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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안일(無事安逸)

by 고석근

무사안일(無事安逸)


지금 이 순간은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주의를 기울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 틱낫한


종국의 조주 선사는 말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일없는 것만 못하다.”


무사안일, 이 말은 ‘아무런 일이 없이 편안하고 한가로운 상태’를 말한다. 조주 선사가 최고로 치는 삶의 가치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을 부정적으로 쓴다. 편안하고 한가로운 상태만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지닌, 도전정신이 없는 사람을 말할 때 주로 쓴다.


버스 안에는 ‘오늘도 무사히’ 라고 쓰인 표어가 있다. 운전기사에게 사고 없는 날은 얼마나 좋은 날인가?


하지만 정말로 우리는 아무 일이 없는, 그날이 그날 같은 삶을 좋아할까? 무료해서 견디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동물에서 진화했기에 동물의 야성이 있다. 동물들은 매순간, 깨어 있다. 항상 먹이를 구해야 하고 언제 적을 만날지 모른다.


잠시잠깐 일이 없이 편안한 얼굴로 쉬고 있는 동물을 보면 경외감이 든다. 인간 같은 나른함이 없다.


인간은 항상 깨어있지 않아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다. 그러다보니 편안히 쉬는 게 고역이다.


일부러 모험을 찾아가고, 고생길에 들어선다. 자신을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한다. 번지점프를 하고, 도박을 한다.


인간은 무사안일을 즐길 수 있는 상태로 진화중인 것 같다. 인간의 진화는 당대에 이룰 수 있다.


동물처럼 여러 대를 거쳐야 진화하는 게 아니다. 조주 선사 같은 사람은 진화에 성공한, 가장 앞서가는 사람일 것이다.


고대의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필수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었다.


식욕이나 수면욕 등은 필수적인 쾌락이다. 이러한 욕망은 배고플 때 먹고, 졸릴 때 자면 사라진다.


‘더 맛있는 것’, ‘더 편안한 잠’에 대한 필수적이지 않은 욕망은 어떨까? 이런 욕망은 아무리 채워도 만족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이 고통스러운 건, 필수적이지 않은 욕망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욕망이 ‘필수적인 욕망’ 수준에 머물 수 있도록 절제하는 힘을 길렀다.


그는 드디어 최고의 쾌락, 아타락시아(마음의 평정)의 경지에 도달했다.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말했다. “사람은 혼자 조용히 방에 머물 수 없어 불행하다.”


우리가 무사안일을 부정적으로 쓰는 것은, 무사안일을 누릴 수 없는 허약한 인간이어서 그럴 것이다.


무사안일의 경지는 카르페디엠, 현재를 잡을 수 있는 정신력을 지녀야 도달할 수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라 항상 근심걱정에 휩싸인다. 과거가 항상 마음에 그늘을 드리우고, 미래가 현재를 누리지 못하게 한다.


작가 케이트 쿰스가 지은 그림책 ‘숨을 쉬며 내가 되어요’는 ‘마음 챙김의 시 모음’집이다.


‘나는 천천히 들이마셔요.

천천히 숨을 내 쉬어요. 내 숨은,

평화로운 강물이에요.

나는 여기 이 세상에 있어요.

숨을 쉬는 순간, 순간, 나는 내가 되어요.’


‘이따금 나는 구름이에요.

이따금 산 또는 바위예요.

이따금 강이에요.

자그마한 풀 또는 거대한 나무예요.

그래도 언제나 나는 나예요.’


틱낫한 스님은 마음 챙김은 “우리의 산만한 마음을 즉각적으로 다시 불러와, 완전하게 회복시켜, 매 순간의 삶을 살게 하는 기적”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아무리 괴로운 상태에 있어도, 고요히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있으면, 깊은 행복에 이를 수 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무사안일을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다.



숟가락은 밥상 위에 잘 놓여 있고 발가락은 발끝에 얌전히 달려 있고 담뱃재는 재떨이 속에서 미소 짓고 기차는 기차답게 기적을 울리고 개는 이따금 개처럼 짖어 개임을 알리고 나는 요를 깔고 드러눕는다 완벽한 허위 완전 범죄 축축한 공포,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 이성복,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부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어느 날, 시인은 경악한다. ‘완벽한 허위 완전 범죄 축축한 공포.’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우리가 마음을 챙기지 않아서 그렇다. 오로지 물질에만 마음이 팔려서, 우리 안의 마음이 사라져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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