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현정(破邪顯正)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장 폴 사르트르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장 폴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에서 주인공 로캉탱은 어느 날 바닷가에 간다.
그는 물수제비뜨기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자신도 매끈한 조약돌을 주워 든다. 그 순간, 그는 갑자기 구토를 느끼고 얼른 조약돌을 놓아 버린다.
이후에도 구토 증세는 수시로 나타난다. 카페에서 맥주 컵을 쥐면서, 땅에 떨어진 종이쪽지를 집으려 하면서, 거울 속에서 자기 얼굴을 보면서...... .
그는 증세를 가라앉히기 위해 낡은 재즈 레코드의 음악을 듣는다. “머지않아서 사랑하는 그대는/ 내가 없어서 외로우리.”
로캉탱에게 구토를 일으키게 한 조약돌, 맥주 컵, 종이쪽지 등은 생겨날 때부터 본질이 있다. 그것들은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만들어가지 못한다.
이미 본질이 규정되어 있는 물건들과 달리 인간은 본질이 정해진 게 없다. 인간은 무한히 자신을 창조해갈 수 있는 존재다.
로캉탱은 본질이 정해져 있는 물건들을 집으며, 자신의 ‘존재’를 자각했던 것이다. ‘아, 나는 저 물건들과는 다르게 존재한다!’
로캉탱은 서른 살에 이미 30만 프랑의 재산을 상속받고, 여기에 매년 1만4천4백 프랑의 연금을 받는다.
그의 삶은 어떻겠는가? 그가 일상에서 만나는 물건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하루하루 물건이 되어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환멸, 그것이 구토, 자신과 세상이 흔들리는 증세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는 재즈 음악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찾는다. 재즈 음악은 작곡가, 가수에 의해 치밀하게 구성되었다.
로캉탱은 자신의 삶도 저렇게 치밀하게 구성해가야 한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머지않아서 사랑하는 그대는/ 내가 없어서 외로우리.’
재즈 음악을 들으며 그는 중얼거린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책이라야 할 것이다. 내게 재주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사람들은 내가 쓴 소설을 읽고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이 소설을 쓴 사람은 앙트완느 로캉탱이야. 그는 빈들빈들 카페에 드나들던 머리털이 붉은 놈이었어.”
그는 이제 물건처럼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청산하게 될 것이다. 그는 부빌을 떠나 파리에서 새로운 삶을 구성해 갈 것이다.
사르트르는 말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실존은 여기에 실제로 존재하는 삶을 말한다.
본질은 존재가 이미 정해진 것을 말한다. 과거에는 인간도 본질이 정해져 있었다. 왕족, 귀족, 평민, 노예... .
조약돌은 조약돌로 태어나 조약돌로 존재해야 하고, 맥주 접은 맥주 컵으로 태어나 맥주 컵으로 종지쪽지는 종이쪽지로 태어나 종이쪽지로만 존재해야 한다.
인간도 그 물건들처럼 살아야 했다. 물건들은 본질이 사라지면, 쓸모가 없게 된다. 맥주 컵이 맥주 컵의 기능을 하지 못하면, 버림을 받는다.
인간은 이들과 다르다. 자신의 존재가 미리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인간은 실존의 존재다.
인간은 자신이 실존의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기만 하면, 앞으로 다른 무엇으로 무한히 자신을 창조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물건들처럼 살아간다. 가끔 그들은 구토를 느낀다. 갑자기 자신들의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하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굳건한 물건의 삶을 고수한다.
이러한 삶은 인간의 조건, 실존적 존재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다들 우울과 권태의 늪에 빠지게 된다.
이 세상의 이치는 파사현정, 그릇된 것은 깨뜨려 없어지고 바른 것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우리는 코로나 19를 통해 구토, 자신과 일상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온 인류가 경험한 이 구토를 통해 우리 모두가 새로운 삶을 구성해 가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전 인류적인 반성을 하지 않으면, 기후위기는 지구 전체를 더 크게 흔들리게 할 것이다.
권태로워 잠을 많이 잔다던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
나는 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네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 천양희, <밥> 부분
시인은 구토를 느끼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 소식을 전한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그렇다. ‘어차피 삶은 네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인간은 모두 자신의 삶의 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