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말
또 악몽을 꿨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점점 더 꿈이 선명하다. 꿈에서 나는 분주하다. 매번 길을 잃고 헤매거나 내 자리를 찾아 두리번 거린다. 통로를 찾지 못해 같은 자리를 뱅뱅 맴돌기도 한다.
가장 최악의 꿈은 연락이 끊긴 과거의 잔재들이 나와 나를 괴롭히는 장면이다. 처음엔 그들이 나를 대놓고 무시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꿈에서 깨면 기분이 더러웠고, 그날 일진이 나빴다. 아직도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신을 욕하며 하루를 시작하다 보니 이미 그날은 망친 거나 마찬가지였다.
글을 취미로 쓰는 것과 직업으로 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좋아하는 글만 쓰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10% 정도 삶이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단, -100%의 고통이 따라오는 것은 몰랐다. 그것은 행복한 고통이자 자기 징벌적 행위에 가까운 고문이었다. 매 순간 좌절했고 벽에 부딪쳤다.
제법 큰 규모의 공모전에 원고를 내고 나니 저녁이었다. 한 달 넘게 매달린 공모전이었다. 내고 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이유 모를 공허함과 헛헛함은 공복이 아님에도 무언가로 채우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꼈다. 다이어트 중이 아니었다면 또 폭식을 했을 것이다.
전처럼 피자와 치킨, 떡볶이 같은 자극적인 음식으로 밤을 견디는 대신 나는 괴성을 질렀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 침대로 가서 자는 척하며 베개로 얼굴을 파묻고 맘껏 소리를 질렀다. 처음엔 내가 내는 소리가 어색해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마이크 테스트 하듯 "아! 아!"하고 몇 번 목소리를 가다듬고 점점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한번 내지르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지른 괴성이 베개를 뚫고 밖으로 새어나갔다. 내가 내는 소리에 도취된 나는 아예 얼굴을 들고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소리를 질렀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우는 건 아마 내 인생에서 두 번째였다.
대학생 때였다. 외출하고 돌아와 보니 집 안에 빨간딱지가 물건마다 붙어 있었다. 심지어 싸구려 오디오와 발운동 기구까지 빨간딱지가 붙어 있는 걸 보고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왔다. 임의로 떼면 법적으로 처벌 어쩌고 하는 경고문 때문에 그대로 둔 채 숨 막혀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너무 분하고 원망스럽고 벗어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내 처지가 한심해서 이불을 파묻고 울었다.
그 소리를 들은 아버지가 딱 한 마디 했다.
울지 마라.
누군 울고 싶어서 우나. 딴에는 아버지 만의 서툰 위로였을지 몰라도 이 지경이 된 게 다 누구 탓인데, 우는 것조차 이래라저래라 하는 아버지가 어찌나 원망스럽던지.
그날 이후로 나는 가족이든 누구 앞에서 어지간해서는 잘 울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엔 공룡이가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처음엔 다른 데서 나는 소린 줄 알았단다. 그런데 안방에 와보니 가관이었다.
하도 베개에 얼굴을 처박고 몸부림쳐서 머리는 산발에 얼굴은 시뻘개가지고 눈물 콧물 범벅이 된 꼴이라니, 한밤중에 얼마나 괴기스러웠을까.
괜찮아?
일 년 365일 새로운 변덕과 감정의 널뛰기를 보이는 나에게 익숙해진 그도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그의 물음이 도화선이 된 듯 본격적으로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울음소리와 비명 소리가 합해져서 입으로 우는 건지 뭔지 알 수 없는 외계어를 웅얼거렸다.
공룡이는 잠자코 다가와 나를 토닥여 주었다. 그 손짓이 마음껏 울어도 된다는 신호 같았다. 나는 진이 빠질 때까지 그렇게 울었다.
그렇게 울다 지쳐 잠이 들었는데 여지없이 악몽을 꿨다. 꿈에서 이건 꿈이라고 자각하다가 겨우 깼다. 역시 꿈이라는 걸 알고도 불안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이 나를 덮쳤다.
