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미친 짓, 재혼은 OO짓
날 믿어?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 남편 공룡이가 물었다.
식단 관리하느라 하루 중 유일하게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신성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뜬금없는 말이었다.
나는 공룡이가 만든 닭가슴살 볶음밥을 마지막으로 크게 한 술 뜨고 물었다.
또 자신이 못 미더워?
응.
내가 되묻자 공룡이가 순순히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자신이 못 미덥거나 혹은 내가 화난 것처럼 보일 때 저런 질문을 잘한다. "날 믿어?"와 동급으로 하는 질문이 "날 사랑해?"였다.
보아하니 오늘 질문은 스스로 미덥지 못해서 하는 말이었다. 나는 "믿는다"는 말 대신 우회적으로 답했다.
자기를 믿지 않는다면 지금 이렇게 마주 앉아 밥을 먹을 일도 없겠지.
내 대답에 그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그리고 또 어느 날, 이번엔 내가 물었다.
내가 자기를 믿는 것 같아?
말로는 "믿는다"라고 하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렇게 느끼냐는 질문이었다. 그날은 아마 남편에게 수천 가지 이유 중 하나로 화가 난 날이었을 거다.
믿는 것도, 안 믿는 것도 아니고 딱 네가 믿기로 결정한 것만 믿는 것 같아.
깜짝 놀랐다. 내가 어떤 의중으로 물었는지도 모르면서(대부분 여러 의미가 들어있다) 나보다 더 내 심정을 정확히 말할 줄 몰랐다.
예리한 놈.
공룡이는 일 년 중 손에 꼽을 정도의 확률로 예리한 통찰력을 보일 때가 있는데 지금이 그때였다. 나는 괜히 뜨끔해서 장난처럼 말하고 유야무야 넘어갔다.
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정확히는 사랑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최소한의 방어선이다. 내 인생에서 아버지, 전남편(X)까지 믿고 의지할 만한 남자는 없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했던가.
재혼은 더 미친 짓 아니,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으면 하지 않을 짓이다. 반면에 나를 구원한 짓이었다. 그렇지만 또다시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집어넣는 짓이기도 했다.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없으니까.
재혼을 해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각각 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재지는 않았다. 이혼을 했을 때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맞았다고 생각한다. X와 사이에 아이도 없었고, 나눠 가질 건 빚밖에 없었다. 남은 건 어느새 앞자리가 바뀌어 있는 나이뿐.
내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긍정적이던 시기가 재활용도 안 되는 한 줌 쓰레기로 처박혔다.
X는 전날 "사랑한다"라고 말하고, 다음 날 집을 나간다고 했다. 우울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게 된 나에게 "내가 사라져 주는 게 돕는 길"이라는 그럴듯한 변명과 함께 보증금을 요구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기를 바란 적이 있지만 이런 식으로 끝내게 될 줄은 몰랐기에 지난 십 년만큼 뻥 뚫린 가슴을 부여잡고 절대 울지 않았다. 대신 촌스러운 결혼사진과 앨범을 찢다 못해 화장실에서 태워 없애다가 연기가 매워서 찔끔 울었다.
우는 건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거다. 나는 나를 불쌍하게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시선이 끔찍해서 가족에게도 모든 이혼 절차가 마무리되고 나서야 알렸다.
그런 내가 또 결혼을 했다.
남자에 미친(환장한) 년인가. 스스로 물어봤다. 심지어 공룡이에게도 물어봤다.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남자에 환장한 년처럼 보였냐고.
사람을, 사랑을 믿지 않는데 어떻게 또 결혼을 했을까.
이쯤 되면 내가 날 믿지 못한다.
공룡이의 말대로 내가 믿기로 한 만큼만 그를 믿는 것일까. 그를 믿지는 않지만 "믿기로 결정한" 것인가.
그를 믿기로 결정해서 결혼한 것인지, 결혼을 해서 믿기로 한 것인지 선후 관계는 아직 모르겠다. 왔다 갔다 헤갈릴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51%의 확신을 가지고 결혼했다. 재혼이라는 말은 첫 결혼인 공룡이에게 실례되는 말이라서 쓰고 싶지 않다.
만약 내 인생에서 딱 한 사람만 믿어야 한다면 그건 지금의 남편, 공룡이다.
그조차 자신을 믿지 못할 때가 있다. 그건 괜찮다. 오히려 그가 자신을 백 프로 믿는다면 그건 과신이고 자만이니까 차라리 솔직한 게 낫다.
그가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항상 나는 날 믿지 못한다. 그래서 남을 믿지 못하는 거겠지. 한때는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의심이 많았다. 내가 확신하고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한 뒤로 삶의 중심을 잃어버렸다.
우울증 약은 정신을 차분하게 한다. 불안은 줄여주지만, 현실에서 한 발자국 붕 떠있는 괴리감이 또 다른 불안을 불러왔다. 그때 만난 공룡이는 이제껏 내가 알고 있던 세상과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고속도로에서 보는 일몰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걸, 새벽 2시에 듣는 바이올린 선율로 시작하는 EDM이 내 마음을 찢어놓을 줄은 그가 아니면 결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믿는다. 언제나 의심하고, 불안하지만 믿고 싶게 만든다. 믿는다는 건 내가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최고의 방식이다.
공룡이가 "날 믿냐?"라고 묻는다.
나도 "날 믿냐?"라고 묻는다.
우리는 종종 서로를 의심하고, 믿어주기를 바란다. 내가 날 믿지 못해도 너만은 날 믿어주기를,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은 날 믿어주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