닿지 않는 곳에 숨겨버렸다. 나는 그래도 맨 몸으로 호기롭게 나갔다. 그리고 동네 한 바퀴 돌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남편에게 솔직하게 고백했다.

앞으로 내가 나가려고 하거나 그만 끝내려고 하면 잡아 달라고. 네가 날 떠날까 봐, 또 버려지는 건 죽기보다 싫으니 내가 나가는 거라고.


자존심을 버리고 몇 마디 되지 않는 말을 하는데 한 번에 다 하지 못했다. 참았던 울음이 북받쳐서 말을 끝맺을 수가 없었다. 남편은 말없이 나를 안아주며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먼저 떠나는 일은 없을 거야"라고 말했다. 여전히 내 말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 눈치였지만, 그도 누가 자신을 떠난다는 게 어떤 심정인지 모르는 바가 아니므로 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말없이 안아주었다.




관계에서 오는 불안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을까.

내면 깊숙이 자리한 두려움과 불안에 대한 공포를 떨쳐내고 싶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최초의 불안은 초등학교 3, 4학년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 날 학교 갔다 돌아오니 집에 엄마가 없었다. 평소 같으면 엄마가 시장에 갔거나 잠깐 볼일 보고 오겠지라고 생각할 텐데 그날은 달랐다. 집 안방에 옷장이 활짝 열린 걸 보는 순간 바로 울음이 터졌다. 전날 밤에 엄마가 "자꾸 말 안 들으면 엄마 집 나간다!"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가 진짜로 집을 나간 줄 알고 엄마를 부르며 펑펑 울었다. 진이 빠질 정도로 울고 있는데 엄마가 와서 내 이름을 불렀다. 엄마가 황당해하며 나를 달래주던 게 생각난다. 그 일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고, 나도 성인이 될 때까지 잊고 살았다. 그러다 이혼을 하고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면서 무의식에 자리 잡은 불안의 공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파헤치게 되었다.


물론 이건 지극히 표면적인 기억이다. 내가 불안을 타고난 예민한 기질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딱 한 가지 이유로 콕 짚어 말할 수는 없다.


트라우마는 인간의 마음에 오랜 흉터를 남긴다. 그때의 감정은 옅어져도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트라우마의 사전적 정의는 "심각한 죽음이나 상해를 입을 위험을 실제로 겪었거나 그러한 위험에 직면했을 때, 혹은 타인이 죽음이나 상해의 위험에 놓이는 사건을 목격하였을 때, 이에 대하여 강렬한 두려움, 무력감, 공포를 경험한 경우를 의미한다."(<트라우마>, 주디스 허먼)


전쟁, 국가폭력, 가정폭력, 사고 등의 재난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과거의 경험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그런 트라우마에 비길 정도는 아닐지라도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지워지지 않는 아픔이 있을 수 있다. 잊고 있던 일이라도 기억 여부와 상관없이 현재에 얼마든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나는 이별을 잘 감당하지 못하는 쪽이라는 걸, 뒤늦게야 알았다.

그렇다고 이별하지 못하고 질척대는 성격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단호하게 잘라내서 문제지. 관계의 미련보다는 왜 그때 내가 그렇게 밖에 못했는지 내 행동을 잘게 곱씹어서 가루가 될 때까지 자신을 괴롭혔다. 거의 매일 과거의 끊긴 인연이 꿈에 나와 나를 괴롭혔다. 꿈에서도 말 한마디 못 하는 자신 때문에 깨고 나면 그날 하루는 망친 기분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먼저 이별을 말하려고 했다.
그런 뒤틀린 심보가 결국 독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 어리석게 굴었다. 버려지는 것보다 마음에도 없는 이별을 고하고 후회하는 쪽이 덜 비참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말할 대상이 잘못되었다. 내가 먼저 이별을 고할 대상은 애초에 다 끊어졌다. 그때 말하지 못한 이별의 말을 결코 해서는 안 될 사람에게 하는 짓을 하는 자신을 보고 또 자책한다. 이쯤되면 거의 자기 징벌적 행위다.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서 이기적인 행동과 마음에도 없는 말로 자신을 방어하는 상연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만큼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마음과 그래놓고 정작 상처받는 건 자기 자신뿐이라는 걸, 끝내 인정하지 않으려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용기 내는 그녀가 안타깝고 애처로웠다. "사랑만 하면 되는 걸 미워하기까지 해서 미안하다"는 상연의 말에 은중과 함께 나도 울었다.


남편을 만난 후 나는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아마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때와 겹쳐서일지도 모르겠다.

그전엔 눈물을 삼켰다가 혼자 있을 때 토해냈는데 이상하게 남편 앞에서는 울 일도, 웃을 일도 자연스럽다. 그런 내 모습이 부끄럽지 않다.


나는 여전히 인간관계든 일이든 시작이 두렵다.

결혼이 미친 짓이라면 두 번의 결혼은 기억상실증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또 그 불안의 불구덩이 속을 제 발로 기어 들어갈 수가 있을까.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하기엔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경험했다.


올해에는 글 쓰는 작업이 순조롭지 않아서 그만두려고 했다. 글에게 더는 버림받고 싶지 않아서 쓰는 것을 관두려고 했다. 두려움은 간절한 만큼 커진다. 극심한 슬럼프의 끝자락에 서서 글쓰기 본연의 즐거움으로 돌아가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관계의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헤어져라는 말은 더 이상 나의 방어 기제가 아니다. 헤어지자는 말을 무기로 휘두르지 않고 솔직해져야 한다. 십여 년 전 새벽처럼 서울 한복판에 홀로 남겨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나와 관계 맺는 모든 것들에게 쉽게 이별을 고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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