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容恕)
나는 이제 용서와 사랑을 통해 증오에서 자유로워집니다.
- 파울로 코엘료, 『알레프』에서
한국 영화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를 보았다. 보육원에서 자란 청년 수찬은 킥 보드를 타고 배달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킥보드를 잃어버린다. 시청 정기간행물의 인터뷰어 윤서와 함께 범인을 잡는다.
범인은 여고생쯤으로 보이는 소녀, 중고거래 사기범이다. 윤서는 소녀를 경찰서로 데려가려한다.
하지만 수찬은 용서해주자며 윤서에게 말한다. “한번쯤은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잖아요.”
보육원에서 자란 수찬은 많은 사람으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는 힘도 함께 커졌을 것이다.
용서(容恕)는 ‘같은(如) 마음(心)을 받아들이는(容) 것’이다. 수찬은 남에게 사기를 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소녀의 마음이 가슴 아프게 와 닿았을 것이다.
그 소녀를 경찰서에 데려가 벌을 받게 하는 것이 그 소녀를 위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수찬처럼 ‘한번쯤은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주 중요할 것이다. 인간의 깊은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 안의 증오심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의 힘을 갖게 되는 것일 것이다.
과일들은 꽃이라는 상처가 켜 놓은 것이다
상처가 없는 사람의 얼굴은 꺼져 있다
상처는 영혼을 켜는 발전소다
- 최종천, <상처를 위하여> 부분
마음과 육체를 할퀴고 간 상처들은 영혼을 깨어나게 한다. 그 상처들로 다른 사람을 증오할 수도 있지만, 증오가 큰 만큼 사랑도 크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사랑을 함께 깨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