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사구시(實事求是)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눈이 멀었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다무라 시게루 작가가 쓴 그림책 ‘개미와 수박’을 재미있게 읽었다.
어느 더운 여름날 오후
개미들이 길을 가다
수박을 보고 가까이 다가갔어요.
이거 참 맛있네! 집으로 가져가자.
낑낑 영차 영차 후유
다른 친구들을 불러올게.
한 개미가 집으로 돌아가 개미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들판에서 좋은 걸 발견했어!”
개미들이 여기저기서 우르르 따라나섰다. “가 보자! 가 봐!”
우와, 이거 굉장한데!
낑낑!
영차! 끙끙!
꼼짝도 안 하잖아.
좋아, 그렇다면
이 삽으로...... .
개미들이 수박 조각을 바구니에 넣고 줄을 매달아 아래로 내려 보낸다. “자, 아래로 내려간다.”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개미들이 수박 조각을 등에 지고 간다. “다 같이 나르자, 부지런히 나르자.”
수박 조각으로 집 안이 꽉 차게 되었다. “이제 꽉 차서 더 이상 안 들어가.”
개미들은 나머지 수박을 함께 먹기 시작했다. “좋아, 나머지는 다 같이 먹어 치우자!” “으음, 이제 배도 꽉 찼어.”
개미들은 먹고 남은 수박 껍질을 모두 함께 손으로 받쳐 들고 집으로 가져갔다. “자, 이걸 가져가서...... .”
개미들은 함께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개미들의 미끄럼 타기다.”
나는 그림책을 읽는 내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 우리도 이렇게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공부 모임에 이 그림책을 가져가 함께 읽었다. 나는 회원들과 나의 감동을 함께 느끼고 싶었다.
그런데 한 회원이 조심스레 말했다. “선생님, 저 그림책을 과학적으로 보면 문제가 있어요. 수박 즙에는 개미에게 치명적인 독성이 있어요.”
‘아, 그렇구나!’ 중학교 과학 교사인 그녀의 눈에는 그런 오류가 보였구나. 그림책에서는 개미들이 삽을 들고
수박 속살에 들어가 작업을 했다. 온몸에 수박 즙이 다 묻을 것이다.
그녀는 그림책은 문학이니 과학적인 눈으로 보면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나는 문학은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과학과도 어긋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 그림책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하지만 개미들이 지혜를 발휘해, 수박 즙을 몸에 묻히지 않는 장면이 나오면 더 좋지 않겠는가?
실사구시,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일의 자세’는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삼라만상은 겉으로 보면 물질세계이지만, 이 물질세계는 동시에 에너지장이다. 동양에서는 이 둘을 동시에 보는 과학이 발달해 왔지만, 서양에서는 둘을 나눠서 보았다.
물질세계는 과학의 영역, 보이지 않는 세계는 종교의 영역이었다.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는 물질의 법칙에 따라 작동한다.
서양에서는 물질세계를 따로 탐구했기에, 과학혁명, 산업혁명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 결과 현대문명은 서양문명이 지배하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일찍이 화약을 발명했지만, 화약을 불꽃놀이에 사용했다. 서양은 화약을 총알에 사용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현대문명의 문제를 과학의 눈부신 발전에서 찾지만, 과학은 우리가 사용하기 나름인 것이다.
물질세계를 과학의 눈으로 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그 과학의 성과물을 어떻게 인간세계에 유익하게 쓸까가 가장 중요해질 것이다.
문학과 과학이 배치되지 말아야 한다. 문학의 비과학성이 광범위하게 허용된다면, 우리는 관념의 세계에 빠져버릴 것이다.
그래서 조선 말기에 실사구시의 실학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현대양자물리학은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장을 함께 탐구하고 있다.
현대의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의 이론들은 동양의 경전들이 말하는 신비로운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내 어렸을 적 고향에는 신비로운 산이 하나 있었다
아무도 올라가 본 적이 없는 영산(靈山)이었다.
영산은 낮에 보이지 않았다
산허리까지 잠긴 짙은 안개와 그 위를 덮은 구름으로 하여 영산은 어렴풋이 그 있 는 곳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 영산이 불현듯 보고 싶어 고속 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 더니 이상하게도 영산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이미 낯선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산은 이곳에 없다고 한다.
- 김광규, <영산(靈山)> 부분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본다. 크게 보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
우리 마음에 없는 것은 밖에 물질로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안의 마음과 바깥의 물질은 하나로 어우러진다.
나라는 한 존재는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주 그 자체다. 물질만 볼 때는 과학의 눈이 중요하지만, 물질을 넘어서는 세계는 자신의 마음마저 넘어서는 큰마음으로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