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농담과 성희롱 사이
모시야 적삼에 반쯤 나온 연적 같은 젖 좀 보소
많이야 보면 병난단다 담배씨 만치만 보고 가소
- 상주 지역 민요, <採蓮謠(공갈못 연밥 따는 노래)> 부분
어느 날 김삿갓이 춘천 소양강에서 나룻배를 탔다. 노 젓는 이가 처녀 뱃사공이었다.
김삿갓이 그녀에게 한마디 농을 했다. “여보 마누라, 노 좀 잘 저으시오.” 처녀 뱃사공이 펄쩍 뛰며 말했다. “내가 어찌 당신 마누라요?”
김삿갓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가 당신 배에 올라탔으니, 내 마누라지.” 강을 건너 김삿갓이 배에서 내렸다.
처녀 뱃사공이 한마디 했다. “잘 가거라, 아들아.” 김삿갓, 눈이 휘둥그레져 대답했다. “내가 어찌 당신 아들이오?” 처녀 뱃사공이 대답했다. “내 뱃속에서 나갔으니, 내 아들이지.”
김삿갓과 처녀 뱃사공의 수작은 성농담일까? 성희롱일까? 이것은 한 시대의 ‘일반적인 정서’가 기준이 되어야 할까?
나의 고향 상주의 민요에 나오는 가사, ‘모시야 적삼에 반쯤 나온 연적 같은 젖 좀 보소/ 많이야 보면 병난단다 담배씨 만치만 보고 가소’
이것은 성농담일까? 성희롱일까? 요즘 ‘성담론’의 공론장이 많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성 해방이 인간 해방으로 등장한 것은 프랑스의 68혁명일 것이다. 시위대는 외쳤다. “자유로운 섹스의 권리를 보장하라!” “모든 금지를 금지하고, 상상력에 권력을 부여하라!”
우리 사회에 성담론이 풍부해졌으면 좋겠다. ‘모든 금지를 금지하고, 상상력에 권력을 부여하라!’ 성담론이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했으면 좋겠다. 성(性)은 인간의 근원적인 생(生)의 마음(心)이니까.