자고 있는 공룡이에게 다가가 그의 숨소리를 들었다.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숨소리를 들으면 조금 진정이 된다. 나 말고 같은 공간에 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내가 잠을 잘 못 자는 걸 아는 공룡이가 나의 기척에 자다가 깬다. 한참 곤히 자고 있다가 깨서 귀찮을 법도 한데 그는 한 번도 짜증 내는 법이 없다.
괜찮아.
이번엔 단정 짓는 말이다. 괜찮다고 말하며 내 등을 토닥여 준다. 나는 버티다 못해 잠이 든다.
우리끼리 장난처럼 묻는 인사가 있다.
괜찮아?
안 괜찮아!
실수로 침대 모서리에 부딪쳤을 때, 다어이트 한다고 먹고 싶은 걸 참을 때, 그날 하루가 힘들었을 때 등등 괜찮지 않은 날에 괜찮냐고 물어본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괜찮지 않다고 말한다.
괜찮지 않다는 말이 진심이라도 "안 괜찮아!"라고 말하는 순간 한바탕 웃는다. 그러면 마법같이 괜찮아진다.
나는 이혼을 결정하기 전날까지만 해도 괜찮은 줄 알았다. X가 입버릇 처럼 하는 "사랑해", "고마워" 등의 말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 지 꽤 오래되었음에도 괜찮은 줄 알았다. 퇴근 후 집이 가까워질수록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도 그것이 괜찮지 않다는 신호인 줄 몰랐다. 괜찮아야 했으니까.
"괜찮아"라는 말이 위로가 되는 줄 몰랐다. 어느 누구도 나한테 괜찮을 거라고, 다독여 준 적이 없으니까.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이 괜찮지 않음에 더 집중했고, 내가 어떤지는 관심이 없었다. "괜찮아?"라고 물어보는 쪽은 주로 나였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내가 괜찮지 않다는 걸 비로소 공식적으로 알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아! 내가 괜찮지 않구나. 괜찮지 않다고 해도 되는 거구나.
우울증은 내가 괜찮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일종의 자격 같은 거였다. X 앞에서는 항상 괜찮아야 했다. 그가 괜찮지 않으려면 내가 괜찮아야 했다.
더는 괜찮은 척을 못하겠다고 하자 X는 떠나버렸다. 마음 놓고 괜찮지 않아 할 수 있는 곳으로.
이제 나는 공룡이에게 괜찮지 않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괜찮지 않아도 곧 괜찮아질 것을 아니까 괜찮다.
예전엔 상대방이 괜찮지 않으면 어서 빨리 괜찮아지게 할 의무감이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의 부정적인 감정까지 흡수하는 감정 쓰레기통을 자처했다. 그 쓰레기통이 가득 차서 분리수거조차 안되어도 꾸역꾸역 끌어안고 살았다. 속이 곪는 줄도 모르고.
공룡이는 밤새 내가 미친 여자처럼 울고불고 소리 질러도 다음 날이면 처음 맞이하는 날처럼 인사한다.
잘 잤어?
처음 아침 인사를 받은 날, 그 말이 어찌나 신선하게 와닿던지. 같이 사는 사람이 간밤의 안부를 묻는 일은 처음이었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처음 하는 경험은 늘 경이롭다.
간밤에 내가 어떻든 간에 다음 날 잘 잤냐고 인사하는 순간 모든 것이 괜찮아진다. 날 위로하려고 말하던 "괜찮아."라는 말이 빈 말이 아니었다. 그는 약속을 지켰고, 나는 괜찮아졌다.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 실린 시 중 "괜찮아"라는 시가 있다. 시의 마지막 구절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 한강, <괜찮아> 중
한강의 시를 읽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힘들고 괴로워할 수 있는 일이 우는 것 밖에 없을 때 곁에 있는 사람에게 바란 건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공룡이도 처음엔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러다가 하도 이런 일이 많으니까 이젠 이유를 묻기보다 "괜찮아"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을 귀신같이 알아챈다.
나는 말로만 하는 위로는 믿지 않는다.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래서 남에게 섣부른 위로도 잘하지 않는다. 그런데 근거 없는 위로의 말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괜찮아."라는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